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당 확진자 20명? 수백명 몰렸다…선관위 초유의 대형사고

중앙일보

입력 2022.03.06 18:41

업데이트 2022.03.06 20:06

5일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의 사전투표 진행 과정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부실 관리 논란이 발생하면서 선관위가 유권자들과 정치권으로부터 난타를 당하고 있다. 최근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충분한 대비를 했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선관위가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하다 화를 불렀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마지막날인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신사1동 주민센터 투표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기표가 된 투표용지가 배부됐다. 유권자들이 항의하자 잠시 투표가 중단됐고 선관위는 "직원의 착오"라고 해명했다. 뉴스1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마지막날인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신사1동 주민센터 투표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기표가 된 투표용지가 배부됐다. 유권자들이 항의하자 잠시 투표가 중단됐고 선관위는 "직원의 착오"라고 해명했다. 뉴스1

20대 대선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안은 지난달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본투표 시간을 오후 6시부터 7시 30분까지 연장해 확진·격리자들이 따로 투표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사전투표 방식은 법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국회 정개특위 여당 관계자는 “당시 여당에선 본투표일 하루만 3시간 연장을 해 이들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주장했는데, 선관위 측에선 본투표일에 1시간 30분만 연장하고 사전투표 2일차에 시간 연장 없이 확진·격리자의 공간만 분리해서 투표하면 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선관위 측이 상당히 자신 있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실무자의 말을 따르는 쪽으로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선관위의 ‘자신 있는 태도’는 지난달 9일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위 회의록 곳곳에서 나타났다.

이날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5대 대선은 약 39만 표, 16대는 57만 표 차이로 결정이 났다”며 “투표일에 100만명 이상의 국민이 선거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민심이 왜곡될 우려가 상당히 크니 선관위에서 철두철미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이번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의 참정권이 잘 보장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방안을 마련해주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세환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질병청과 작년 말부터 회의를 여러 차례 하면서 확진자 등이 참정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최대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충분히 예상되는 거라서 거기에 맞는 조정 방안도 다 갖고 있다”고 장담했다.

투표용지 전달하는 ‘바구니 투표’ 왜 나왔나

5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전투표소에서 준비한 확진·격리자의 투표용지를 수거하기 위한 종이 상자. 연합뉴스

5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전투표소에서 준비한 확진·격리자의 투표용지를 수거하기 위한 종이 상자. 연합뉴스

그러나 5일 사전투표 현장에서 확진·격리 유권자의 가장 큰 반발을 부른 건 ‘바구니 투표’였다. 자신의 투표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지 못하고 투표소 관계자에게 건네 대신 투표함에 넣도록 한 것이다. 이는 공직선거법 151조 2항에 따라 하나의 투표소에서 동시에 2개의 투표함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확진·격리자의 투표용지를 투표소 관계자가 플라스틱 바구니, 택배 상자, 쓰레기봉투 등 신뢰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수거하면서 사전투표 현장의 혼선은 커졌다. 일부 지역에선 참관인이 투표용지 수거함을 열어둔 채 지키지 않거나, ‘이재명 후보’에 도장이 찍힌 투표용지를 나눠 줘 유권자의 항의로 투표가 잠시 중단되는 일도 벌어졌다.

사전투표 시간 분리 왜 안 됐나

당초에 이런 혼선을 막기 위해 지난달 9일 정개특위 회의에서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비격리자와 확진·격리자의 동선을 근본적으로 분리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두 그룹의) 투표 시간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두 그룹의 투표 시각을 분리하면 확진·격리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을 수 없던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김세환 사무총장은 “격리·확진자를 100만명으로 추산해도 21대 총선이나 4·7 재·보궐선거에서 선관위가 관리했던 방식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정개특위 여당 관계자는 “비공개 소위에서 선관위 측이 투표 시간을 연장할 경우 행정 비용이 더 들고 추가 인력을 구할 방법이 없다며 완강하게 반대했다”며 “현장에서 인력을 구할 수 없다는데 무조건 된다고 했다가 문제가 생겨선 안 되니 선관위의 말을 들어주게 됐다”고 말했다.

왜 장시간 대기해야 했나

코로나19에 감염된 상태의 유권자들을 장시간 실외에서 대기하도록 한 점도 확진 유권자를 분노하게 한 지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열이 있는 상태서 추위에 1시간 넘게 기다리다 보니 몹시 힘들었다”는 글이 여러 개 올라오면서 “본투표일에 참여하는 확진·격리자의 투표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런 문제에 대해 홍정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9일 정개특위 회의서 “확진·격리자의 참정권 행사에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가 걱정”이라며 “100만명의 분산이 제대로 조율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이에 김세환 총장은 “확진·격리자 100만명 중 20만명이 서울에 있다고 가정하고, 사전투표율을 30%로 보면 1개 투표소당 약 20명 정도로 분산된다”며 “지난 선거 때 걸린 시간을 측정해보니 1명당 약 5분 이내로 소요됐기 때문에 최대 40분 정도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편차를 플러스 100%로 잡아도 40명인데 1시간 이내면 투표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며 “이런 것들을 다 망라해서 방안을 가져가고 있기 때문에 염려할 것은 크게 없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5일 서울에선 사전투표소마다 수백명씩의 확진자들이 몰려들었다. 김세환 총장이 추정했던 ‘20~40명’과는 천지차이다. 2월9일(5만4122명) 무렵과 3월5일(24만3628명) 무렵의 하루 확진자 발생 규모는 차원이 다른데도 선관위는 그냥 준비한 대로만 일을 진행하다 대형 사고를 일으킨 셈이다.

이와중에 사전투표가 진행되는데도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뭇매를 맞고 있다. 5일 밤 선거관리 부실 논란이 불거지자 유경준·김웅·김은혜·이영 등 국민의힘 의원이 오후 10시쯤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에 항의 방문했는데 노 위원장은 없고 김세환 사무총장 등만 있었다고 한다. 노 위원장은 비상임이기 때문에 매일 출근하지는 않다는게 선관위측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야당측은 “일년에 몇일 안되는 선거날 만큼은 선관위원장이 사무실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챙겨야 할 것 아니냐”고 따졌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대본부장은 “책임질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선관위 긴급현안 보고=이와 관련해 6일 국회 행정안전위 여야 의원들은 긴급회의를 열어 중앙선관위 측의 현안 보고를 받았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은 “많은 국민이 사전투표에 대해 의심을 가진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수차례 사전투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해 선관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명백하게 해명해달라”고 말했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이번에 유례없는 사전투표율이 나와 굉장한 축제 분위기가 될 수 있었는데 선관위의 관리 부실이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했다”며 “선관위가 이런 걸 예측 못 했다면 정말 큰 문제”라고 말했다.

박찬진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은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과 준비를 했는데 선거란 것이 항상 할 때마다 이번처럼 예기치 않은 부분이 발생한다”며 “여러 지적에 대해 겸허히 수용하고 국민들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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