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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누비며 492명 구했다…소방청 구조견들의 '부상 투혼'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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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월 13일 오전 11시10분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인명구조견 2마리가 지하 1층 천장 쪽을 바라보며 짖었다. 핸들러(운용자)들이 재차 확인하자 폭탄을 맞은 것처럼 구멍이 뚫린 곳에서 사람의 손가락 끝마디가 보였다. 구조견인 9살 레트리버 수컷 '소백'과 3살 셰퍼드 수컷 '한결'이 사고 이틀 만에 실종자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e즐펀한 토크] 김준희의 '사건 포클레인'

지난 1월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핸들러(운용자) 김성환(33) 소방장이 구조견 '소백'과 함께 실종자를 찾고 있다. 사진 소방청

지난 1월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핸들러(운용자) 김성환(33) 소방장이 구조견 '소백'과 함께 실종자를 찾고 있다. 사진 소방청

#2. 2008년 5월 12일 중국 쓰촨성. 규모 8.0의 지진이 발생해 6만9000여 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 당시 2003년생 독일산 셰퍼드 수컷 '백두'는 유리 파편에 양쪽 뒷다리를 다쳐 열다섯 바늘이나 꿰매고도 시신 6구를 찾아냈다. '백두'는 2012년 4월 은퇴할 때까지 5년간 국내에서만 15명의 목숨을 구했다. 인도네시아·아이티·일본 등 해외 재난 현장에서도 활약했다.

광주에서 활약한 충청·강원119특수구조대 소속 9살 레트리버 수컷 '소백'. 사진 소방청

광주에서 활약한 충청·강원119특수구조대 소속 9살 레트리버 수컷 '소백'. 사진 소방청

광주 사고 희생자 6명 수습…구조견 활약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안전사고가 속출하면서 수색 현장을 누비는 구조견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현대산업개발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실종자 6명이 사고 발생 28일 만에 모두 수습된 데에는 구조견들의 활약이 컸다. 지난 1월 11일 오후 3시47분쯤 발생한 사고로 39층 건물 꼭대기부터 10여 개 층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직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소방청은 사고 이튿날부터 마지막 매몰자를 발견한 지난달 8일까지 구조견 21마리와 핸들러(운용자) 등 25명을 수색 현장에 투입했다. 25년간 재난 현장을 누빈 이민균(46) 119구조견교육대 훈련관이 현장을 지휘·통제했다.

지난 1월 11일 39층 꼭대기부터 10여 개 층이 차례로 무너진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핸들러와 구조견들이 실종자를 찾고 있다. 사진 소방청

지난 1월 11일 39층 꼭대기부터 10여 개 층이 차례로 무너진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핸들러와 구조견들이 실종자를 찾고 있다. 사진 소방청

"구조견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소방청에 따르면 구조견이 직접 발견한 실종자는 2명이며, 나머지 4명도 개들이 반응했던 지점 근처에서 발견됐다. "구조견들이 실종자가 있을 만한 곳을 좁혀놨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훈련관은 "구조견은 사람 냄새를 맡으면 1m에서 50㎝ 근방에서 짖게 돼 있다"며 "구조견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소백'은 지난 1월 25일 건물 27층에서 두 번째 실종자도 찾았다. '소백'이 석고 벽 쪽을 향해 짖자 이 훈련관과 핸들러 김성환(33) 소방장이 피켈(등산용 도끼)로 벽을 부수고 내부에 진입해 실종자를 발견했다.

지난 1월 13일 광주 서구 아파트 신축 공사 붕괴사고 현장에서 수색 중 발을 다친 5살 말리노이즈 수컷 '장고'가 응급 처치를 받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월 13일 광주 서구 아파트 신축 공사 붕괴사고 현장에서 수색 중 발을 다친 5살 말리노이즈 수컷 '장고'가 응급 처치를 받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소백' 실종자 최초 발견…구조견 '부상 투혼'

광주 사고 당시 건물 내부는 잔해가 켜켜이 쌓인 데다 추가 붕괴 위험 때문에 구조대가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구조견 대부분이 수색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 정강이 등이 장애물에 부딪혀 까이거나 긁혔고, 발바닥이 날카로운 유리 조각 등에 베이는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2살 때부터 구조견으로 활동해온 '소백'은 충청·강원119특수구조대 소속이다. 220여 차례 현장에 출동해 생존자 1명과 사망자 10명을 발견한 '베테랑 구조견'이다. 당초 "3월에 은퇴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연말까지는 재난 현장을 지킬 예정이다. 119구조견교육대 측이 "건강에 문제 없다"고 판단해서다.

지난 1월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 이민균(오른쪽) 119구조견교육대 훈련관이 전국에서 모인 핸들러와 구조견 앞에서 수색 조 편성 및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소방청

지난 1월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 이민균(오른쪽) 119구조견교육대 훈련관이 전국에서 모인 핸들러와 구조견 앞에서 수색 조 편성 및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소방청

사람 1만 배 후각 능력…청력은 50배

구조견은 특수 임무를 위해 고도로 훈련된 개를 말한다. 119구조견교육대에 따르면 구조견은 기본 좌우 50m, 최대 1㎞ 떨어진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

사람과 비교해 최소 1만 배 이상의 후각 능력과 약 50배 이상의 청각 능력을 갖고 있다. "구조견 1마리는 재난 현장에서 구조대원 30명 몫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민균 119구조견교육대 훈련관이 2018년 9월 충북 충주에서 열린 세계소방관경기대회에서 한국 인명구조견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벨기에산 말리노이즈 수컷 '천지'를 데리고 장애물 건너는 시범을 하고 있다. 사진 소방청

이민균 119구조견교육대 훈련관이 2018년 9월 충북 충주에서 열린 세계소방관경기대회에서 한국 인명구조견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벨기에산 말리노이즈 수컷 '천지'를 데리고 장애물 건너는 시범을 하고 있다. 사진 소방청

소방청 34마리…산악·재난·수난·탐지견 분류

구조견은 발달된 후각 및 청각 능력을 바탕으로 재난 현장에서 실종자 위치를 탐색해 사람 목숨을 구조하는 역할을 한다. 임무 유형에 따라 ▶산악구조견 ▶재난구조견 ▶수난구조견 ▶사체탐지견 등 네 종류로 나뉜다.

현재 소방청 소속 구조견은 모두 34마리다. 중앙119구조본부 4개 특수구조대에 각각 3마리씩 12마리, 서울·부산·경기·강원·전남·경북·경남·제주 등 전국 8개 시·도에 22마리가 있다.

모든 개가 구조견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만 6~12개월 강아지 중 사회성·활동성·적응력·수색 능력 등 기본 자질을 갖춘 소수 정예만 선발한다.

'예비 구조견'은 18~24개월 동안 훈련을 받는다. 낯선 사람·환경에 적응하는 기초 훈련부터 다양한 지형·장애물 적응 훈련, 산악·붕괴 수색, 헬기 출동, 조난자 수색 등 현장 임무와 연관된 훈련 비중을 높여가는 식이다.

119구조견교육대 훈련관들이 산악 사고에 대비해 구조견과 함께 헬리콥터에서 레펠을 타고 내려오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소방청

119구조견교육대 훈련관들이 산악 사고에 대비해 구조견과 함께 헬리콥터에서 레펠을 타고 내려오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소방청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후 1998년 도입 

모든 훈련이 끝난 개는 인명구조견 공인인증평가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산악·재난 수색 능력과 종합 전술(복종·장애물) 등 평가에서 70% 이상 점수를 받으면 합격이다. 공식적인 인명구조견이 되면 현지 적응 훈련을 거쳐 각 시·도에 보급된다.

소방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구조견은 ①독일산 셰퍼드 ②래브라도 레트리버 ③벨기에산 말리노이즈 ④보더콜리 ⑤잉글리시 스프링거 스파니엘 등 다섯 품종이다. 국내 지형과 날씨 등 환경적 요인에 잘 맞는 체형인 데다 좋은 성품의 개체가 많이 번식되고 있어서다.

선진국에서는 구조견을 오래전부터 투입해 왔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게 소방청 설명이다. 소방청 구조견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1998년 한 민간 기업이 사회 공헌 차원에서 구조견 2마리를 강원 원주소방서에 기증한 게 시초다.

119구조견교육대 훈련관 2명이 산악 사고에 대비해 각각 구조견과 함께 암벽에서 레펠을 타고 내려오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소방청

119구조견교육대 훈련관 2명이 산악 사고에 대비해 각각 구조견과 함께 암벽에서 레펠을 타고 내려오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소방청

20여년간 7119차례 출동…492명 구조

이후 2011년 4월 정부 주도로 대구 달성군에 중앙119구조본부 119구조견교육대가 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구조견 양성·교육 체계가 구축됐다. 소방청 구조견은 군견(1950년 6·25 전쟁)과 경찰견(1986년 아시안게임), 관세청 탐지견(1987년 국제공항·항만 폭발물 테러 대비) 등 국내 다른 정부 기관에서 운용하는 특수목적견에 비해 역사가 짧다.

그러나 1998년 1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모두 7119차례 출동해 492명(생존자 212명·사망자 280명)을 구조하는 성과를 거뒀다. 소방청은 2024년까지 구조견을 48마리로 늘릴 계획이다.

구조견은 현장 투입 후 보통 8년이 지나면 은퇴한다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60세에 정년퇴직을 하는 셈이다. 은퇴 후에는 일반 가정에 보내 반려견으로 안락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소방청은 "평생 국민을 위해 헌신한 공로에 대한 보답이자 소방 동료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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