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방 자리가 성매매 업소?" 관광객 놀란 전주 선미촌 변신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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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많아 기묘…성매매 업소인 줄 몰랐다"

"가게마다 커튼이 쳐져 있고 거울이 많아 기묘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상상이 맞았네요."

지난달 28일 오후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선미촌. 이모(23)씨 등 여성 4명이 깜짝 놀라며 이같이 말했다. "성매매 집결지인 줄 몰랐다"면서다.

지난달 28일 오후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선미촌 거리. 지난해 12월 기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성매매 업소 3곳이 문을 닫았다. 전주=김준희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선미촌 거리. 지난해 12월 기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성매매 업소 3곳이 문을 닫았다. 전주=김준희 기자

관광객 "책방으로 바뀌었다니 신기"  

고교 동창인 이들은 광주광역시·세종 등에서 전주에 놀러 온 직장인으로, 선미촌에서 청년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동네책방 '물결서사'에서 시집 등을 사고 나오는 길이었다.

이씨는 "성매매 업소였던 곳이 책방으로 바뀌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며 "복잡한 쇼핑 거리 말고 독립서점이나 사진관 등이 생기면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선미촌 거리. 문 닫은 성매매 업소 벽에 파란 페인트로 '인생은 아름답다'는 뜻의 영어가 칠해져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선미촌 거리. 문 닫은 성매매 업소 벽에 파란 페인트로 '인생은 아름답다'는 뜻의 영어가 칠해져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지난해 12월 남은 3곳 폐업…성매매 집결지 '종말'

이날 전북의 대표적인 성매매 집결지인 선미촌은 인적이 드물었다. 가게마다 유리문에는 '매매' '임대'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거나 누군가 파란색 페인트로 '철거'라고 큼지막하게 칠해 놨다. 유리문에 '폐업'이라고 적힌 가게 안은 쓰레기만 나뒹굴었다.

7일 전주시에 따르면 선미촌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성매매 업소 3곳이 지난해 12월 기준 모두 문을 닫았다. 2000년대 초반 성매매 업소 85곳이 불야성을 이루던 '홍등가(紅燈街)'가 사실상 종말을 맞았다.

선미촌 내 성매매 업소 유리문에 '폐업'이라고 적혀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선미촌 내 성매매 업소 유리문에 '폐업'이라고 적혀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시청 맞은편에 사창가…"전주 이미지 망친다" 지적

1950년대 옛 전주역 주변에 형성된 선미촌은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규모가 줄었지만, 지난해까지 일부가 영업 중이었다. 선미촌은 왕복 6차선인 기린대로를 사이에 두고 전주시청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해마다 1000만 명이 찾던 전주 한옥마을과는 불과 800m 거리에 있다. 대규모 사창가가 도심 한복판에 있다 보니 "전주 이미지를 망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전주시는 2014년부터 선미촌 일대(2만2760㎡)를 문화·예술인이 창작 활동을 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간으로 바꾸는 문화재생 사업을 추진했다. 이른바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당시 "선미촌을 가장 특색 있는 인권과 예술 공간으로 살려내겠다"고 했다.

성매매 업소 문에 '매매' '임대'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성매매 업소 문에 '매매' '임대'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 추진…거점 공간 조성

전주시는 2017~2020년 국비·시비 등 83억 원을 들여 빈집과 성매매 업소를 사들여 전주시 사회혁신센터 '성평등전주', 새활용센터 '다시봄', 전시장 겸 공연장 '뜻밖의미술관' 등 거점 공간 7곳을 만들었다. ▶골목 경관 정비 ▶소로 개설 ▶가로수 식재 ▶도로 정비 등도 마무리했다. 선미촌 곳곳에 방범용·불법 주정차 단속 폐쇄회로TV(CCTV) 25대도 설치했다. 2017년 6월에는 전주시 서노송예술촌팀이 선미촌에 입주했다.

그 결과 선미촌 내 성매매 업소는 2014년 12월 49곳→2018년 12월 21곳→2020년 12월 10곳→2021년 6월 3곳으로 줄었다. 성매매 업소 종사자도 2014년 말 88명에서 지난해 말 0명이 됐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해 11월 23일 송하진 전북지사와 김승수 전주시장의 안내를 받아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선미촌(서노송예술촌)을 방문한 가운데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동네책방 '물결서사'를 둘러보기 전 책방 운영자 중 1명인 비보이 장영준씨의 즉석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해 11월 23일 송하진 전북지사와 김승수 전주시장의 안내를 받아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선미촌(서노송예술촌)을 방문한 가운데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동네책방 '물결서사'를 둘러보기 전 책방 운영자 중 1명인 비보이 장영준씨의 즉석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

김부겸 "도시재생 성공 모델"…가게들 "살길 막막"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해 11월 23일 선미촌을 찾아 "전주시가 시민단체와의 거버넌스를 통해 성매매 집결지를 문화·예술과 인권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선미촌이 도시재생 성공 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정작 성매매 업소를 상대로 영업하던 가게들은 "살길이 막막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27년간 선미촌에서 마트를 운영했다는 임모(여·63)씨는 "완전히 죽은 동네가 됐다"며 "밤에는 깜깜해서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임씨는 "서울 사람들은 여기가 엄청 변화가 와 동네가 뒤집어졌다고 하는데 땅값만 어마어마하게 치솟았다"며 "학생들이 견학은 오지만 빈집만 구경하고 가게에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2017년 6월 선미촌에 입주한 전주시 서노송예술촌팀이 근무하는 '현장시청'. 전주=김준희 기자

2017년 6월 선미촌에 입주한 전주시 서노송예술촌팀이 근무하는 '현장시청'. 전주=김준희 기자

"가맥거리 만들었으면…일감 없다" 반발도

20년 넘게 세탁소를 운영해 온 신모(여·65)씨는 "성매매 업소들이 있을 때는 여기에 얹혀 사는 주민들이 많았다"며 "아줌마들은 (업소에서) 청소와 빨래를 해줬고, 화장품과 홀복 등을 대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업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다 나갔지만 (성매매가) 불법이니 말을 못했다"고 했다.

신씨는 "(세탁소는) 내 집이니 그냥 있지만, 미장원 등은 비었고 문을 연 가게들도 손님이 없어 개점 휴업 상태"라며 "서신동 막걸리촌처럼 '가맥(가게 맥주)' 거리 등을 만들어 놓고 사업을 추진했어야 하는데 성매매 업소부터 없애니 가게들은 일감이 없어 반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네끼리 뭔가(거점 공간)를 지어놓고 행사를 할 때만 시장과 국회의원 등이 와서 사진만 찍고 끝나지 주민들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고 했다.

전주시 사회혁신센터 '성평등전주'에서 전시 중인 '한눈에 보는 선미촌. 전주=김준희 기자

전주시 사회혁신센터 '성평등전주'에서 전시 중인 '한눈에 보는 선미촌. 전주=김준희 기자

전주시 "민관 협력 통한 점진적 폐쇄 큰 성과"

성매매 업소 건물주 김모(여·68)씨는 "이 동네 건물들은 집 구조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으로만 돼 있다"며 "시에서 수리비나 리모델링비 일부라도 지원해 주면 집을 깔끔하게 고쳐 세라도 내줄 텐데 아무 지원도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전주시 사회혁신센터 '성평등전주' 오수연 팀장은 "성매매 업소 여성들에게 생필품을 팔았던 사람들도 이제 다른 가치의 수입으로 바꿔야 한다"며 "성매매 업소 일색이던 동네가 여성에 대한 지원과 민관 거버넌스 활동, 행정의 의지로 점진적으로 폐쇄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없다"고 했다. "행정이 일방적으로 성매매 집결지를 밀어버리거나 상업 자본이 들어와 아파트를 짓는 방식과는 다르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오 팀장은 "2014년 민관 거버넌스(선미촌 정비 민관협의회) 사업을 시작할 때 '(선미촌 폐쇄는) 10년 안에 못 끝낸다'고 했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니 다음 단계는 시간이 단축될 것"이라며 "남은 과제는 작더라도 거점 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 시민 모두가 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인과 화가·극작가·소설가·비보이·성악가 등 예술가 6명이 선미촌에서 운영하는 동네책방 '물결서사' 내부 모습. 전주=김준희 기자

시인과 화가·극작가·소설가·비보이·성악가 등 예술가 6명이 선미촌에서 운영하는 동네책방 '물결서사' 내부 모습. 전주=김준희 기자

예술가들 "혹독한 자영업자 삶" "인력 지원 필요"  

선미촌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시인인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는 "선미촌에 책방을 연 이유는 성매매 집결지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사람들이 다가가지 못하는 동네에 긍정적인 반전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코로나19 사태 전) 수많은 사람이 찾아왔지만, 아직 책 판매만으로 운영비 대기가 어려워 자영업자로서 혹독한 삶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악가인 김성혁 '놀라운예술터'·'뜻밖의미술관' 센터장은 "선미촌에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건물이 계속 생겨나고 있지만, 이 공간을 활성화하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해당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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