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담벼락이 그를 만나 작품이 되었네 ···사진전 여는 장사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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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서울 홍지동 자택에서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한 소리꾼 장사익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사익씨가 동네 구석구석을 산책하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작품 사진. [사진 장사익]

[사진 장사익]

"아이구, 전문가 선생님들이 제 사진을 보면 '이게 뭐여?'라고 생각할 수 있어유. 막상 전시를 하려니 '사진이 장난이냐?'라는 소리를 들을까 하는 걱정에 제가 잠을 못잤어유."

인사아트프라자, 16일부터 #노래, 서예에 이은 새 도전 # #

소리꾼 장사익(73)은 자신이 찍은 사진 작품 앞에서 어린 학생처럼 수줍어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진을 구경하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민망하다"는 말을 거듭한 그는 "그래도 이왕 저지른 일이다. 사람들이 제 사진을 보고 '어? 저런 것도 작품이 되네' 하며 각자 해보고 싶던 일을 시도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며 웃었다.

장사익이 주변의 풍경과 사물을 그만의 시선으로 포착한 사진을 모아 16~21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개인전 '장사익의 눈'을 연다. 지난 몇 년간 스마트폰으로 집 주변에서 촬영한 60여 점의 사진을 선보인다. 2019년 ‘낙락장서(落樂張書)-붓으로 노래한 장사익의 낙서’라는 제목으로 첫 서예전을 연 데 이은 두 번째 전시다.

그는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것들을 렌즈에 그대로 담지 않았다. 대상을 한껏 클로즈업해 포착해 찍은 사진은 정작 그게 본래 무엇이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주로 동네를 산책하며 찍었는데, 사진은 모두 추상화 같다. 그의 눈으로 포착한 세상이다. 장사익 스타일의 노래, 소박하고 자유로운 붓글씨로 일명 '장사익체'를 선보인 데 이어 이번엔 틀에 갇히지 않은 사진으로 '전방위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전은 의외의 소식인데요.

"저는 기계 같은 건 하나도 몰라요. 제 휴대폰도 없어요. 몇 년 전부터 찍고 싶은 게 있으면 아내 스마트폰을 빌려 찍었는데. 제가 사진 찍는 걸 아시게 된 팬들이 재작년 말에 스마트폰을 선물해 주셨어요. 지난 2년간 집에서 가까운 평창동, 부암동, 효자동, 인사동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찍었어요."

노래, 붓글씨에 이어 사진까지···.

"옛날엔 시서화(詩書畵)를 하는 사람과 가무(歌舞)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는데, 노래를 부르는 저는 거꾸로 시작해 양쪽의 틈새를 왔다 갔다 하게 된 것 같아요. 노래하기 전 25년 동안 열다섯 군데에서 일했는데, 돌아보니 그게 다 내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더라고요. 노래는 벌써 28년째 하고 있는데, 서예도 사진도 제가 해보고 싶은 것을 하나씩 이루고 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사진이 추상화 같은데요.

"내 눈에 재미있어 보는 것들을 찍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2년 전 우리 집 새로 지을 때 공사 중 방수 칠해 놓은 벽도 찍고. 산책할 때 길도 찍고 담장도 찍고, 비 올 때 아스팔트 바닥도 찍었죠. 그게 되게 재미있었어요. 빛이 강하게 들어오고 옅게 들어오는 것에 따라 같은 장소도 너무 달라 보이는 것도 아름답고요."

"사진을 찍을 때도 정색하고 찍는 모습을 보이기 부끄러웠다"는 그는 "찍고 싶은 게 있을 때 지나는 사람이 있을 땐 딴청부리거나 길가는 척하다가 돌아가 슬쩍 다시 찍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우연히 작품을 본 지인들의 권유와 도움으로 전시를 추진하게 됐단다.

3월 16일부터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사진을 여는 소리꾼 장사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진 장사익]

전시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요.

"정말 민망하지만 사람들이 내 사진 보고 각자 하고 싶었던 걸 하게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용기를 냈어요. 사람들은 살면서 해보고 싶은 게 있어도 보통 그걸 다 이루지 못하고 살잖아요, 그래도 뭐든 꿈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해보며 꿈을 이루면 삶이 풍부해지지 않을까 했어요."

노래와 붓글씨, 사진은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음악, 서예, 사진이 서로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 노래도 대중음악계에서 보면 뜬금없이 나온 음악이었잖아요.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마흔여섯에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했고, TV 무대에 선 것은 쉰 아홉살 때였어요. 자연스럽게 제 호흡대로 하겠다고 생각하며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었죠. 붓글씨도 한글에 왜 여러 가지 서체가 없을까 생각하며 꾸준히 썼더니 제 글씨를 '장사익체'라고 불러주더라고요. 이렇게 다 해보는 데에는 '너의 호흡으로 노래하라'는 스승 김대환 선생님 말씀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림에도 관심이 있으셨죠.

"1980년대 초 한국행동과학연구소 경리 일을 할 때 출퇴근 길에 인사동을 매일 지나다녔어요. 처음엔 몰랐는데 매일 지나다니다 보니 그림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때 그림도 많이 봤고, 예전에 집사람이 3년간 갤러리도 운영했어요. 노래하며 큰 작가님들 전시를 많이 봤는데 지나보니 그게 다 공부가 된 것 같아요."

사진을 찍으면서 달라진 게 있을까요.

"'자연스러운 게 최고'라는 걸 더욱 실감하죠. 바람과 햇살, 달, 별, 나무 그리고 공기와 온도, 습도···. 감히 말씀드리자면 예술가들이 하는 일이란 이 자연을 흉내 내며 표현하는 거 아닐까 싶어요. 자연은 그 자체가 예술이고, 자연스러운 것들은 다 아름다운 것 같아요. 한 번은 치과를 다녀오다가 공사장에서 어떤 분이 페인트칠하는 것을 봤는데, 그것도 제겐 다 퍼포먼스고 작품 같아서 한참을 넋 놓고 봤어요. 그런 게 눈에 들어오고 찍게 된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