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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의 향기?... 고진영은 어떻게 70대 타수를 잊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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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고집영이 HSBC 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있다. 그의 13번째 LPGA 투어 우승컵이다. [AP]

고집영이 HSBC 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있다. 그의 13번째 LPGA 투어 우승컵이다. [AP]

고진영(27)은 지난겨울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팜스프링스 지역 골프장을 알선한 중개업자의 잠적으로 훈련 캠프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고진영이 훈련한 골프장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여려 명 나오는 등 혼란했다.

고진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고진영의 용품 스폰서인 브리지스톤 골프는 선수 지원 및 격려 차 이민기 회장 등이 방문했다. 선수 위로 만찬에 고진영은 늦었다.

마침 그의 샷을 점검하는 날이었는데 측정 데이터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고진영은 이를 해결할 때까지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고진영은 스탭들에게 "이 문제 해결할 때까지 한국 갈 생각하지 말아요"라고 했다고 한다. 측정장비의 배터리가 나갔는데도 고진영은 연습장을 떠나지 않았다.

문제 해결 못하면 연습장에서 안 나와 

신용우 브리지스톤 상무는 “가장 먼저 나와 가장 늦게까지 훈련하더라. 물론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이 또 있지만, 단체생활에 맞춰 훈련을 중단한다. 그러나 고진영은 마음에 들 때까지,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끝까지 연습장에서 나오지 않더라"고 했다.

신 상무는 "세계랭킹 1위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이기적이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자신의 퍼포먼스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타이거 우즈가 연상된다. 이런 선수를 지원하는 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고진영이 놀랍다. 고진영은 6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장의 탄종코스에서 벌어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4라운드에서 6언더파 66타를 쳐, 합계 17언더파로 전인지, 이미지(호주)를 2타 차로 제쳤다.

고진영은 최근 5경기에서 4승, 최근 10경기에서 6승을 했다. 랭킹 2위 넬리 코다(미국)과의 간격을 확 벌리고 있다.

114홀 노보기, 우즈 기록 110홀 넘어 

LPGA 투어 통산 13승을 한 고진영의 통산 상금은 935만 달러로 조만간 1000만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분간 고진영의 질주는 계속될 전망이다.

우승과 함께 기록도 세웠다. 그는 지난해 10월 열린 BMW 챔피언십 1라운드(71타) 후 15개 라운드에서 모두 60대 타수를 기록했다. 이는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유소연, 고진영이 함께 가지고 있었던 최다 라운드 연속 60대 타수 기록(14)을 경신한 것이다.

고진영은 또 지난해 7월 에비앙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76타를 기록한 후 이후 30개 라운드 연속 언더파를 쳤다. 역시 소렌스탐과 고진영이 공유하던 29라운드 연속 언더파 기록을 깼다.

그린을 살피고 있는 고진영. 그는 이번 대회에서 그린 적중시 퍼트 수 1.67을 기록했다. [AP]

그린을 살피고 있는 고진영. 그는 이번 대회에서 그린 적중시 퍼트 수 1.67을 기록했다. [AP]

고진영은 이 기간에 66홀 연속 그린 적중 기록도 세웠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최다 연속 그린 적중 기록은 51홀이다. PGA 2부 투어인 콘페리 투어 기록은 51, 챔피언스(시니어) 투어 기록은 48이다.

고진영은 2019년엔 114홀 연속 노보기 경기를 했다. 타이거 우즈의 110홀 연속 노보기 기록을 넘는다.

고진영이 뛰어난 퍼포먼스를 내는 무기는 아이언이다. LPGA 신인이던 2018년과 2019년 그린 적중률이 1등이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대회 참가 수가 적어 기록이 없지만, 2021년에는 2위에 올랐다.

소렌스탐 능가하는 송곳 아이언

78.0%로 렉시 톰슨과 그린 적중률이 똑같은데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뒤졌다. 고진영이 코스가 어려운 큰 대회 위주로 참가한 것을 고려하면 최고의 아이언 플레이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고진영은 여자 골프 사상 가장 날카로운 아이언 플레이어라는 평가도 받는다. 고진영의 그린 적중률은 소렌스탐의 전성기 기록과 비슷하다. 소렌스탐과 함께 경기했던 JTBC골프 한희원 해설위원은 “소렌스탐은 장타를 날린 뒤 가까운 거리에서 그린을 공략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고진영의 아이언샷이 좀 더 나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고진영은 JTBC 골프의 골프의 재발견 프로그램에 출연, “그린과 거리가 멀다면 그린의 넓은 쪽을 겨냥하고, 150m 이내 가까운 거리에서 샷을 할 경우 오르막 퍼트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친다. 그린에 올라가 있다면 버디 기회는 나오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의 또 다른 무기는 정신력이다. 고진영은 불리한 조건에서 전혀 움츠러들지 않는다. 6일 경기에서 고진영은 코너에 몰렸다. 선두 전인지, 이정은6과 한 조에서 경기했는데 이정은6이 전반 4타, 아타야 티티쿨(태국)이 전반 5타를 줄이며 도망갔다.

위기가 되면 진짜 고진영이 나온다

고진영은 12번 홀에서는 그린을 넘기면서 보기를 했다. 이 보기로 선두 그룹과 3타 차로 벌어졌다.

이런 위기에서 진짜 고진영이 나온다. 고진영은 이후 4개 홀에서 모두 버디를 잡아냈다.

홀 한 뼘 옆에 아이언을 붙이기도 했지만, 그린 밖에서 버디 퍼트를 넣기도 하고, 티샷을 벙커에 넣고도 버디를 잡아냈다. 상황이 어떻더라도 버디를 욱여 넣었다.

18번 홀에서도 버디를 잡아, 고진영은 마지막 6개 홀에서 버디 5개를 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전성기 타이거 우즈의 클러치 능력이다.

지난해 10월 소렌스탐의 연속 60대 타수 기록을 깰 기회가 무산됐을 때도 그랬다. 한국에서 벌어진 BMW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고진영은 71타에 그쳤다.

맥이 빠질 듯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고진영은 BMW 챔피언십 2라운드부터 64타, 67타, 64타를 몰아쳤고, 연장 끝에 임희정에 역전 우승했다.

지난 겨울 팜스프링스에서 훈련하고 있는 고진영. [브리지스톤 골프 제공]

지난 겨울 팜스프링스에서 훈련하고 있는 고진영. [브리지스톤 골프 제공]

타이틀전 나가는 복서가 준비하듯 훈련

이후 그는 70대 타수를 잊었다. 고진영은 63타 같은 슈퍼 라운드는 거의 없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고 버티며, 위기에서 더 힘을 발휘해 기어이 60대 타수를 지키곤 했다.

이번 대회는 그의 시즌 데뷔전이다. '데뷔전은 실전감각을 올리는 대회' 같은 핑계 같은 건 그에게 없다. 고진영은 시즌 데뷔전에서 2번 우승했다.

그는 LPGA에 “나는 골프의 모든 것을 사랑하다. 골프의 정교함, 움직임, 집중력 같은 것들이다. 아버지는 어릴 적 복싱을 하셨다. 아버지가 골프에 대한 조언을 해주시지는 않았지만 강인함에 대해 강조하셨다. 그는 항상 ‘무슨 일을 하든 체력이 성공의 열쇠’라고 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줄넘기를 하면서 타이틀전에 나가는 복서가 훈련하듯 준비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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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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