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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P연합 1년 넘게 작업"…文∙安 단일화하고도 패배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대 대통령 선거를 엿새 앞뒀던 지난 3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전격 단일화를 선언하면서 역대 대선 후보 단일화 성공·실패사가 재차 소환되고 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대선 때마다 후보 단일화는 주로 민주당 진영에서 변수로 거론됐다. 1987년 13대 대선에선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의 단일화가 최대 쟁점이었다. 처음엔 두 사람이 서로 대통령 후보직을 양보할 것처럼 말했다. 1986년 김대중은 “나는 다음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김영삼도 “사면·복권이 이뤄진다면 김대중씨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하겠다”고 말했다.

1987년 10월 27일 고려대 시국토론회에서 만난 김대중, 김영삼씨는 서로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을 만큼 둘 사이에 찬 바람이 불었다.

1987년 10월 27일 고려대 시국토론회에서 만난 김대중, 김영삼씨는 서로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을 만큼 둘 사이에 찬 바람이 불었다.

대부분의 국민은 단일화가 시간문제일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갈수록 두 사람 사이에 찬 바람이 불었고 결국 1987년 10월 27일 고려대 시국토론회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갈라서고 각자 대선에 출마했다. 결국 12월 17일 대선 결과 노태우 후보가 36.6%를 득표해 당선됐다.

당시 단일화추진위 활동을 했던 장을병 전 민주당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김영삼씨가 대선 후보, 김대중씨가 당권을 맡는다는 합의가 이뤄져 기자회견만 앞두고 있었었는데, 갑자기 김영삼씨가 당권도 자신이 전부 가져가겠다고 해서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후보 단일화의 첫 결실을 이룬 건 1997년 15대 대선이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를 이끌던 김대중 총재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가 1997년 11월 3일 대선후보 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해 ‘DJP 연합’을 성사시켰다. 호남과 충청, 진보와 보수가 손을 잡은 DJP 연합에 힘입어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김종필 총재는 국무총리에 올랐다.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보수 진영의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 및 박태준 전 국무총리와 연합전선을 구축하기로 했다. 조건은 공동정부 구성과 내각제 개헌. 김대중 후보가 대선을 승리하며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보수 진영의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 및 박태준 전 국무총리와 연합전선을 구축하기로 했다. 조건은 공동정부 구성과 내각제 개헌. 김대중 후보가 대선을 승리하며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DJP 연합 성사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한광옥 전 DJ 비서실장은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DJP 연합은 1년 이상 걸린 작업이었다. 단순히 후보를 하나로 합치는 문제가 아니라 성격이 다른 두 세력이 정부를 같이 운영하겠다는 결의를 모으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DJ와 JP는 살아온 길은 달랐지만 나라를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통했기 때문에 연합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협상은 가장 과정이 극적이었던 사례로 꼽힌다. 단일화 방식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펼친 끝에 여론조사 방식이 채택됐는데 당시 지지율이 낮던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대선 전날 밤 정 후보가 지지를 철회하면서 노 후보가 늦은 시간 정 후보를 찾아갔다가 발길을 되돌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노 후보는 48.91%를 득표해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2년 이념적 지향점이 달랐던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 21 정몽준 후보 간의 단일화가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성사됐다. 대선 투표 전날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를 파기했으나 노무현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해 당선됐다.

2002년 이념적 지향점이 달랐던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 21 정몽준 후보 간의 단일화가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성사됐다. 대선 투표 전날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를 파기했으나 노무현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해 당선됐다.

당시 정 후보 캠프에서 단일화 성사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김민석 민주당 의원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20년 전 노무현 후보가 결국 승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펑펑 울었다”며 윤석열-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에 대해 “그리 충격적이지 않고 역풍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후보의 지지 철회가 오히려 중도층이 노 후보에게 결집하는 변화를 이끌어냈다”며 “정치공학적으로 재단할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판단할 몫”이라고 말했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어렵게 단일화를 성사시켰지만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어렵게 단일화를 성사시켰지만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다.

2012년 18대 대선은 후보 단일화를 했지만 패배한 첫 사례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방식을 정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다가 결국 11월 23일 안 후보가 전격 사퇴하는 형식으로 단일화가 됐다. 그러나 두 후보가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하면서 단일화의 폭발력 역시 현저히 저하됐다. 결국 박근혜 후보에게 문재인 후보가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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