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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세계 여성의 날’에 받은 유리천장지수 꼴찌 성적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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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 114회 유엔 세계 여성의 날 로고. 올해 주제는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한 오늘의 성 평등’(Gender equality today for a sustainable tomorrow)이다.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속에서 화재 사고로 사망한 뒤 근로조건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벌어진 시위를 기념해 제정됐다. 생존권을 뜻하는 빵과 참정권을 뜻하는 장미를 나누며 의미를 기린다.

제 114회 유엔 세계 여성의 날 로고. 올해 주제는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한 오늘의 성 평등’(Gender equality today for a sustainable tomorrow)이다.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속에서 화재 사고로 사망한 뒤 근로조건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벌어진 시위를 기념해 제정됐다. 생존권을 뜻하는 빵과 참정권을 뜻하는 장미를 나누며 의미를 기린다.

남녀 소득 격차 등 10년 연속 OECD 최하위

혐오·갈등 넘어 누적된 성차별 바로잡아야

114주년을 맞은 ‘세계 여성의 날’에 한국이 또다시 불명예를 안았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어제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리천장지수(The glass-ceiling index)에서 조사 대상 29개국 중 꼴찌였다. 100점 만점에 20점 대로 2013년 평가 시작 이후 10년 연속 최하위다. 유리천장지수는 OECD 회원국의 남녀 고등교육 격차, 소득 격차, 노동 참여율, 고위직 비율, 육아휴직 현황 등 세부 지표를 종합해 평가한다.

한국의 남녀 소득 격차는 31.5%로 OECD 평균(13.5%)의 두 배를 넘고, 여성 중간관리자 비율은 15.6%로 OECD 평균(31.9%)의 절반에 그쳤다. 여성의 노동 참여율도 59%(남성 79%)로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등 일하는 환경이 열악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여성의 경제 참여도, 정치적 권한을 토대로 발표한 성(性)격차지수(GGI)에서도 한국은 156개국 중 102등이었다. 국내 기관의 조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시엑스오 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150개 대기업의 여성 비율은 24%, 평균 연봉은 남성의 70% 수준이다. 선진국 그룹인 OECD의 일원이자 경제 규모 10위권, 문화 매력 국가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민망한 성적표다.

물론 성차별은 과거보다 나아졌고 구조적 성차별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도 있지만 위의 숫자들이 얘기해 주는 바는 그동안 누적돼 온 성차별의 수준이다. 비단 경제·정치 분야의 문제가 아니다. 근래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보자. 지자체장들의 잇따른 권력형 성범죄와 이어진 2차 가해, 불법 촬영을 통한 웹하드 카르텔의 성 착취 사건은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졌다. 강남역 살인사건 등 일상의 공포로 여성들은 집단적 분노, 무력감을 겪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13년간 친밀한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 1155명이라고 밝혔다. 지난해에만 83명이 목숨을 잃었다. 보도된 사건만 분석했다고 하니 실제는 더 많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론화 대신, 극단의 혐오가 서로 충돌하면서 젠더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 여기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성차별과 현존하는 안전 문제 등을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도 없이 단편적 이슈 중심으로 정쟁을 벌이면서 퇴행했다.

유엔이 정한 올해 세계 여성의 날 주제는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한 오늘의 성 평등(Gender equality today for a sustainable tomorrow)’이다. 남녀 모두를 위해 누적된 성차별을 바로잡는 일, ‘혐오’ 대신 포용과 화합의 세상을 여는 일. 내일 탄생하는 제20대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