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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나의 한 표가 모여 민의를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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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20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자치회관에 마련된 청운효자동 제3투표소에서 종로구청 관계자가 기표 도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제20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자치회관에 마련된 청운효자동 제3투표소에서 종로구청 관계자가 기표 도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오늘 대선 투표일…지지·반대 모두 중요

민주주의 위한 첫걸음은 진지한 한 표

투표권은 정부 수립과 함께 국민에게 주어진 권리였다. 당시 서구에선 한국의 민주주의 가능성에 대해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걸 기대하는 꼴”이라고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민주적 열망이 오늘을 만들어냈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세 차례 국민의 심판대에 섰고, 이 과정에서 김영삼·김대중이란 걸출한 미래권력과도 맞서야 했다. 1987년 거리를 메운 ‘대통령 직선제’ 함성이 우리를 민주국가로 나아가게 했다. 그러고는 투표를 통해 수많은 정부가 등장했다.

“민주주의에서 인민의 권력은 유권자들이 만들어내는 결정의 중요성에 달려 있다”(E E 샤츠슈나이더)는 기준에서 보면 우리는 대체로 옳은 선택을 해 왔다.

오늘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왔다. 향후 5년간 대한민국호를 이끌 20대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올 선거는 유독 전쟁 같은 양상으로 진행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비전·정책 경쟁보단 네거티브 경쟁이 치열했다. 대통령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유례없이 높았다.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의 선택처럼 됐다. 불행한 일이다.

그렇다고 투표를 포기하는 건 답일 수 없다. 선거만으론 내분을 극복하거나 공적 책임의 진정한 의미를 당선인의 마음에 심어줄 순 없겠지만 적어도 민의가 어떤지 경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과반 가까운 득표(48.7%)와 531만 표 차로 압승했지만, 유권자 중 최대 집단은 이 대통령 지지자(1149만 명)가 아닌 기권층(1392만 명)이었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기로 하면서 마치 보수 우위 시대가 열린 듯했다. 하지만 광우병 사태 등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막대한 사회·정치적 비용을 치렀다. 지난 대선에서도 2위 득표(785만 명)보다 많은 967만 명이 기권했는데 이들이 달리 선택했다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양상은 지금과 같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표(死票)는 없다. 당선인에게 던진 표 못지않게, 비당선인들에게 던진 표도 의미가 있다. 지지의 크기 못지않게 반대의 크기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독주 대신 타협의 공간을 키운다.

다행히 사전투표에서 4419만 명의 유권자 중 1632만 명(36.9%)이 참여했다. 코로나19 상황에다 황당할 정도로 부실한 선거관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이 어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는데 21세기에도 ‘내 한 표’의 행방을 걱정해야 한다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뭐든 저절로 잘 굴러가는 일이 없다는 걸 이번 투표를 보면서 절감했을 것이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투표가 중요하지 않다고, 의미 없다고 느낄 때 민주주의엔 위기가 온다. 투표해야 한다. 숙고한 한 표들이 모여 민의를 만들고, 미래로의 길을 낸다. 투표는 권리이자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