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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아날로그 일본’ 변화, 카드 결제 늘고 도장 퇴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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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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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투표권이 없는 내 앞에서 종종 사람들은 자신이 누굴 왜 지지하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준다. 화제가 일본 선거로 흘러갈 때도 있다. 한번은 누군가 “일본은 투표할 때 후보자 이름을 한자로 써야 한다면서?”라며 “한국에선 투표할 때 후보자 이름 옆에 도장을 찍으면 된다”고 알려줬다. “일본은 한자를 못 쓰는 사람을 선거에서 배제하는 것 아니냐”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후보자 이름을 한자로 쓰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투표소마다 잘 보이는 곳에 후보자 이름이 정자로 적혀 있어서 그걸 보면서 투표용지에 쓰면 되니, 개개인의 한자를 정확히 외울 필요까진 없다. 히라가나로 써도 투표는 기본적으로 유효하다.

한국에서 한자는 어렵고 한글은 누구나 쓰기 편한 글자라는 대립적인 이미지가 있다. 일본의 히라가나와 카타카나는 한자에서 파생된 글자기 때문에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일본에선 한자도, 히라가나도, 카타카나도 당연히 일본어라고 생각한다. 한자가 원래 중국에서 비롯됐다고 해서 한국처럼 한자를 배제한 교육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확실히 후보자 이름을 쓰는 것보다 한국처럼 도장을 찍는 게 효율적인 것은 맞다. 알아보니까 일본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후보자 이름 위에 동그라미를 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일본의 투표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도장 방식이면 개표 작업도 기계로 빨리 처리할 수 있다. 일본도 어느 정도 기계화됐지만, 다양한 표기가 허용된 만큼 기계로 유효·무효를 분별하는 건 한계가 있다.

한국 주민번호 같은 ‘마이넘버’ 보급

일본 선거는 투표용지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개별 투표소마다 후보자들 이름이 적힌 용지를 따로 붙여서 오자가 없도록 관리한다. [중앙포토]

일본 선거는 투표용지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개별 투표소마다 후보자들 이름이 적힌 용지를 따로 붙여서 오자가 없도록 관리한다. [중앙포토]

일본은 한국에 비해 변화가 느린 편이다. 덕분에 일본에 가면 ‘아날로그 일본’을 느낄 기회가 많을 것이다.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일본은 카드로 결제가 안 되는 가게가 많아 불편했다”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달려졌다. 현금을 주고받으면 감염 위험성이 크다고 생각해서 카드를 쓰는 사람이 늘어났고, 덕분에 대부분 가게에서 카드 결제가 가능해졌다. 이제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크게 불편한 일은 없다.

대면을 피하기 위해 행정 절차도 점차 디지털화돼 가고 있다. 오사카에 혼자 사는 어머니는 코로나19 전까지 컴퓨터를 써본 적이 없다. 휴대전화도 통화와 간단한 메시지를 보내는 정도로만 써왔다. 때문에 어머니가 관공서에 뭔가 신청하고 제출할 때마다 한국에 있는 내가 도와주는 게 어렵고 답답했다.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컴퓨터를 쓰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지만, 내가 일시귀국해서 어머니께 노트북을 사서 쓰는 법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70대의 나이에 하기 싫은 일에 도전해야 하는 어머니를 보며 안쓰러웠다. 디지털화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편리하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아날로그가 꼭 뒤처지고 나쁜 것은 아니다.

일본 선거는 투표용지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개별 투표소마다 후보자들 이름이 적힌 용지를 따로 붙여서 오자가 없도록 관리한다. [신화=연합뉴스]

일본 선거는 투표용지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개별 투표소마다 후보자들 이름이 적힌 용지를 따로 붙여서 오자가 없도록 관리한다. [신화=연합뉴스]

작년 9월엔 행정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목적으로 일본 내 디지털청이 신설됐다. 약 1년으로 임기가 끝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힘을 써서 설치된 것이다. 디지털청이 추진하는 시책 중 하나가 ‘마이넘버’ 제도 보급이다. 마이넘버는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것으로 2016년부터 시작됐다. 그 전까지 그런 제도가 없었다는 것에 놀라는 한국 사람이 많다. 내게도 개인 번호가 적힌 ‘통지 카드’가 우편으로 왔지만 정식으로 ‘마이넘버 카드’를 취득하려면 따로 절차를 밞아야 했다. 아사히신문에 재직 중이던 나는 뭘 위해 신청해야 하는지 모르고 귀찮아서 신청을 안 한 채 작년까지 지내왔다. 신청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꽤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마이넘버 카드가 없으면 제출 서류가 늘어나는 불편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작년에 일시귀국 했을 때 마이넘버 카드를 신청했다. 신청하고 받을 때까지 한 달 이상 걸렸다. 국민의 편의를 위한 제도라기보다 정부가 국민을 관리하기 쉽게 유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선 후보자 이름 옆에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투표를 치른다. [뉴스1]

한국에선 후보자 이름 옆에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투표를 치른다. [뉴스1]

이번 칼럼에서 ‘일본의 아날로그’에 대해 쓰려고 생각한 계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칼럼 독자한테 온 메일 때문이다. 직업 상 오랫동안 일본을 지켜봐 온 한국 남성이다. 그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직전 일본에서 한 달 동안 지냈다며 “어느 면에서는 1980~90년대 일본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어 정감이 가기도 했지만, 아직도 일본 사회 시스템이 아날로그적이라 한국 사회의 디지털 마인드로 보면 이러고도 선진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에선 후보자 이름 옆에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투표를 치른다. [중앙포토]

한국에선 후보자 이름 옆에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투표를 치른다. [중앙포토]

1982년생인 내 기억으로도 일본은 별로 안 변했다. 물가도 거의 안 올랐다. 그동안 늦었던 디지털화는 앞에 쓴 바와 같이 코로나19 이후 그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아날로그 문화는 ‘도장 문화’다. 본인확인의 수단으로 도장을 찍는 문화인데 나도 원고료 청구서에 일일이 도장을 찍고 해외 우편으로 보내는 등 피곤한 일이 많았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문화가 바뀌기를 바랐는데, 코로나19 이후 도장 문화도 점점 없어지고 있어 반갑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오사카에서 고치(高知)로 이사를 가서 시골에서 자란 영향이 크다. 아버지가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해서 자연이 풍요로운 고차로 이사 간 만큼 바다와 강, 산에서 많이 놀았고 농사짓는 일도 함께했다. 사계절의 변화를 즐기며, 특히 태풍이 많은 고치에서 농작물 피해도 자주 경험하면서 인간의 마음대로 안 되는 자연의 힘을 실감하며 자랐다. 당연히 디지털과 거리가 먼 환경이었다. 그래서 메일을 보낸 독자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며 “인터넷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 인간적이었다”고 하는 말에 공감했다.

또 하나의 계기는 얼마 전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 때문이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김환기 소장과의 생전 대담에서 이 선생님은 “역설적이지만 이번 코로나를 통해 디지털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10년 앞당겨 학습하게 됐고, 살결 냄새 나는 오프라인의 아날로그 세상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겁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 되새겨

축소 지향의 일본인

축소 지향의 일본인

올해 초 지명관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김환기 소장과 “일본을 깊이 아는 지식인을 잃어서 안타깝다” 이야기 나눈 지 며칠 안 됐는데 이어령 선생님의 부고를 접했다. 지명관 선생님은 일본 잡지 ‘세카이(世界)’에 연재한 칼럼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으로, 이어령 선생님은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으로 일본에서도 알려진 문화인이다. 존경하는 두 선생님이 잇따라 돌아가셔서 마음에 구멍이 뚫린 듯하다. 많은 저서를 남긴 두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그래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디지털화도 좋지만 아날로그도 중요하다는 것, 디지털화로 인해 불편해지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신문기자 시절부터 글을 쓸 때 ‘보다 야사시이(優しい) 사회’가 되기 위해 쓰고 있음을 의식해왔다. 일본어 ‘야사시이’에는 한국어로 ‘착한’ ‘다정한’ ‘따뜻한’과 같은 의미가 포함돼 있다. 새로운 대통령이 누가 되든 보다 야사시이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전 아사히신문 기자.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2020년 한국에서 에세이집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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