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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렁이인가…'자산어보'에 2m넘는 괴물로 묘사된 생선 [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물고기인가, 구렁이인가
자산어보에 2m 넘는 괴물로 묘사된 생선
양념장 뿌리고 김에 싸 먹으면 그만인 이것, 통영 대삼치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통영 대삼치편.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통영 대삼치편. 인터넷캡처

언젠가부터 일식당이나 일본식 주점에서 꽁치만큼이나 흔하게 구이로 먹을 수 있게 된 삼치. 촉촉하게 기름지면서도 비리지 않고 고소한 구이 맛 때문에 인기가 높다. 소금만 뿌려 먹어도 좋고, 파 마늘 고춧가루가 들어간 양념간장을 곁들이면 더 좋은 맛.

그런데 이런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은 삼치의 진면목을 잘 모른다. 정작 토막을 치기 전의 삼치를 보면 깜짝 놀라고, 삼치를 구이 아닌 회로 먹는다는 말에도 눈이 동그래지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준비했다. 오늘의 주제, ‘삼치의 진면목’을 알아보기 위해 ‘백종원의 사계’ 팀은 어느새 바람이 따스해진 남해 통영으로 향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망어(蟒魚)라는 고기가 나온다. ‘망(蟒)’은 ‘이무기 망’ 자로, 이무기 혹은 큰 뱀을 가리킨다. 이 망어가 바로 삼치다. 아마도 고등어과답게 등 부분이 검푸르다 못해 얼룩덜룩한 검은 반점으로 덮여 있어 뱀 껍질처럼 보인다는 면에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가 날카롭고 덩치가 크다는 부분도 한몫했을 것 같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다만 삼치와 관련된 몇몇 부분에서 『자산어보』의 기록은 좀 쓴웃음을 자아낸다. 『자산어보』에는 ‘망어 큰놈은 8~9자, 둘레가 3~4위(大者八九尺 體圓三四圍)’라고 되어 있는데, 이런 부분 때문에 옛글을 읽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위(圍)라는 단위는 보통 ‘아름’으로 해석하는데, 쓰여 있는대로 길이가 2m가 넘는다고 해도 저 위를 아름으로 해석하면 몸 둘레가 5m가 넘는다는 셈이다. 크기도 크기지만 신체 비례상 이런 물고기는 존재할 수가 없다. 복어도 이런 비례는 아니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의 보디가드인 장사 전위의 체형을 묘사하는 글에 ‘신장은 팔척, 허리가 10위(身長八尺, 腰大十圍)’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1위는 대략 한뼘 정도로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허리둘레가 열 아름이라면 이미 인간의 체형이 아니다). 그렇게 봐도 삼치도, 전위도, 엄청나게 뚱뚱한 체형이다.

요즘은 2m짜리 삼치는 거의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백종원의 사계’ 팀이 수산시장에서 구한 삼치도 몸길이 1m, 무게 15㎏ 가까이 되는 거구였다. 어른이 혼자 드는 게 버거울 정도. 하지만 이렇게 크고 뚱뚱한데도 삼치는 엄청나게 빠르고, 엄청나게 잘 먹는다. 시속 40㎞가 넘는 속도로 물속을 헤집고 다니며 어류는 물론 조개류나 오징어 문어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공포의 포식자다. 입을 벌려 보면 작은 상어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 다양하게 먹어서 더 맛있는지도 모르겠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통영 대삼치편.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통영 대삼치편. 인터넷캡처

이런 대형 삼치 해체를 위해 대한민국 최고의 수산물 전문 칼럼니스트 김지민씨(유튜브 ‘입질의 추억’ 운영자)가 회칼을 잡았다. 강릉에서 대방어를 회 뜰 때에 비해 한결 원숙해진 칼 솜씨가 눈길을 끈다. 역시 큰 고기도 경험이 쌓이니 두렵지 않은 모습.

삼치는 고등어와 마찬가지로 오래 살려둘 수 없는 고기라, 오래전부터 활어 아닌 선어회로 먹는 방식이 주류를 이뤘다. 요즘은 고등어나 민어도 수조에 담아 산 채로 먼 내륙지방까지 운반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겼지만, 과거에는 이런 생선들의 회 맛을 보기 위해서는 바닷가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활어든 선어든 횟감으로서 삼치의 약점은 육질에 있다. 도미나 광어처럼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식감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워낙 살이 연하기 때문에 입 안에 넣고 씹으면 녹아내릴 듯한 부드러움이 특징이다. 그래서 삼치회를 뜰 때에는 살이 뭉개지지 않게 하기 위한 과감하고도 빠른 칼놀림이 필수. 제대로 하는 횟집에서는 미리 삼치회를 떠 놓고 상온에 방치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금기다. 숙련된 셰프들은 옆에 얼음물 사발을 가져다 놓기도 한다. 바로 두툼하게 잘라낸 회를 얼음물에 담가 살짝 단단한 식감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손님상에 내놓기 위한 것이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통영 대삼치편.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통영 대삼치편. 인터넷캡처

그렇게 나온 삼치회는 소금에만 찍어 먹어도 고소한 맛을 자랑하지만, 산지 사람들에게 삼치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물으면 “김이랑 씻은 묵은지에 싸서 양념장 한 숟갈 뿌리면… 키야”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묵은지를 씻어 놓고, 소금을 뿌리지 않은 국산 김(특히 돌김이면 최고)을 구워 놓는다. 양념간장에는 채썬 양파와 파 청양고추 고춧가루 설탕 마늘이 들어가고 취향에 따라 식초를 살짝 추가한다. 구운 김 위에 묵은지를 얹고, 두툼한 삼치 뱃살을 한 점 놓은 뒤 양념장을 뿌리고 입안으로 직행. 절로 소주 한잔을 부르는 맛이 아닐 수 없다. 회 맛을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와사비도 아주 극소량만 묻혀야 한다는 정통파 미식가들이 들으면 큰일 날 얘기지만, 사실 저렇게 먹으면 맛이 좋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이런 게 남해의 맛인데 뭘.

티빙 '백종원의 사계' 통영 대삼치편.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통영 대삼치편. 인터넷캡처

삼치를 겨울에 먹는 것은 역시 기름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겨울의 차가운 수온을 이기기 위해서, 그리고 이름 봄철의 산란기를 앞두고 겨울 삼치의 몸에는 기름이 찬다. 이 겨울 삼치의 껍질 쪽에 불기운을 주면, 껍질 아래의 기름이 살짝 녹으면서 고소한 맛을 배가시킨다. 최근에는 버너용 토치 덕분에 이 조리가 간단해졌다. 흔히 ‘히비키(ひびき)’ 라 불리는 조리법인데, 불을 사용하기 때문에 마쓰가와(まつかわ, ‘소나무 껍질’이라는 뜻으로, 주로 도미류의 생선회를 껍질째 썬 뒤 끓는 물을 부어 껍질 쪽을 살짝 익히는 것)와는 다르다. 그런데 이런 조리법이 한국에선 히비키라는 이름으로 통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하긴 의미를 생각하면 아부리(炙り)나 타다키(叩き)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듯하지만, 뭐라 부르건 맛있으니 더는 따지지 않는다.

물론 기왕 불기운이 닿은 삼치 맛을 봤다면 껍질만 살짝 익히는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다. 삼치구이가 맛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몸길이 1m에 달하는 큰 삼치의 뱃살을 통으로 도려내 숯불에 올리면 평소 도시에서 먹던 애기 삼치와는 차원이 다른 음식이 된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큰 삼치 토막을 따뜻한 흰 밥 위에 올려놓고 한 입 베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다른 문헌을 보면 삼치는 망어(亡魚)라고도 불렸는데, 이 이름 때문에 양반 집에서는 기피하는 생선이었다고도 전한다. 심지어 20세기 초의 기록에도 삼치를 먹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이유로 우어(憂魚)라는 별칭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보존 기간이 짧았던 시절, 산지에서 떨어진 곳에서 선도가 좋지 않은 삼치를 먹고 탈이 난 사람들 때문에 생긴 이야기겠지만, 이런 선입견 때문에 삼치는 한동안 인기 없는 생선이었다고 한다. 그런 삼치를 마음껏 먹게 된 것은 누가 뭐래도 현대 문명 덕분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고흥 굴로 시작해 통영 삼치까지 대한민국 남해의 겨울 별미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떠나야 할 시간. 따뜻한 바람이 분다. 가자, 봄 별미를 맛보러!

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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