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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태일의 반박불가

文에 반성문 주려 靑 갔더니, 뛰쳐나온 경찰 100명이 둘러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태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ㆍ 前신전대협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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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정부를 비판하는 현직 경찰 달나라금토끼(필명)의 글에 김태일 신(新)전대협 의장이 이와 관련해 겪은 고초를 적어 보내왔습니다. 신전대협은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전대협과는 무관하게 보수 성향 대학생들이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만든 단체입니다.

그래픽=전유진 기자

그래픽=전유진 기자

“잘못했으면 처벌을 받아야지”라던 경찰 아저씨의 전화를 받은 지가 어느새 햇수로 4년째가 되었습니다. 유죄추정은 기본이고, 관등성명 없는 반말 덕에 보이스피싱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전화는 알고 보니 실제 경찰 수사였습니다. 그로부터 시작된 사법 겁박은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던 제 목을 2심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죄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고소나 고발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경찰 수사 단 2주 만에 검찰에 송치됐으며, 이로부터 또 불과 10일 만에 약식기소로 ‘건조물 침입죄’ 벌금 100만원 형에 처해졌습니다. 경찰은 학교 측의 신고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학교 측은 "본교 학생의 처벌을 원치 않으며, 신고한 사실도, 피해받은 사실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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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마나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길래 화들짝 놀란 경찰과 검찰이 고작 한 달여 만에 이런 즉각 처분까지 내렸을까요? 오해를 바로잡자면 그저 대자보였습니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내용을 써서 붙였길래, 라고 생각하나요? 해당 대자보는 “홍콩 다음은 한국이다”라는 제목으로 ‘시진핑 주석의 서신’ 형식을 빌려 풍자하는 형식이었습니다. 2019년 홍콩에서 일어났던 인권 시위를 지지하면서도, 일각에서 대두하고 있는 고급 인력 및 기술 유출이나 미세먼지 등 중국 관련 문제들을 나열하며, 우리도 경각심을 늦추지 말자는 취지를 담은 대자보였습니다.  이걸로 전 처벌받았고, 결국 이 사건은 부끄럽게도 2020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에 대한민국의 인권탄압 사례로 등재됐습니다.

구속 협박부터 주거 침입까지

이 사건과 관련해 현장에서 겪은 탄압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이후 저희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입시 비리 등 다양한 대자보를 부착한 현장에 폴리스라인 설치는 익숙한 일이 되었습니다.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학생 집의 문을 임의로 열고 들어온 경찰도 있었으며, 대자보와 전단을 배포하던 스쿠터의 차 열쇠를 압수하며 구속 협박을 한 경찰도 있었습니다.

지난 2021년 5월 김태일 신전대협 의장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반성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신전대협]

지난 2021년 5월 김태일 신전대협 의장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반성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신전대협]

한번은 문재인 대통령께서 본인이 직접 제기한 모욕죄 고소를 취하하면서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길래 이에 화답하고자 '대통령 각하의 심기를 거슬러 대단히 죄송합니다'라는 반성문을 적어서 지난해 5월 청와대 앞을 방문했습니다. 경찰에 사전 양해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도착하니 어디선가 100명쯤 되는 경찰들이 대열을 이루고 뛰쳐나와 저의 사방을 둘러쌌습니다. 이어서 귀갓길까지 인계해야 한다며 그 수 많은 인원이 1km가 넘는 거리를 함께 뒤따라왔습니다. 저와 학우들이 가는 방향대로 경찰들이 수십명씩 따라오니, 그 모양새가 ‘피리 부는 사나이’ 같기도 했습니다.

활동을 제한하는 근거 조항을 묻자, 묵묵부답에 물리력으로 무마 대응하던 경찰들의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았습니다. 이쯤 되니 대남선전 매체 '우리 민족끼리'를 통해 제가 속한 신(新)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향한 원색적 비난 성명을 냈던 북한의 대응은 오히려 서로의 표현의 자유를 나름 존중해준 순한 맛이었나 싶었습니다.

“표현의 자유 후퇴 안 된다”던 文…지금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권력을 비판했다가 기소 소송당한 시민과 언론인을 지원하겠다”며 당내에 ‘표현의 자유 특위 및 피해 신고센터’를 설치한 후 다음과 같은 발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우리 당이 집권하면 비판, 감시를 확실히 보장할 것이다.” “공인과 공적 관심사에 대한 비판, 감시는 대단히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비판과 감시에 명예훼손으로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결코 해선 안 된다. 만약 우리 당이 집권하면 그런 점을 확실히 보장할 것.”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한 민주주의나 표현의 자유 수준에서 더 후퇴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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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시민의 가장 소중한 권한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타당한 논리의 자유로운 표현으로 인해 마주하게 된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법은, 강제와 금지, 차단과 처벌이 아니라 또 다른 표현의 자유로 견제·보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와 ‘학생운동’이라는 미명으로 권력을 쟁취한 현 정권 세력에게 국민이 기대했던 것은 이와 같은 권리의 신장과 보장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권력과 권위로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면서 그들이 비판했던 세력과 똑같이 몰락해가고 있는 걸 지난 몇 년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잘못했으면 처벌을 받아야지”라던 경찰의 말에 “그게 왜 잘못이에요?”라고 물으러 또다시 가야 합니다. 몇몇 학교 학생들은 우리가 붙였던 대자보를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민주당 586 학생운동 정권’의 가장 반민주적인 모습들은 그들의 옛 정신을 이어받은 신전대협과 함께 기록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이 기록에 진실로 답할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가 옳은 질문을 하고 있는지 항상 되묻겠습니다. 권력의 오만함이 시민들의 삶을 인질 삼아 대한민국과 인류 문명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대자보를 붙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