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원유 금수 여파는, 韓 에너지 93% 수입 의존 ‘초비상’

중앙일보

입력 2022.03.07 11:40

업데이트 2022.03.07 17:21

“유럽 동맹국과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를 매우 적극적으로 검토(very active discussions)하고 있다.”

한국 에너지 수입, 과거 오일 쇼크 때와 비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국 에너지 수입, 과거 오일 쇼크 때와 비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6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방송 인터뷰에서 한 말이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었다. 세계 3대 산유국인 러시아의 원유 수출이 막힐 수 있다는 전망에 국제유가는 배럴당 130달러 선을 돌파했다. 에너지 공급량 93%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1970~80년대 오일쇼크(석유파동)와 맞먹는 충격에 직면했다.

이날 블링컨 장관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영국산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배럴당 139.13달러를 찍었다.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로, 역대 최고 기록인 146.08달러(2008년 7월 3일)에 바짝 다가섰다.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역시 장중 130.5달러까지 치솟으며 14년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다.

이날 블링컨 장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는 이란 핵 협상과는 무관하다”는 발언까지 하며 시장 충격을 키웠다. 이란산 원유 수출 재개가 석유 수급난을 일부 해소할 것이란 기대가 꺾이면서다.

에너지원별 공급 비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에너지원별 공급 비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가파르게 오르는 국제유가가 한국 경제에 미칠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통계연보’를 보면 2020년 기준 한국 1차 에너지 수요(공급)량 2억9208만 toe(석유환산톤) 가운데 수입은 2억7097만 toe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 쓰이는 에너지 92.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석유 37.7%, 석탄 24.7%, 액화천연가스(LNG) 18.8% 등 수입 화석연료 비중이 절대적이다.

중동전쟁으로 인한 1973~74년 1차 오일쇼크, 이라크의 이란 침공이 촉발한 79~80년 2차 오일쇼크와 맞먹는 충격이 예고되고 있지만. 한국의 에너지 여건은 40~50년 전보다 나아진 게 없다. 오일쇼크 직후인 81년 한국의 에너지 수요는 4572만 toe로 현재 5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쳤다. 대신 국내 석탄 생산ㆍ소비가 상대적으로 활발했던 덕에 당시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75%로 지금보다 낮았다. 세계 5위의 원유 수입국으로 등극한 현재 한국이 70~80년대보다 오일 쇼크에 더 취약한 상태다.

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러시아산 원유는 5375만 배럴로, 전체 원유 수입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로 크지 않다. 정부는 러시아산 수입 금지 조치가 본격화하면 석유는 미국ㆍ북해ㆍ중동산, 석탄은 호주ㆍ남아프리카공화국ㆍ콜롬비아산, 가스는 카타르ㆍ호주ㆍ미국산 물량으로 각각 돌리는 비상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다. 문제는 다른 국가도 비슷한 대체선 찾기에 이미 나섰다는 점이다.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사태 확산에 따른 불확실성, 사재기 현상까지 겹치며 원유ㆍ가스ㆍ석탄 수급난은 더 심해지는 양상이다.

6일 서울의 한 주유소 유가정보. 연합뉴스

6일 서울의 한 주유소 유가정보. 연합뉴스

이전 2008년 고유가 사태 때도 도달하지 못한 국제유가 배럴당 150달러 돌파가 예상되는 등 상황은 심각하다.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무역 적자 확대, 소비자물가 상승률 4% 돌파, 투자ㆍ소비 위축, 경제성장률 둔화 등 경제 전방위로 위험이 번질 수 있다.

변준호 흥국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경제 원유 의존도가 가장 높다”며 “경제 규모 대비 원유 소비량이 가장 많다는 것인데, 높은 원유 가격은 물가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적지 않은 만큼, 당분간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인플레이션(고물가)과 중앙은행의 긴축 우려를 자극할 수 있겠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