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25땐 집이라도 있었다" 산불에 다 잃은 이재민 한탄

중앙일보

입력 2022.03.08 05:00

업데이트 2022.03.08 09:05

“많이 아프재, 많이 아프재.”
7일 오후 경북 울진군 북면 소곡1리 골짜기에 위치한 한 외양간. 겉이 그을린 외양간 안에 소 한 마리가 주저앉은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뒷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은 모습이었다. 콧물을 줄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소를 주인 김일석(70)씨가 연신 쓰다듬으며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지난 4일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로 집을 잃었다. 외양간 맞은편에 있던 집과 창고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불에 탔다. 기르던 개와 닭도 새까맣게 그을린 채로 숨이 끊어졌지만, 김씨는 사체를 치우지도 못했다. 김씨는 이곳에서 차량으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머무르면서 하루 두 차례 소먹이를 주기 위해 집을 찾고 있다.

7일 오후 경북 울진군 북면 소곡1리 자신의 집 외양간에서 산불에 화상을 입은 소를 김일석씨가 쓰다듬고 있다. 김정석 기자

7일 오후 경북 울진군 북면 소곡1리 자신의 집 외양간에서 산불에 화상을 입은 소를 김일석씨가 쓰다듬고 있다. 김정석 기자

‘자동차보다 빨랐던’ 산불…몸만 급히 빠져나왔다 

김씨는 “산불이 집을 다 태우고 외양간 일부에도 옮겨붙으면서 소들이 화상을 입었다. 자식과 매한가지인 소가 화상을 입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목이 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교롭게도 산불이 난 날 송아지 한 마리가 태어나 더욱 신경이 쓰인다”고 덧붙였다.

7일 오후 경북 울진군 북면 소곡1리 자신의 집에서 산불에 완전히 무너진 집을 김일석씨가 살펴보고 있다. 김정석 기자

7일 오후 경북 울진군 북면 소곡1리 자신의 집에서 산불에 완전히 무너진 집을 김일석씨가 살펴보고 있다. 김정석 기자

그는 지난 4일 산불이 나던 날 “자동차보다 불이 빨랐다”고 기억했다. 김씨는 “집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이웃으로부터 ‘동네에 산불이 났다’는 말을 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며 “밥을 두 숟갈 정도 뜨니 열기가 느껴져 문을 열어봤는데 불길이 뒷산을 집어삼킨 상태였고 몸만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마을에 울려 퍼지는 방송을 따라 이웃들과 인근 학교 등으로 대피한 김씨는 대피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불길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고 했다. 결국 그는 산불이 날 첫날부터 7일까지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김씨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가 막막하다”고 했다.

“6·25 때도 집은 있었는데…지금은 숟가락도 없어”

김씨처럼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머무르고 있는 장중화(82)씨는 “6·25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밀고 내려오는 통에 산속에 깊이 숨었을 때도 내 집은 있었다”고 했다. 장씨는 “불길을 잡은 뒤 집에 가보니 숟가락이 녹아 손잡이만 남아 있더라”며 “산불로 집이 몽땅 타버리니 막막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7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주택이 산불 피해로 무너진 모습. 김정석 기자

7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주택이 산불 피해로 무너진 모습. 김정석 기자

장씨는 “울진장씨 소야파 12대 종손으로서 300여년간 집안 대대로 이어온 중요한 문서들을 이번 산불로 모두 잃었다”며 “조상 대대로 이어진 유품을 지키지 못해 후손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눈물을 흘렸다.

울진·삼척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 540명은 울진국민체육센터를 비롯한 16곳에 대피해 있다. 이재민이 가장 많이 머무르고 있는 울진국민체육센터에는 3~4인용 텐트 64개가 설치됐다.

진화율 50% 넘겼지만 연기로 진화헬기 접근 난항

산림당국은 7일에도 울진·삼척 산불의 진화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산불 현장의 연기와 안개로 진화헬기 접근이 어렵고, 오후가 되면서 바람 방향이 남서풍으로 바뀌는 등 기상여건이 나빠지면서다.

산불은 발생 나흘째인 7일에도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 진화율은 전날보다 높아졌지만 50% 남짓에 그치고 있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이날 현장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오늘 진화 주안점은 화두(火頭·불머리) 제압이며, 주불은 다 진화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내일 오후부터 위협적인 동풍이 불기 때문에 그 전인 오전까지 반드시 화선을 제압해야 한다”고 밝혔다.

7일 경북 울진군 북면 덕구온전리조트 주차장에서 소방차량이 산불을 끄기 위해 야산을 향해 물을 뿌리고 있다. 김정석 기자

7일 경북 울진군 북면 덕구온전리조트 주차장에서 소방차량이 산불을 끄기 위해 야산을 향해 물을 뿌리고 있다. 김정석 기자

인근 야산에 산불이 계속되고 있는 울진군 북면 덕구온천리조트에도 소방차량이 계속해서 산을 향해 물을 뿌렸지만 산 전체에서 희뿌연 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리조트 직원 이은정(36·여)씨는 “산불이 꺼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일어나길 반복해 리조트에 손님이 없는 상태”라며 “갑자기 산불이 다시 커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다”고 말했다.

바람 방향이 반대쪽으로 바뀌고 그 속도도 줄어들면서 산불이 금강송 군락지로 옮겨붙을 가능성은 줄어든 상태다. 하지만 산림당국은 혹시 모를 확산에 대비해 공중과 지상 진화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동해안 산불 진화에 투입한 헬기 89대 중 53대를 울진·삼척 산불에 배치했고, 이 중 51대를 투입해 금강송 군락지 사수에 투입했다. 불길은 금강송 군락지 500m 앞까지 근접한 상황이다.

이날 오후 5시 기준 산불영향구역은 약 1만7685㏊(울진 1만6913㏊, 삼척 772㏊)이며, 주택 260채 등 시설물 645개가 소실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산림당국, 실화 가능성 조사…온정 손길도

당국은 이번 대형산불이 자연발화에서 시작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담뱃불에 의한 실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원인 조사와 함께 용의자를 찾고 있다. 현장 주변 폐쇄회로TV(CCTV)에는 최초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1∼7분 전 차량 3대가 인근 도로를 지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7일 경북 울진군 울진읍 울진국민체육센터에 산불 이재민들을 위한 텐트가 설치돼 있다. 김정석 기자

7일 경북 울진군 울진읍 울진국민체육센터에 산불 이재민들을 위한 텐트가 설치돼 있다. 김정석 기자

온정의 손길도 곳곳에서 모이고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7일 현재 39개 단체에서 551명의 자원봉사자가 이재민 지원과 산불 복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7일 경북 울진군 울진읍 울진국민체육센터에 산불 이재민들을 위한 구호물품이 도착해 있다. 김정석 기자

7일 경북 울진군 울진읍 울진국민체육센터에 산불 이재민들을 위한 구호물품이 도착해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4~5일에는 전국재해구호협회가 응급구호세트, 모포, 수건, 생수, 겨울용 의류세트, 음료 등 구호물자를 보내왔다. 또 BGF리테일, 롯데지주, KT, 현대 글로비스 등 기업에서도 간식과 구호키트·마스크 등을 재해구호협회를 통해 지원했다.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도 긴급 구호세트 등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GS리테일, SPC그룹 등도 적십자사를 통해 빵·음료·컵라면·생수 등을 기부했다.

이밖에 한국수자원공사·포항상공회의소·대구시청·포스코·현대자동차·울진풍력발전소 등도 긴급구호키트·생수·과일·생필품 등을 지원했다. 경북심리회복지원센터도 소속 상담사를 이재민보호소로 파견해 피해 주민의 심리회복 지원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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