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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달나라금토끼의 별별시각

장애인 집회, 짠하면서도 꺼림직한 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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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금토끼 (필명) 현직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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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을 당사자 입장에서 쓴 홍서윤 더불어민주당 청년대변인의 글을 읽고 여러 장애인 인권 시위 현장에서 이들과 마주해온 현직 경찰 달나라금토끼(필명)이 답글을 보내왔습니다.

경찰관으로 일하면 좋든 싫든 사람들 하소연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집회 현장에 나가는 게 참 힘들고 괴롭다. 적잖은 세상 사람들 눈엔 시위하는 사람들이 단지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만 보이겠지만, 그 이면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사람들이 듣지 않으려는 이야기가 많다.

장애인 단체 집회도 마찬가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장애인들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라고 한다. 전장연 활동 전엔 집 밖을 돌아다니기는커녕 사회생활도 못 하면서 죄인처럼 집안에 갇혀 평생을 보내던 분들을 대신해 정부 정책과 사회 변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얌전히 요구했더니 아무도 듣지 않더라"는 어느 장애인의 말은 전장연 활동을 절실하게 대변한다. 장애인들이 더 이상 과격해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진심으로 응원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차에 탑승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이날 오전 왕십리역, 여의도역, 행당역 및 광화문역에서 벌어진 시위 여파로 지하철 5호선 방화행 열차 및 하남검단산행 열차 모두 지연 운행 되었다. 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차에 탑승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이날 오전 왕십리역, 여의도역, 행당역 및 광화문역에서 벌어진 시위 여파로 지하철 5호선 방화행 열차 및 하남검단산행 열차 모두 지연 운행 되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전장연 집회를 무조건 옹호만 해야 한다고? 뭔가 찝찝하다.

첫 번째 찝찝함은, 장애인 단체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몰지각한 사람으로 몰아간다는 데서 나온다. 반대 목소리를 우물에 독 뿌리기 오류로 대한다는 것이다. 불편을 감수하고 집회를 인내하는 게 우리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아니다. 되려 불편의 목소리를 감수해야 하는 건 집회를 개최하는 단체다. 사람들에게 불편을 일으켜 당신들 주장에 귀 기울이게 하는 게 집회의 목적 아닌가? 그런 점에서 “우릴 욕해도 좋으니 정부에 한마디만 해달라”고 하는 박경석 전장연 대표의 목소리가 차라리 양심적이다. 불편을 도화선 삼아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으면,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집회 단체의 몫이다.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미안하지만, 그 집회는 실패한 집회고, 남는 것은 불편한 기억뿐이다.

두 번째 찝찝함은, 장애인 단체가 목표로 하는 ‘이동권 보장’은 정부 단독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이루는 것이라는 데서 나온다. 선진국의 예를 들어보자. 저상버스가 많은 것도 장애인 이동에 중요하지만, 저상버스에 장애인이 타는 동안 아무런 위화감과 불만 없이 기다리는 다른 시민의 존재 역시 장애인 이동을 보장하는 데 꼭 필요한 요인이다. 그런데 전차처럼 철갑을 두른 전동휠체어를 타고 살벌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제지하는 경찰에게 돌진하는 분들도, 만원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을 밀쳐내고 자신의 피켓을 멀찌감치 펼쳐놓는 분들도, 딱히 사회 전체를 설득해서 목표를 이루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구성원들이 14일 서울시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탑승해 광화문역까지 이동하며 장애인 대중교통 이동권 보장 촉구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2.2.14/뉴스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구성원들이 14일 서울시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탑승해 광화문역까지 이동하며 장애인 대중교통 이동권 보장 촉구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2.2.14/뉴스1

마지막 찝찝함은, 장애인 단체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장애인 단체가 시위하면 ‘전투형’ 전동휠체어 한 대에 경찰관이 5명 이상 배치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 휠체어 탄 장애인을 연행하거나 수갑 채우는 건 상식에 맞지 않기에 수세적 대응을 하는 이유도 있지만, 어디 한 곳 잡거나 막을 곳도 없는 ‘소형 장갑차’를 적은 인원이 잘못 상대했다가는 경찰관이 크게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출근 시간 지하철을 못 움직이게 잡아놓으면 제때 출근 못 하는 시민, 이들의 민원을 상대하는 교통공사와 경찰, 모든 관계자가 치르는 비용을 따지면 과연 ‘장애인 단체만’ 투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비용을 감내하는 사회를 향해 ‘우리가 고생해서 엘리베이터 설치하면 너희도 좋지 않으냐?’라고 말하는 것은 찝찝함을 넘어서 경멸스럽기까지 하다.

여러 사람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 간단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을 재삼 깨우치게 된다.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하거나 멍청하지 않다. 지금 장애인 단체를 향한 사람들의 혐오와 경멸의 시선을, 장애인을 천시하던 수십 년 전의 시선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 단순하고 오만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진심으로 장애인들이 더 이상 저렇게 과격하지 않아도 자신의 꿈을 다 이룰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고, 기꺼이 그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