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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뒤집은 선관위 파문 속…출근한 노정희는 입 닫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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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마지막날인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신사1동 주민센터 투표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기표가 된 투표용지를 배부했다가 유권자들의 항의로 잠시 투표가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선관위는 7일 "9일 본 선거에서는 확진자 등이 일반 선거인 투표 뒤 동일 장소에서 오후 6시부터 7시 30분까지 직접 투표함에 넣는 방식으로 투표하도록 방침을 정하겠다"고 대책을 발표했다. 트위터 캡쳐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마지막날인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신사1동 주민센터 투표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기표가 된 투표용지를 배부했다가 유권자들의 항의로 잠시 투표가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선관위는 7일 "9일 본 선거에서는 확진자 등이 일반 선거인 투표 뒤 동일 장소에서 오후 6시부터 7시 30분까지 직접 투표함에 넣는 방식으로 투표하도록 방침을 정하겠다"고 대책을 발표했다. 트위터 캡쳐

여야 대선 후보의 박빙 승부 속에 사상 최대의 사전투표 열기까지 분출한 3·9 대선의 한복판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초래한 ‘부실투표’ 논란이 난데없이 끼어들었다. 지난 5일 확진자 및 격리자의 사전투표에서 ‘소쿠리 투표함’ 등 부실 논란이 불거지자 선관위가 결국 7일 대책을 발표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그마저도 “뒷북 대책” “부실 해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선관위를 질타했고, 국민의힘 측은 노정희 선관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시민단체들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노 위원장을 앞다퉈 고발하는 등 대선 이후에도 여진이 이어질 전망이다.

확진자, 오후 6시~7시 30분 투표함에 직접 투표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에 출근하고 있다. 뉴스1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에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선관위는 7일 오전 10시 과천 선관위 청사에서 노 위원장 주재로 비공개 긴급 전원회의를 열었다. 약 2시간의 회의 끝에 선관위는 확진자 등이 9일 오후 6시 이후 일반 선거인과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투표하도록 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5일처럼 확진자가 임시기표소에서 기표하면 투표 관리 요원이 용지를 대신 투표함에 넣는 이른바 ‘전달식 투표’가 아니라, 확진자가 투표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는 방식이다. 선관위 측은 “오후 7시 반까지만 투표소에 도착해 대기표를 받으면 이후에도 투표하도록 조치하고, 대기시간 단축을 위해 투표 관리 인력과 기표소도 최대한 늘리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같은 발표 뒤 “뒷북 대책”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익명을 원한 전직 선관위 인사는 “결국 인원과 기표소를 늘리겠다는 식의 땜질식 대책”이라며 “확진자 투표 우려는 이미 몇달 전부터 있었는데, 왜 엉성한 대응으로 부실 선거 논란을 자초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전 투표를 전후해 선관위 내부 익명 게시판에도 “실무를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는 식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특히 일반 유권자의 투표가 선거 당일 오후 6시를 넘어서까지 지연될 경우, 그 뒤에 투표하는 확진자의 투표 시간도 덩달아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선관위 측은 “3500개가량인 사전투표소에 비해 본 투표소는 1만4464곳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분산 효과로 지연이 심각하진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5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전투표소 측이 준비한 확진자·격리자용 투표용지 종이박스. 독자제공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5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전투표소 측이 준비한 확진자·격리자용 투표용지 종이박스. 독자제공

이날 대책 발표 후 이어진 브리핑에서 선관위 측은 각종 논란에 대해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이미 1번이나 2번에 기표된 투표용지가 투표하지 않은 확진자에게 배부된 것을 두고 김재원 선거국장은 “관리 요원이 깜빡한 실수”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김 국장은 “투표용지 운반 봉투를 재활용하다 보니, 관리 요원이 깜빡하고 봉투에서 투표지를 꺼내 투표함에 넣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선거인에게) 교부됐다”고 밝혔다.

사전투표 당일 신분 확인까지 마친 뒤 대기 시간 또는 투표 방식에 대한 불만 등을 이유로 투표하지 않은 이들이 본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지도 관심사였다. 김 국장은 “어떤 경우든 투표용지가 출력됐고, 그것이 누구의 투표용지인지 확인이 안 되면 본 투표 투표는 어려울 것”이라며 “해당 선거인이 선거 관리 요원에게 미투표 사실을 알리고 떠났거나, 출력된 투표용지가 누구 것인지 확인된다면 투표하도록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다수 투표소에서 용지 출력 뒤 투표를 하지 않은 선거인의 신상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수가 본 투표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참정권 침해가 아니냐는 지적에 김 국장은 “사실관계를 파악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말을 아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신분 확인 뒤 투표하지 않고 귀가하면 본 투표를 할 수 없다고 공지만 했어도 됐을 사안인데, 선관위 측이 안이한 판단이 화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선관위 측은 투표 대기시간 축소 방안에 대해 “확진자가 일찍 나와서 오래 대기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외출 허용시간을 오후 5시 30분 이후로 조정하겠다”고 답변하는 등 납득할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실 투표 논란 침묵한 노정희…선관위 대응도 도마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과 관련한 긴급위원회 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오전 10시부터 약 2시간동안 비공개로 열렸다. 노 전 위원장은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본선거 대책 마련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장진영 기자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과 관련한 긴급위원회 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오전 10시부터 약 2시간동안 비공개로 열렸다. 노 전 위원장은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본선거 대책 마련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장진영 기자

노 위원장의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사태가 터진 5일 출근하지 않아 논란에 휩싸였던 노 위원장은 이날 출근길에서 “본 선거 대책 마련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지만, 부실 투표 논란에는 침묵했다. 이날 긴급회의 이후에도 선관위 간부에게 질의응답을 맡기고,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선관위 관계자는 ”노 위원장이 8일 투표 독려 메시지를 내면서, 대국민 사과의 뜻을 밝힐 수도 있다”고 전했지만 실제로 이뤄질 진 미지수다.

선관위의 어설픈 대응도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선관위는 6일 “법과 규정에 따랐고 부실 소지는 없었다”는 취지의 사과문을 발표해 논란을 빚었다. 이후 문 대통령이 유감의 뜻을 밝히자 심야에 2차 사과문을 배포해 “국민의 믿음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자세를 낮췄지만, “중심을 잡고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할 선관위가 눈치 보기식 대응만 한다”(전직 중진의원)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이번 부실투표 논란은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향후 정국에 적잖은 파문을 일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 불복 논란은 불 보듯 뻔하다”며 “특히 득표율 3~4%포인트 이내의 승부가 벌어진다면 논란은 더 거세질 것이고, 차기 정부도 해당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CCTV 가려진 지역 선관위 사무실서 우편투표물 발견 논란 

관외 사전 우편투표물이 보관된 부천시 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실에 CCTV가 종이로 가려져 있다. 국민의힘 제공. 뉴스1

관외 사전 우편투표물이 보관된 부천시 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실에 CCTV가 종이로 가려져 있다. 국민의힘 제공. 뉴스1

이런 가운데, 이날 또 다른 논란도 불거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오전 부천시 선관위 사무국장실을 항의 방문했는데, 관외 사전투표 우편물 5만부가량이 플라스틱 박스 안에 쌓인 채로 발견됐다. 국민의힘 측에 따르면 사무국장실 CCTV가 종이로 가려져 있었고, 당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거세게 항의했다고 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다른 지역에서 투표한 유권자의 투표물은 우편물 형태로 해당 지역 선관위에 보내지고, 이후 각 정당 추천위원의 입회하에 우편투표함에 투입돼야 한다. 그런데 부천시 선관위에서는 우편물이 투표함에 투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CCTV가 가려진 사무국장실에 일시적으로 보관된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서영석 부천을 당협위원장에 따르면 부천시 선관위 관계자들은 “사전투표 훨씬 이전에 회의 등을 이유로 누군가 CCTV를 막아놓은 것 같고,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고 한다. 공직선거법 제176조에 따르면 우편투표함과 사전투표함은 영상정보처리기기가 설치된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투표함에 넣기 전 우편투표물에 대해서는 따로 관련 규정이 없지만, CCTV를 막은 채 보관한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관외 우편 투표물은 참관인들의 입회하에만 투표함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통상 특정 장소에 잠시 보관했다가, 당일 오후 투표함에 넣는다”고 설명했다.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이틀 앞둔 7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송영길 상임선대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이틀 앞둔 7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송영길 상임선대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권영세 국민의힘 총괄선대본부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확대선거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권영세 국민의힘 총괄선대본부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확대선거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정치권에서는 질타가 쏟아졌다. 국민의힘 측은 선관위 인적 구성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노 위원장과 문재인 정부를 동시에 때렸다. 권영세 선대본부장은 이날 오전 선대본 회의서 “선거 소관 부처인 행안부(전해철 장관)와 법무부(박범계 장관)에 모두 민주당 소속 장관을 앉혔고, 선관위원장은 이재명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대법관 출신”이라며 “선거관리위가 아니라 선거관여위라는 비웃음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위원장은 2020년 7월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대법원 주심을 맡았고, 대법원은 무죄 취지 판결을 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노 위원장은 좌편향 단체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오로지 정권과 사람에만 충성을 해왔다.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노 위원장이 5일 출근하지 않은 것을 두고는 “이 사람 제정신이냐”고 했고, 문 대통령을 겨냥해선 “불공정 선거관리를 조장한 몸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도 선관위를 성토하고 나섰다.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날 오전 당 회의에서 “선관위의 사후 해명도 불성실하고, 선관위원장은 5일 출근도 안 했다고 한다”며 “세계 16위의 민주국가이자 방역 모범국으로서 부끄럽다”고 지적했다. 송영길 대표도 “국민이 본 투표 때는 변화됐다고 느낄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거들었다.

선관위는 지난 5일 사전투표서 확진자 및 격리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비닐 팩이나 종이상자, 플라스틱 소쿠리 등에 담아 투표소 관계자가 대신 투표함으로 옮기게 해 논란을 빚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이렇게 모아둔 투표용지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방치하는 등 부실하게 관리해 “누가 투표용지를 가져가거나 바람에 날아가도 모르겠다”는 지적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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