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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값 추락, 21개월만에 1230원선 뚫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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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8일 코스피는 2622.40포인트, 원·달러 환율은 1237.0원에 마감했다. [뉴시스]

8일 코스피는 2622.40포인트, 원·달러 환율은 1237.0원에 마감했다. [뉴시스]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다. 지난 7일 달러당 1220원 선을 뚫고 내려간 지 불과 하루 만에 달러당 1230원이 무너졌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보다 9.9원 떨어진(환율 상승) 달러당 1237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2020년 5월 29일(1238.5원) 이후 1년 9개월 만의 최저치다. 장중엔 달러당 1238.7원까지 밀렸다.

심상치 않은 건 폭과 속도다. 지난 4일부터 3거래일 만에 32.4원(2.69%)이나 내렸고, 올해 들어서는 48.2원(4.05%) 떨어졌다. 선진국과 신흥국 통화와 비교해도 큰 폭의 하락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들어 달러화 대비 원화값보다 하락 폭이 큰 통화는 러시아 루블화(-76.7%)와 터키 리라화(-8.9%), 유로화(-4.5%) 정도뿐이다.

곤두박질치는 원화 가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곤두박질치는 원화 가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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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값 하락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반작용이다. 무엇보다 ‘오일 쇼크’ 우려가 컸다. 7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와 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했다. 모두 2008년 7월 이후 최고가다. 세계 공급량의 7%를 차지하는 러시아산 원유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빠질 것이란 우려가 번진 탓이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한국이 원유 의존도가 높은 원유 순수입국이기 때문에 유가가 뛰면 원화 약세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가 급등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물가 상승)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졌고, 안전자산인 달러 ‘사자’를 부추겼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9선으로 올라섰다. 2020년 5월 이후 최고치다.

러시아의 국가 부도 우려도 한몫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경제 제재로 자산 일부가 동결된 러시아가 오는 16일 만기가 돌아오는 7억 달러(약 8500억원) 상당의 채권을 갚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세계 3대 신용평가사는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잇달아 낮췄다. 무디스는 지난 3일부터 사흘간 러시아 등급을 ‘투자적격(Baa3)’에서 ‘투자 부적격(Ca)’으로 10단계나 강등했다. Ca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단계인 ‘C’의 직전 단계다.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출도 원화값 하락을 부채질한 요인이다. 외국인은 환차손과 위험자산 회피 등의 이유로 국내 증시에서 돈을 빼내고 있다. 지난달 18일부터 12거래일간 국내 주식을 팔아치운 금액만 4조2000억원에 달한다. 그 여파에 8일 코스피는 1.09% 내린 2622.4에 마감, 지난 1월 27일(2614.49) 이후 가장 낮다.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11일(6만9900원) 이후 4개월 만에 이날 종가 기준 6만원대(6만9500원)로 내려앉았다.

전문가는 당분간 원화 가치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한다. 시장이 예상하는 1차 방어선은 1250원 선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서방의 러시아 제재로 유가가 고삐 풀린 듯이 치솟으면 당장 이번 주에 달러당 1250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구두 개입에 나선 외환 당국이 환율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을 한다고 해도 흐름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김효진 KB증권 이코노미스트는 “2010년 이후 유럽 재정위기, 유가 폭락, 미·중 분쟁 등 굵직한 사건 때처럼 1250원이 지지선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하건형 연구원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에 유럽이 동참하는 경우엔 1300원에 근접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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