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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대하는 청와대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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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백일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백일현 산업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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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기업 임직원이나 재계 인사를 만날 때마다 우문을 던져봤다. “여야 대선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돼야 당신이 속한 기업, 업종에 더 낫습니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우린 대선 후보 테마주와는 무관합니다.” “누가 되든 큰 차이 있겠습니까. 우리야 어느 쪽이든 고개 숙이고 비위 맞춰야죠.”

더 솔직한 속내를 덧붙이는 이도 있었다.

“A후보가 탄소세를 이야기했잖습니까. 안 그래도 탄소중립 추진으로 비용 부담이 큰데 탄소세까지 내라니, 우리한텐 그냥 사업 접으란 얘기나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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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후보가 검찰에 있을 때 각종 수사를 하면서 웬만한 대기업은 속속들이 들여다봤다지 않습니까. 총수 관련 정보도 많이 안다던데, 기업들이 눈치 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처럼 기업인들이 우려하는 포인트는 조금씩 달랐지만, 누가 당선되든 험난한 길을 예상하는 듯했다. ‘재벌 체제 해체’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대기업 저승사자’ 이력이 있는 사람이나 껄끄럽다는 얘기다.

하긴, 과거 누가 청와대에 있든 기업들로선 속 편할 날이 없긴 했다. 청와대 한마디에 기업 흥망성쇠가 갈리던 야만의 시대가 있었다. 친기업을 외치던 대선 후보도 청와대만 들어가면 입 씻고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만들었다. 권력 눈치를 보며 무슨 재단에 수백억원을 출연했던 기업인은 공익을 빙자한 사익으로 단죄받기도 했다.

전임 정부의 유산을 극복할 줄 알았던 정부도 기업들을 이런저런 일로 닦달했다. 임기 만료를 얼마 안 남긴 시점에 향후 3년간의 일자리 창출 계획을 내놓으라 했다. 이후 경영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역대 대통령은 거의 안 빠지던 경제계 행사에 대통령 자신은 임기 5년 내내 한 번도 참석하지 않으면서, 청와대 행사에는 기업 총수들을 동원했다. 청년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까지 만들어 제출하라면서다.

이제 곧 정해질 청와대의 새 주인은 어떨까. ‘기업 할 맛 나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기업인들 외침에 귀 기울일 때도 됐다. 특혜를 주자는 게 아니다. 이윤 추구를 위해 공익을 해치거나 노동자의 권리를 해하는 기업은 감시하되, 정치 논리로 기업을 좌지우지하진 말자는 얘기다.

누군가는 말했다. “세상을 가장 빨리 바꾸는 건 기업과 시민 아닐까”라고. 앞서 마스크·요소수 부족 사태 때부터 대규모 산불 재해, 우크라이나 사태 때 발 빠르게 움직이는 기업들을 보면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닌 듯하다. 기업은 일자리의 주체이기도 하다. 그런 기업을 대하는 새 정부, 청와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