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댁' 그 보일러, 러 국민 보일러였다…러 달군 韓기업들

중앙일보

입력 2022.03.05 05:00

2016년 12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있는 크렘린 궁에선 보일러 부문 최초로 '국민 브랜드'가 발표됐다. 이 분야 유일한 수상자는 국내 중견기업인 경동나비엔이었다. 경동나비엔은 2012년부터 러시아 벽걸이 보일러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경동나비엔 러시아 현지 법인 직원들이 2019년 3년 연속 러시아 '국민브랜드'에 선정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동 나비엔]

경동나비엔 러시아 현지 법인 직원들이 2019년 3년 연속 러시아 '국민브랜드'에 선정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동 나비엔]

경동나비엔 측은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시베리아부터 여름에 영상 30도를 웃도는 남부 도시까지 러시아만의 기후적 특성을 연구했다"며 "낮은 가스 압력과 잦은 전압 변동, 혹한의 날씨에서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가스보일러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현지화에 성공하면서 러시아 소비자들 사이에선 "혹한에 다른 보일러는 중단돼도 나비엔은 끄떡없더라"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경동나비엔은 2018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러시아 정부기관과 재계 관계자 등이 선정하는 '올해의 기업상'을 수상했다.

삼성폰 30%, LG 3년째 '고객만족대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 현지 진출 기업의 경영 환경이 악화한 가운데, 역설적으로 러시아 내에서 한국 기업의 위상을 엿볼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LG전자의 가전뿐 아니라 여러 대기업과 중견 기업이 러시아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며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러시아에 출시된 LG전자의 프리미엄 가전인 오브제 컬렉션. [사진 LG전자]

지난해 11월 러시아에 출시된 LG전자의 프리미엄 가전인 오브제 컬렉션. [사진 LG전자]

삼성과 LG는 러시아에서도 큰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점유율 30%로 1위를 차지했다. 다음은 샤오미(23%), 애플(13%) 순이다. LG전자는 세탁기·냉장고 등 주요 가전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10월 러시아 소비자원이 주관하는 '고객만족대상'에서 3년 연속으로 '가전 서비스 부문' 대상을 받았다.

효성 ATM 1위, 팔도 용기면 1위  

2009년 러시아 현금 자동인출기(ATM) 시장에 진출한 효성TNS는 ATM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러시아 시장 점유율은 70%, 매출로는 1500억원가량이다. 지난해 효성TNS 전체 매출(9400억원)의 16%에 달한다. 이 회사가 러시아 시장에서 '퀀텀 점프(대약진)'를 하게 된 계기는 2017년 러시아 신권 발행이다. 소비자들이 기존보다 다양한 지폐를 사용하게 되자 효성TNS의 권종 분류 기술과 보안 기술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9년부터 러시아 1위 은행인 스베르뱅크 ATM 전량을 수주하는 쾌거를 이뤘다.

팔도의 팔도도시락은 세계 최다인 10여종의 맛과 포크를 포함한 패키징으로 현지화에 성공해 러시아 1위 용기면 제품으로 부상했다. [사진 팔도]

팔도의 팔도도시락은 세계 최다인 10여종의 맛과 포크를 포함한 패키징으로 현지화에 성공해 러시아 1위 용기면 제품으로 부상했다. [사진 팔도]

종합식품기업 팔도의 용기면인 팔도도시락 역시 러시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는 제품이다. 팔도도시락은 러시아 현지에서 전량을 생산해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러시아에서 판매되는 팔도도시락은 세계 최다인 10여 종에 달한다. 치킨·버섯·새우를 활용한 제품 등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 중 얼큰한 국물이 특징인 소고기 맛이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다른 나라에 출시되는 제품과는 달리 러시아 제품에는 포크가 포함돼 있다. 러시아 소비자가 젓가락 사용에 서툰 데다 구매 즉시 바로 먹을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한다는 점을 반영한 전략이다.

러시아에서 선전 중인 이들 기업은 현재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조용석 한국무역협회 현장정책실장은 "이들은 현지에서는 러시아 국민 생활에 밀접한 기업이지만 글로벌 브랜드로서 환경·사회적 가치·지배구조(ESG)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며 "한국 수출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더라도 개별 산업군에선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정부가 산업군과 연계된 생태계를 고려해 면밀한 지원 대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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