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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현실로 닥친 에너지 위기에 대책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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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러시아 서부 타타르스탄 공화국 안에 있는 한 석유·가스 시추시설에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원유 시추를 하고 있는 모습. [타스=연합뉴스]

러시아 서부 타타르스탄 공화국 안에 있는 한 석유·가스 시추시설에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원유 시추를 하고 있는 모습. [타스=연합뉴스]

유가 배럴당 130달러, ‘제2 오일쇼크’ 우려

돈 풀기 자제하고 물가 안정 총력 다해야

국제유가의 급등세가 심각하다.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당 130달러 선까지 뚫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충격으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위기까지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브렌트유는 지난 6일 한때 배럴당 139달러까지 치솟았다. 서부텍사스유(WTI) 가격도 한때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섰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2008년 7월 이후 약 14년 만에 가장 비싼 가격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러시아의 원유 수출 금지를 유럽 동맹국들과 논의 중이라고 밝힌 게 유가 급등세에 불을 붙였다. 글로벌 석유 공급량의 약 7%를 차지하는 러시아의 수출길이 막히면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상황이 더 악화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2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1970년대 ‘1, 2차 오일 쇼크’와 닮은 에너지 수급 불안을 경고하는 시각도 있다.

국제유가 상승은 국내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이미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국내에선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3.7%를 기록했다. 5개월 연속 3%대 상승 행진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중순 조사한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 19.4% 치솟으며 전반적인 물가 상승세를 주도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이달 석유류 가격은 더욱 큰 폭으로 뛰어오르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4%를 넘어설 수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1800원을 넘어섰다. 7일 원화가치는 달러당 1227원에 마감하며 1년9개월 만에 최저로 밀렸다. 국제유가 급등에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이 겹치면서 소비자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가계와 기업에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위험 관리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거꾸로 간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막대한 돈 풀기와 재정적자의 후유증은 물가상승을 심각하게 자극한다. 대선 이후로 미뤄놓은 전기요금과 대중교통요금 등은 불안한 요인이다. 대선후보들의 무분별한 돈 풀기 공약 경쟁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정부가 말로는 물가 안정을 위해 총력 대응한다고 하지만 유류세 인하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이미 시행하는 조치를 3개월 연장하는 수준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축소하는 에너지 구조개편을 위해 원전은 필수인데도 현 정부는 탈원전을 주장하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최근 원전을 주력으로 활용한다고 말을 바꿨지만 너무 늦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제라도 돈 풀기 경쟁을 멈추고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과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