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토치 불에 초토화' 묵호항 폐허 됐다…"추억까지 잿더미" 망연자실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강풍에 날아온 ‘도깨비불’ 순식간에 주택 전소 

6일 오전 강원 동해시 묵호동 주변 건물들이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잿더미로 변한 모습. 박진호 기자

6일 오전 강원 동해시 묵호동 주변 건물들이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잿더미로 변한 모습. 박진호 기자

“강풍에 날아든 불씨가 순식간에 집을 덮쳐 전부 불에 탔습니다.”

6일 오전 강원 동해시 묵호동 곳곳은 마치 폭격을 맞은 도시처럼 변했다. 주민 김칠성(77·여)씨는“불씨가 날아다니고 연기가 자욱해 대피했었는데 돌아와 보니 지붕이 주저앉고 집이 잿더미가 됐다”며 “이사를 앞두고 있었는데 냉장고, TV, 소파부터 작은 집기류까지 모두 불에 탔다”고 말했다.

불씨가 날아들면서 김씨의 집 주변에서만 주택 등 건물 8동이 불에 탔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잿더미로 변한 집을 바라봤다. 주민 이형국(50)씨는 “어린 시절부터 추억이 많은 집이라 불을 끄려고 들어가려 했는데 주변에서 말려 못 들어갔다”며 “주택마다 가스통 등이 있는 데다 연기가 자욱해 호흡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전날인 지난 5일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은 동해지역 산림과 주택을 집어삼키며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현재 동해시가 파악한 산림 피해면적은 2100㏊에 이른다. 또 주택 등 건물 58동이 전소했고, 29동이 일부 소실됐다. 현재 주민 187명이 망상컨벤션센터, 국민체육센터 등 임시대피소로 대피한 상태다.

동해시 산림 피해 면적 2100㏊ 추정

지난 5일 오후 강원 동해시 묵호항 일대가 연기로 뒤덮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일 오후 강원 동해시 묵호항 일대가 연기로 뒤덮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6일 오전 강원 동해시 묵호동 주변 건물들이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잿더미로 변한 모습. 박진호 기자

6일 오전 강원 동해시 묵호동 주변 건물들이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잿더미로 변한 모습. 박진호 기자

이번 강릉·동해 산불은 지난 5일 오전 1시8분쯤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주택에서 난 불이 인근 산으로 옮겨붙으면서 시작됐다. “3년 전인 2019년 4월에 발생한 산불과 판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으로 동해지역을 덮치면서 산림 1260㏊와 주택 등을 태우고 610억 원 상당의 피해를 냈다.

이번에도 강풍에 산불이 급속도로 번지면서 피해가 컸다. 더욱이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면서 진화헬기 등 장비 지원이 부족해 진화에 애를 먹었다. 지난 5일 동해시는 진화 헬기 5대 등 장비 166대와 진화대 1659명의 인력을 동원해 산불 진화에 나섰지만 바람이 강하게 부는 데다 장비도 부족해 결국 주불을 잡지 못했다.

이에 산림청 중앙산불방지 대책본부는 동해안 등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이날은 일출과 동시에 산불진화헬기 104대, 산불진화차 777대, 산불진화대원 1만4835명을 투입했다. 경북 울진군과 강원 삼척시 산불 현장에 산림청 헬기 31대 등 산불진화헬기 50대를 투입했다. 또 산불진화차 327대와 진화대원 4101명이 현장에서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산림청 일출과 동시 진화헬기 104대 투입 

지난 5일 오후 산불이 확산한 강원 동해시 대진동에서 소방대원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오후 산불이 확산한 강원 동해시 대진동에서 소방대원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강릉시·동해시 산불 현장에서는 산불진화헬기 29대와 산불진화차 354대, 진화대원 9030명이 산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 밖에도 강원 영월군 산불 현장엔 산불진화헬기 11대, 경기 안산시 6대, 대구 달성구 5대, 부산 금정구에 3대가 투입됐다. 남태헌 중앙산불방지대책본부 차장은 “산불 진화를 위해 가용한 지상·공중진화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다”며 “신속 정확한 상황 판단 아래 유관기관 합동·공조를 통해 안전하고 신속하게 진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은 지난 4일 산불이 발생해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울진·삼척 산불이다. 산림당국은 현재 1만1711㏊가 소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초 산불이 발생한 울진에서는 현재까지 388개소가 불에 탔다. 울진군 환경자원사업소와 주택 261곳, 식당 3곳, 교회 2곳, 마을회관 1곳 등이 피해를 입었다.

지난밤엔 남쪽으로 산불이 번지면서 울진읍내를 위협하는 급박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서 통신망이 두절되자 군청 직원들이 직접 나서 “어서 나오세요. 위험합니다”라고 소리쳐 주민들이 급히 집을 빠져나오기도 했다. 산불로 대피한 주민 1098명(1007세대)은 울진군민체육센터, 노음초등학교 등 12곳의 임시 대피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대피한 주민들 뜬눈으로 밤 새워 

지난 4일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이 '산양마을'로 알려진 강원 삼척시 원덕읍 산양2리 고적마을 뒷산으로 번지는 모습. [뉴스1]

지난 4일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이 '산양마을'로 알려진 강원 삼척시 원덕읍 산양2리 고적마을 뒷산으로 번지는 모습. [뉴스1]

지난 4일 강원도 산불 화재 지역에서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대원이 지상 진화 작업에 나서고 있는 모습. [뉴스1]

지난 4일 강원도 산불 화재 지역에서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대원이 지상 진화 작업에 나서고 있는 모습. [뉴스1]

여기에 울진엔 한울원전, 삼척엔 LNG 생산기지가 있어 산림당국과 소방당국은 원전, 가스저장소, 송전설비 등 주요시설을 중심으로 진화 작업을 벌였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이날 오전 죽변면 울진봉평신라비전시관에 마련된 현장지휘본부에서 “밤 동안 울진읍 주변 산불은 상당히 제압돼 지금은 안전하다”면서도 “하루 안에 모든 불을 진압하기는 어렵지만, 확산이 예상되는 큰불을 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강릉 옥계와 동해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 산불을 낸 60대를 붙잡았다. 강릉경찰서는 현주건조물방화, 일반건조물방화, 산림보호법 위반 혐의로 A씨(60)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6일 밝혔다. A씨는 토치 등으로 자택과 빈집에 불을 질러 인근 산림으로 옮겨붙게 내버려둔 혐의를 받고 있다.

A씨의 방화로 최초 산불이 발생한 강릉 옥계 주민들은 3년 만에 다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옥계면에서는 2019년 4월 4일 산불이 나 산림 1033㏊가 불에 타고 이재민 125명(62가구)이 발생했었다. 또 2017년 3월 산계리와 현내·낙풍리 산불로 160㏊가 탔고, 2004년 3월 산계1리 산불은 430㏊를 태우고 꺼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