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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때면 울던 600살 은행나무 2그루…세종신도시 첫 천연기념물 된다

중앙일보

입력

고려 장수가 심은 은행나무 2그루  

행정수도로 거론되는 세종시 신도시에도 천연기념물이 곧 탄생한다. 세종시 연기면에 있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주인공이다.

세종시 남면 호탄리 왕버드나무. 나란히 서있는 다섯 그루가 모두 보호수로 지정됐다. 김방현 기자

세종시 남면 호탄리 왕버드나무. 나란히 서있는 다섯 그루가 모두 보호수로 지정됐다. 김방현 기자

문화재청은 ‘세종리 은행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4일 밝혔다. 이 은행나무는 세종신도시내에 처음으로 지정되는 천연기념물이다. 세종시 전체에서는 조치원읍 봉산리 향나무에 이어 두 번째다.

은행나무는 연기면 세종리(옛 양화리) 임난수(1342∼1407) 사당(숭모각) 앞을 지키고 있다. 임난수는 고려시대 무신으로,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세종리로 낙향했다. 숭모각은 세종시 향토문화유산이다.

은행나무 두 그루는 사당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이처럼 은행나무 암수 한 쌍을 정문 좌우에 심는 조경 양식을 '행단'(杏壇)이라고 한다. 문화재청은 “행단은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했다.

조치원읍 향나무에 이어 세종 두번째 천연기념물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한 세종시 연기면 세종리 은행나무. 연합뉴스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한 세종시 연기면 세종리 은행나무. 연합뉴스

이 은행나무 나이(樹齡)는 약 600년으로 추정된다. 1934년 발간된 문헌 『연기지』에는 임난수가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고, 세종이 이곳에 사당을 짓도록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충청도 공주목(公州牧)이 1859년 펴낸 『공산지'(公山誌)』에도 임난수 사당과 은행나무 한 쌍에 관한 기록이 있다.

동쪽 수나무는 높이 20m, 지표 부근 둘레 6.9m, 폭 20.5m 안팎이다. 서쪽 암나무는 높이 19m, 지표 부근 둘레 5.4m, 폭 14m 내외다. 수나무는 전반적으로 용틀임하는 듯한 모양을 띠고 있으며 가지가 넓게 퍼져 있다. 암나무는 비교적 곧게 자란 편이다. 전국에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24그루이며, 그중 두 그루가 함께 지정된 '당진 면천 은행나무'를 제외하면 모두 한 그루만 지정됐다.

"전쟁이나 경사스러운 날 은행나무 울어"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한 세종시 연기면 세종리 은행나무. 연합뉴스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한 세종시 연기면 세종리 은행나무. 연합뉴스

세종시가 건설되기 전 은행나무 주변에는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주택 등이 모두 철거되고 아파트 단지 등이 들어섰다. 인근에는 국회 세종의사당 터가 있다. 세종시는 나무 주변을 역사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나라에 전쟁이나 경사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은행나무가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정월 대보름이면 제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민속학적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천연기념물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세종시 조치원읍 봉산동 향나무. 천연기념물 321호로 지정됐다. 사진 세종시

세종시 조치원읍 봉산동 향나무. 천연기념물 321호로 지정됐다. 사진 세종시

이와 함께 세종시 조치원읍 봉산동 향나무(천연기념물 321호)는 나이가 400살 정도 된다. 높이 3.2m, 가슴높이의 둘레 2.84m로 개인 집 옆에 있다. 40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어도 키는 자라지 못하고, 몸통은 이리저리 비틀려서 마치 용(龍)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가 무성하면 온 마을이 평화롭고, 나무에 병이 들어 쇠약해지면 마을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

세종시 호탄리 보호수 5그루가 한자리  

세종시 신도시에는 천연기념물은 아니지만 희귀한 나무가 또 있다. 보람동 세종시청에서 남쪽으로 약 1㎞ 떨어진 원주민 마을(금남면 호탄리)에 있는 80~220년생 왕버드나무 5그루다. 가장 큰 나무는 높이가 16m이상 된다. 이곳은 '호탄리(壺灘里) 버드나무숲'으로 부르기도 한다.

세종시 남면 호탄리 왕버드나무. 나란히 서있는 다섯 그루가 모두 보호수로 지정됐다. 김방현 기자

세종시 남면 호탄리 왕버드나무. 나란히 서있는 다섯 그루가 모두 보호수로 지정됐다. 김방현 기자

1997년 발간된 『금남면 향토지』에 따르면 이들 나무는 주민들이 풍수지리상 길지(吉地·좋은 땅)가 아닌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예부터 이 마을에는 "호리병 입구처럼 좁은 마을 입구를 막아야 주민들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고 한다. 호탄리에서 호(壺)는 '호리병', 탄(灘)은 '여울(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이란 뜻이다.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왕버들 숲을 조성해 병마개로 삼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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