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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정부라서 인기 없는 정책 가능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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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호 21면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
이장규 지음
기파랑

책 제목은 5공 대통령 전두환이 한 말이다. 1985년 총선을 앞두고 84년 세출예산을 동결하자 여당인 민정당이 정치적 자살행위라며 반발했다. 전두환이 민정당 간부들을 청와대로 불러서 호통을 쳤다. “예산 동결 때문에 선거에 진다면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

이 책은 계획하고 쓴 게 아니라 “하도 기가 차서” 썼다고 한다. “용병술은 잘했다(윤석열)” “경제는 제대로 굴러가게 했다(이재명)”와 같은 전두환 관련 발언으로 여야 대선 후보 모두 홍역을 치렀다. 저자가 보기엔 둘 다 사실을 말하고도 여론이 무서워 사과하고 해명했다.

1985년 1월초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당시 경제기획원의 신년 업무보고 모습. [중앙포토]

1985년 1월초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당시 경제기획원의 신년 업무보고 모습. [중앙포토]

전두환의 공은 긴축 정책으로 악성 인플레이션과 국제수지 적자라는 한국 경제의 고질병에서 탈출했다는 것이다. 5공 후반기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구가하며 성장, 물가, 국제수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그건 3저 현상 덕분이라는 분석에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유가, 국제금리가 떨어지고 달러가 약세를 보이는 3저 현상이 유독 한국에만 온 건 아닌데, 왜 우리 경제만 두드러지게 좋아졌을까. 저자는 사전준비가 잘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권 초기 물가를 성공적으로 잡았기에 수출경쟁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고, 84년 이후 긴축에서 성장 기조로 전환하면서 기업 투자를 늘리는 정책을 썼던 것도 타이밍이 잘 맞았다. 전두환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할 정도로 신임했던 김재익 경제수석, 그의 후임으로 5공 후반기 경제정책의 중심이었던 사공일 경제수석 등을 중용한 용인술도 빛났다.

그렇다고 전두환의 공만 기록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성공에 취해 변화에 소홀했다. 탄압 일변도의 노동정책은 노동운동의 과격화, 정치화로 이어졌다. 지금 정부 위에 군림하는 민주노총의 연원도 결국 노조를 민주화 세력으로 만든 5공의 잘못 탓이라고 저자는 분석했다. 친인척 관리에는 완전히 실패했고 정치자금을 받아 챙겼다. ‘긴축은 선’이라는 고정관념 탓에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제때 못했다.

이 책은 저자가 언론인 시절인 91년 출간한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의 개정판 성격이다. 5공 경제정책의 비사를 다룬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는 이후 출간된 관료나 학자의 한국경제 관련 책에서 단골로 인용되는 인기 기록물이다. 전두환의 최측근인 허화평, 이학봉 등의 증언을 추가해 2008년 개정증보판을 냈고, 올해 개정판에는 필자 개인의 생각을 더 추가했다.

2008년판은 502쪽인데 비해 이번 책은 306쪽이고 글자도 크다. 기존 책에서 요약, 발췌한 부분이 많다는 얘기다. 새로운 내용도 꽤 있다. 청와대 만찬에 초대받은 기업인 이모 회장이 전두환에게 묻는다. “각하는 어떻게 비인기 정책인 물가안정을 밀어붙일 수 있습니까?” “나는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지 않습니까.” ‘인기 없는 정부’였기에 ‘인기 없는 정책’을 고집할 수 있었다. 하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국민연금 개혁안을 퇴짜놓은 문재인 대통령은 막판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익명 표현도 일부 달라졌다. 국보위 시절 전두환을 찾아가 금일봉 5000만원을 건네고 특혜를 받았다는 ‘어느 기업인’은 ‘오늘날 한국 금융계를 대표하는 S은행의 창립자 이모 회장’으로 구체화됐다. 88올림픽과 한강종합개발사업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새로 추가된 내용이다. 저자는 자신의 올림픽 비판 기사가 31년 동안 저널리스트로 썼던 기사 중 가장 부끄러운 오보라고 반성했다.

제목의 ‘그런 선거’는 85년의 2·12 총선이다. YS와 DJ가 합작한 신민당이 제1야당이 되는 돌풍이 불었다. 민정당이 중선거구 덕분에 과반은 했지만 사실상 진 선거였다. 져도 좋다고 호기를 부렸던 전두환은 총선 직후 안기부장을 교체했다.

저자의 평가처럼 6·29 선언으로 전두환 경제의 유효기간은 끝난다. 87년 대선을 앞두고 ‘져도 좋다’는 더 이상 없었다. 죽었던 새만금 사업이 대선 후보의 요구로 살아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승자독식의 대선판에서 경제는 뒷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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