Opinion :노트북을 열며

새 대통령의 피자 한 판

중앙일보

입력 2022.03.10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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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효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안효성 금융팀 기자

안효성 금융팀 기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는 날, 문재인 대통령의 ‘피자’가 떠올랐다. 문 대통령은 취임 두 달 후인 2017년 7월 청와대에서 가진 기업인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부동산 가격을 잡아주면 기획재정부에 피자 한 판씩을 쏘겠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식언(食言)이 됐지만, 그만큼 부동산 가격 안정이 중요하다는 뜻을 담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 가격 안정에 피자를 걸었다면, 새 대통령은 물가 잡기에 피자를 걸어야 할 수도 있겠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불붙은 인플레이션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기름을 붓고 있다. 8일(현지시각) 기준으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23.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는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다. 천연가스, 금속, 곡물 등 주요 원자재 가격도 치솟고 있다. 수입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환율마저 가파르게 올라 한국 입장에서는 사면초가다. 2011년 12월(4.2%) 이후 처음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017년 12월, 기획재정부 직원들이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피자를 먹고 있다. 청와대는 “부동산 안정에 매진 해 달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2017년 12월, 기획재정부 직원들이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피자를 먹고 있다. 청와대는 “부동산 안정에 매진 해 달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물가를 잡아야 하지만 주변 여건이 만만치 않다. 경제는 뒷걸음치는데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섣불리 금리를 올렸다가 경기 침체를 더 가속할 위험이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도 3월 말 종료된다. 새 총재 선임 절차를 고려하면 4월 금융통화위원회는 건너뛰고 5월 금통위는 되어야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추가경정예산 등 정부발 인플레이션도 계속된다. 대선 기간 내내 후보마다 경쟁적으로 돈풀기를 약속해왔던 만큼 물가를 잡겠다며 갑자기 재정의 수도꼭지를 잠그기도 쉽지 않다. 돈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있으면 물가 잡기는 더 요원해진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2월 기재부에 피자 350판을 보냈다. 물론 그 후에도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대출규제 등의 수요 억제 위주의 땜질식 처방만 반복한 결과다. 물가도 마찬가지다. ‘관치 물가’라는 비판을 받으며 개별 품목에 꼬리표를 다는 게 해법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과거 정부에서 경험했다. 결국 물가를 잡으려면 ‘무딘 칼’이라고 불리는 금리를 올리고, 나라의 돈줄을 죄어야 한다. 하나같이 인기 없는 정책이다. 취약계층이 쓰러질 수도 있고, 자산가격에 거품이 빠지며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릴 수 있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참고로 문 대통령이 보낸 피자 가격은 올해 1월부터 1000원 인상됐다. 연초부터 오르는 물가에 대통령 격려의 가격도 오른 셈이다. 올해 정부 부처는 새 대통령이 보낸 진짜 피자를 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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