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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으로 내 인생을 시뮬레이션? 미술관으로 간 가상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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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안 쳉, BOB 이후의 삶:찰리스 연구, 영상 스틸, 2021. 48분짜리 애니메이션이다. [사진 리움미술관]

이안 쳉, BOB 이후의 삶:찰리스 연구, 영상 스틸, 2021. 48분짜리 애니메이션이다. [사진 리움미술관]

 이안 쳉, BOB 이후의 삶:찰리스 연구, 영상 스틸, 2021. [사진 리움미술관]

이안 쳉, BOB 이후의 삶:찰리스 연구, 영상 스틸, 2021. [사진 리움미술관]

이안 쳉, BOB 이후의 삶:찰리스 연구, 영상 스틸, 2021.[사진 리움미술관]

이안 쳉, BOB 이후의 삶:찰리스 연구, 영상 스틸, 2021.[사진 리움미술관]

 이안 쳉, 사설, 완벽을 향해 분기하다, 영상 스틸, 2015~2016. [사진 리움미술관]

이안 쳉, 사설, 완벽을 향해 분기하다, 영상 스틸, 2015~2016. [사진 리움미술관]

인터넷 게임에서 보던 가상세계가 미술관 안에 펼쳐졌다. 전시장 벽엔 평면 스크린이 걸려 있고, 화면엔 기이하게 생긴 가상세계 속 캐릭터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게임 영상을 쏙 빼닮은 이것은 미국 작가 이안 쳉(37)의 라이브 시뮬레이션 작품 '사절(Emissaries) 3부작'. 그런데 이 작품엔 '러닝 타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작가에 따르면, 이것은 "영원히 반복해서 스스로 플레이되는 비디오 게임"이기 때문이다.

리움 기획전 '이안 쳉:세계건설' #인간 의식에 대한 철학적 탐구 #SF적 상상력 담은 영상 5점 #"어렵다"vs "흥미롭다" 엇갈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이안 쳉의 전시 '이안 쳉: 세계건설(Ian Cheng: Worlding)'이 열리고 있다. 이안 쳉은 인공지능(AI)과 게임 엔진을 사용해 가상 생태계를 보여주는 작업으로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은 작가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도 출품했다. 아시아에서의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선 그의 대표작 '사절 3부작'(Emissaries)을 비롯해 리움이 제작 지원한 신작 애니메이션 'BOB 이후의 삶: 찰리스연구' 등 영상 작품 총 5점을 보여준다.

특히 국제 미술계에 그의 이름을 알린 대표작 '사절' 3부작은 의식의 진화과정에 대한 작가의 SF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산 근처에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고대 인류, 몸을 가진 삶을 경험하기 위해 생명체를 점유하는 수퍼지능 등의 얘기를 3부에 나누어 담았다. 영상은 디지털 게임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인공지능이 장착된 캐릭터가 주변 환경과 교류하고 반응하면서 늘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식이다.

작품 제목의 '사절'은 가상 세계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존재로, 그가 임무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면 게임이 끝나고 새로 시작된다. 게임은 매번 다르게 흘러가기에 작품은 끝없이 이어진다. 작가는 "고대 인류에게 의식이 없었다는 가정에서 출발해 인간이 의식을 처음 갖게 되고 진화하는 과정에 대한 상상을 라이브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했다"고 말했다.

최근작인 '밥(BOB) 이후의 삶:찰리스 연구'는 러닝타임 48분에 달하는 애니메이션으로, 'BOB'이라는 인공지능이 심어진 소녀 찰리스의 이야기다. 험한 세상에서 찰리스가 잘 자라도록 이끌게 고안된 인공지능 BOB은 순간마다 최적의 인생 경로를 시뮬레이션하며 찰리스가 그에 맞는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BOB이 찰리스의 삶을 이끌면서 찰리는 점점 삶에 관심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이안 쳉, 사설, 완벽을 향해 분기하다, 영상 스틸, 2015~2016. [사진 리움미술관]

이안 쳉, 사설, 완벽을 향해 분기하다, 영상 스틸, 2015~2016. [사진 리움미술관]

리움미술관 기획전 이안쳉:세계건설' 전시 전경. [사진 리움미술관]

리움미술관 기획전 이안쳉:세계건설' 전시 전경. [사진 리움미술관]

Ai와 게임 엔진을 사용해 가상 생태계를 구축한 선구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은 이안 쳉. [사진 김재원]

Ai와 게임 엔진을 사용해 가상 생태계를 구축한 선구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은 이안 쳉. [사진 김재원]

이안 쳉의 영상은 '게임'의 옷을 입은 '철학 탐구서'에 가깝다. AI와 게임 엔진 등 첨단 기술로 판을 벌였지만, 작품의 본질은 '인간의 의식은 무엇인가' '내가 내 삶을 완성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에 심어진 인공지능 칩이 삶에 내재된 수많은 서브플롯을 시뮬레이션하고 최적의 경로로 이끌어간다는 설정이 섬뜩하면서도 흥미롭다. 이안 쳉은 UC 버클리에서 인지과학과 미술을 전공했고, 컬럼비아대에서 비주얼아트 석사 과정을 마쳤다.

작가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인생각본(Life Script)을 가지고 있다고 한 심리학자 에릭 번(1910~1970)의 '인생각본' 이론에 흥미를 느꼈다"며 "중요한 것은 각본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내 인생의 각본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자각하고 성찰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각자 자신의 각본을 깊이 들여다보고, 내가 계속 가져갈 것과 버릴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삶을 이끌어나갈 때 비로소 성숙해지고,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작업에 AI를 활용한 것에 대해서는 "복잡한 인간의 의식을 다루기 위해선 AI를 활용하는 방법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게임 '심즈'와 '심시티' 등을 제작한 게임 디자이너 윌 라이트(62), 한 인간에게 여러 하부 인격이 있다고 주장한 정신분석학자 칼 융(1975~1961)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의 앨범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가 칼 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안다"며 "칼 융의 사상이 인간으로서 성숙해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젊은 층에 영향력 있는 BTS가 칼 융을 언급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시를 미리 본 기자들과 관람객 사이에서는 "흥미롭다"와 "어렵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미래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은 예리하지만, 게임에 대한 친밀도나 주제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반응은 크게 달랐다. 작가의 깊이 있는 주제 의식, 게임엔진 활용 등 혁신적 방법론에 비해 시각적 구현이 아쉽다는 평가도 있다.

리움은 올해 첫 기획전으로 대중성보다는 실험성을 택했다. '이안 쳉:세계건설'과 더불어 젊은 작가 8인을 소개하는 '아트스펙트럼2022'도 같은 맥락이다. 의욕이 넘쳐 지나치게 앞서간 것인지,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은 것인지 더 지켜볼 일이다. 전시는 7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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