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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읽힐 때까지 살아있길" 우크라서 온 편지에 韓 울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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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편지가 한국에서는 일요일에 낭독될 것으로 압니다. 그때까지 우리 가족과 제가 여전히 살아있기를 기도합니다.”

6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앞. 한국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안나(29)가 읽은 편지에는 생존을 바라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안나의 친구인 사흐노 카테르나(28)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떠나 서부 도시 흐멜니츠키 근처로 피신한 뒤 편지를 보냈다. 안나는 이날 우크라이나인 200여 명이 참석한 러시아 규탄 및 전쟁 중단 촉구 집회에서 이 편지를 우크라이나어로 읽었고 통역을 통해 한국어로도 집회 현장에 울려 퍼졌다.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6일 오전 서울 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6일 오전 서울 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전 세계에 봄 왔지만…우리는 전쟁 중”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주거지역에 있는 아파트가 러시아군의 폭격 당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주거지역에 있는 아파트가 러시아군의 폭격 당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카테르나가 지난 1일(현지시간) 쓴 편지엔 전쟁의 악몽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는 “오늘은 전 세계엔 봄의 첫날이지만 우리에겐 전쟁 6일째”라며 “제 딸 알리사(2)는 잠을 자다 ‘총알, 총알 날아’라고 소리 지르며 악몽에서 깨는 게 일상이 됐다”고 적었다. 또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성 때문에 공포에 질려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1분 1초가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안나가 카테르나의 편지를 읽어 내려갈 때마다 집회 곳곳에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편지를 낭독한 안나의 부모님도 우크라이나에 거주 중이다. 안나는 “부모님에게 연락이 빨리 오지 않으면 너무 무섭고 두렵다”며 “악몽 같다. 왜 평화롭게 살던 우크라이나인들이 끔찍한 전쟁에 휘말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2014년부터 한국에 거주했다는 올렉시(29)의 친구들도 우크라이나에서 직접 총을 들었다고 한다. 올렉시는 “제 친구들은 전쟁에 참가 중이다. 이모와 이모부는 러시아가 점령한 도시에 갇혀있다. 가슴이 찢어진다. 제가 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르키우 인근에서 왔다는 폴리나(20대)는 러시아에 대한 보이콧을 촉구했다. 그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나쁜 정부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를 폭격하고 있다”며 “테러 국가인 러시아의 문화, 스포츠 등 행사와 제품을 모두 보이콧해 주시기를 부탁한다”며 고국을 향한 연대를 부탁했다.

해바라기 든 러시아인…“푸틴, 전쟁 멈춰라”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체한(滯韓)러시아인 주최로 열린 전쟁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 양수민 기자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체한(滯韓)러시아인 주최로 열린 전쟁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 양수민 기자

이날 오후 3시에는 러시아인들의 반전 집회도 열렸다. 한국에 거주 중인 러시아인 등 30여명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푸틴 살인마” “전쟁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우크라이나 국화인 해바라기를 들고 집회에 참여한 러시아인 아나스타시야 미하일로바(26)는 “푸틴과 푸틴 정부에 반대한다”며 “러시아에서도 푸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위터 등 SNS에는 러시아인들이 ‘새로운 국기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며 기존 러시아 국기에서 맨 아래 붉은색을 흰색으로 칠한 ‘새로운 국기’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미하일로바는 “제 증조할아버지가 우크라이나 사람이라 저도 반은 우크라이나인”이라며 “이 전쟁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패럴림픽에서도 “전쟁 끝나기를 소망”

5일 오전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의 국립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바이애슬론 남자 스프린트 좌식 6㎞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우크라이나의 타라스 라드가 같은 팀 동료 막심 야로비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전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의 국립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바이애슬론 남자 스프린트 좌식 6㎞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우크라이나의 타라스 라드가 같은 팀 동료 막심 야로비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도와달라는 목소리는 2022 베이징동계패럴림픽에서도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첫 메달을 안긴 바이애슬론 남자 스프린트 좌식 6km 은메달리스트 타라스 라드는 “제 메달로 (전쟁이) 우크라이나를 멈출 수 없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소망하고 있다”고 했다. 여자 스프린트 시각장애 6km 금메달을 차지한 옥사나 쉬시코바도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standwithukraine(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 등 해시태그를 통해 응원과 기부를 촉구하는 글이 퍼지고 있다.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에 숙소를 예약하고 방문하지 않는 식의 기부 운동이 펼쳐졌다. 배우 임시완은 지난 4일 우크라이나의 숙소를 예약하고 가지 않는 ‘착한 노쇼’ 인증샷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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