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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 넣는건 부차적 문제" 공개된 투표지 유효표 논란 파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2일 차(지난 5일)에 벌어진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투표지 부실 관리 사태에 대해 노정희(59·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선관위의 책임을 묻는 시민단체의 고발이 빗발치고 있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이튿날인 6일 직권남용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노 위원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한 데 이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자유대한호국단 등이 7일 직권남용·직무유기 및 선거법 위반 혐의로 노 위원장과 김세환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박찬진 중앙선관위 사무차장 등에 대한 고발장을 대검에 제출했다. 이들은 선관위 관계자들이 헌법상 직접·비밀선거 원칙에 따른 선거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에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에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동선·기표소 분리했는데 투표함은 1개만 

관련 선거법 조항을 정리하면 이렇다. 157조(투표용지수령 및 기표절차) 4항은 ‘선거인은 투표용지를 받은 후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용지에 1인의 후보자를 선택해 투표용지의 해당란에 기표한 후 그 자리에서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접어 투표참관인의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전투표도 마찬가지다. 158조(사전투표) 4항에는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받은 선거인은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용지에 1명의 후보자를 선택해 투표용지의 해당 칸에 기표한 다음 그 자리에서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접어 이를 회송용 봉투에 넣어 봉함한 후 사전투표함에 넣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확진자·격리자의 경우 직접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지 못하도록 하는 특별대책을 시행했다. 관내 투표소의 경우 일반 유권자와 확진자·격리자의 동선과 기표소를 분리했는데, 투표함은 1개만 설치했다. 선거법 151조(투표용지와 투표함의 작성) 2항이 ‘하나의 선거에 관한 투표에 있어서 투표구(투표소)마다 선거구별로 동시에 2개의 투표함을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투표소에 대선 투표함을 2개를 둘 순 없다는 뜻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코로나19 확진자 및 격리자의 투표 방법 안내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코로나19 확진자 및 격리자의 투표 방법 안내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일부 투표사무원이 참관인 없이 넣은 게 문제”

중앙선관위는 대신 투표용지 외에 ‘임시기표소 봉투’를 배부한 뒤 확진자·격리자가 기표를 마치고 투표지를 접어 ‘임시기표소 봉투’에 넣어서 투표사무원에게 제출하고, 이후 투표사무원이 참관인 입회 아래 ‘임시기표소 봉투’에서 투표지가 공개되지 않도록 꺼내 투표자 대신 투표함에 투입하도록 했다. 일부 유권자들은 이 같은 중앙선관위의 조처가 직접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도록 한 선거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선거법 전문가인 황정근 변호사(법무법인 소백)는 “투표함에 직접 넣느냐는 건 부차적인 문제고, 투표함에 넣는 과정이 투명해서 의심할 여지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사무원이 참관인 없이 홀로 투표지를 수거해 투표함에 넣는 장면이 목격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참관인 동행 매뉴얼을 만든 건데 이를 지키지 않은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황 변호사는 “코로나 같은 초유의 상황에 대비해 정밀하게 법을 만들지 않아 선관위 입장에선 ‘전달’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면서도 “이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두 개의 투표함을 설치해도 큰 문제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전날 “직접투표와 비밀투표라는 민주주의 선거의 근본 원칙을 무시한 이번 사태가 주권자의 참정권을 크게 훼손했다”고 규탄한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도 선관위의 특별대책 자체를 문제 삼은 건 아니었다.

사전투표 둘째 날인 5일 오후 6시 40분쯤 부산 연제구 연산4동 제3투표소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에서 일부 유권자가 새 투표용지가 아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등에게 기표가 된 투표용지를 받았다. 경위를 밝혀달라는 유권자 항의가 이어지자 투표소 측은 "다른 확진자들이 투표한 용지를 투표함에 넣었어야 했는데 모르고 다시 나눠줬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투표소 측은 특정 후보가 찍힌 채로 잘못 배부한 투표용지 6장은 투표함에 넣어 유효표로 처리하고, 기표된 투표용지를 받은 6명은 다시 신분 확인을 거쳐 투표하도록 했다. 연합뉴스

사전투표 둘째 날인 5일 오후 6시 40분쯤 부산 연제구 연산4동 제3투표소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에서 일부 유권자가 새 투표용지가 아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등에게 기표가 된 투표용지를 받았다. 경위를 밝혀달라는 유권자 항의가 이어지자 투표소 측은 "다른 확진자들이 투표한 용지를 투표함에 넣었어야 했는데 모르고 다시 나눠줬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투표소 측은 특정 후보가 찍힌 채로 잘못 배부한 투표용지 6장은 투표함에 넣어 유효표로 처리하고, 기표된 투표용지를 받은 6명은 다시 신분 확인을 거쳐 투표하도록 했다. 연합뉴스

투표사무원 실수로 공개된 투표지, 유효표 맞나 

일각에선 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의 비밀침해죄로 처벌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선거법 167조(투표의 비밀보장)는 1항에서 ‘투표의 비밀은 보장돼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선거사무 관계 공무원이 이를 위반하면 241조(투표의 비밀침해죄)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황 변호사는 “몇 번에 기표했는지 보이지 않았다면 비밀투표 위반은 크게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구니·쇼핑백·종이상자와 같은 부실한 보관함에 투표지가 담겨 있었다 하더라도 ‘임시기표소 봉투’에 담긴 이상 기표내용이 보인 건 아니기 때문이다. 형사법 전문가인 김종민 변호사(김종민 법률사무소)는 “형사처벌 대상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허술한 관리 등 실정에 관한 건 정치적·행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사무원이 실수로 이미 기표된 투표지를 투표용지로 배부했다가 회수한 뒤 그대로 투표함에 넣어 유효표로 처리한 데 대해선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선거법 167조 3항은 ‘선거인은 자신이 기표한 투표지를 공개할 수 없으며, 공개된 투표지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공직선거관리규칙(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 547호)은 투표관리관이 선거인 스스로 기표한 투표지를 공개한 것을 발견한 때에만 ‘공개된 투표지’로 처리하도록 돼 있어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한편, 중앙선관위는 이날 긴급 전원회의를 열고 기존 임시기표소를 운영하는 방침을 바꿔 9일 본 투표 땐 확진자·격리자의 투표가 시작되는 오후 6시 이후 투표함에 직접 투표하도록 하는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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