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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한달 42명 사망…장관 "가능성 봤다" 그날도 숨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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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한 달여가 지났지만, 현장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도 산업재해 예방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노동계는 건설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많다는 점에서 건설안전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법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망자·사고건수 줄었지만…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사망자 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사망자 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 1월 27일부터 2월 26일까지 한 달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42명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52명)에 비하면 10명 줄어든 것이며, 같은 기간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 건수도 52건에서 35건으로 감소했다.

이에 대해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일 “법 시행 기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고, 산재 사망사고도 발생하고는 있지만, 사망자 수는 감소하고 있다”며 “중대재해 예방의 가능성을 봤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안 장관이 이런 평가를 한 당일에도 산재 사고가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졌다. 충남소방본부와 당진경찰서 등에 따르면 2일 오전 5시 40분쯤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1냉연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A씨(57)가 대형 용기(도금 포트)에 빠져 사망했다.

전국금속노조는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난간대가 설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A씨가) 혼자 근무하다 사고가 발생했다”며 “수차례 인력 충원을 통한 2인 1조 근무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책임자를 엄벌하라”고 요구했다.

16명 또 급성중독…통계엔 빠져

2일 50대 근로자 1명이 대형 용기(도금포트)에 빠져 사망한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1냉연공장 현장. 신진호 기자.

2일 50대 근로자 1명이 대형 용기(도금포트)에 빠져 사망한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1냉연공장 현장. 신진호 기자.

3일에는 경남 김해의 자동차 부품 제조사 대흥알엔티에서 근로자 13명이 트리클로로메탄에 중독돼 급성 간 중독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경남 창원의 에어컨 부속자재 제조업체 두성산업 사례에 이어 두 번째 급성 중독 사례다.

앞서 두성산업에서는 근로자 16명이 트리클로로메탄에 기준치 6배 이상 노출, 급성중독으로 직업성 질병진단을 받았다. 다만 해당 사례들은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고용노동부 통계엔 포함되지 않았다.

이 외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주요 사망사고는 ▶경기 양주 채석장 붕괴사고(3명 사망) ▶판교 신축공사 승강기 추락사고(2명 사망) ▶여천NCC 공장폭발사고(4명 사망) ▶한솔페이퍼텍 차량전복사고(1명 사망) ▶세종~포천 고속도로 현장 추락사고(1명 사망) ▶경남 고성 조선소 삼강에스앤씨 협력업체 직원 추락사고(1명 사망) ▶쌍용씨앤이 동해공장 추락사고(1명 사망) ▶제주대 기숙사 철거현장 사고(1명 사망) 등이다.

서울시, 1.2兆 투입…바빠진 지자체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림-봉천터널 2공구 공사 현장을 방문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안전 관리 등을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림-봉천터널 2공구 공사 현장을 방문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안전 관리 등을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사망 사고가 이어지면서 지자체의 예방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에 따르면 중대산업재해·중대시민재해 발생 시 처벌되는 ‘경영자’의 범주엔 지자체장도 포함돼서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지난 2일 “최근 5년간 지자체에서 발주한 공사 현장에서 232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며 “공기 단축을 위한 부실시공, 불법 하도급 등 잘못된 관행과 불법 행태를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산하 기관에서 ‘구의역 김군’ 사고 등이 있었던 서울시는 올해 안전·기반시설 분야 용역과 건설공사 발주에 1조2229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특히 안전·기반시설 등 발주공사를 진행할 때 계획‧공고‧심사‧계약체결‧시공‧준공 단계별로 안전점검을 할 수 있도록 점검 리스트를 만들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직영공사를 늘리는 등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울산시는 중대산업재해 전담조직인 산업안전보건팀을 신설하고, 산재관리점검(모니터링) 강화를 비롯한 3대 전략과 11개 추진과제를 마련했다.

사망사고 25건이 법 유예…“건안법도 제정”

2일 50대 근로자 1명이 작업중 사망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전국금속노조 관계자들이 책임자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50대 근로자 1명이 작업중 사망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전국금속노조 관계자들이 책임자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로도 “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시 근로자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은 2024년까지 법 적용이 유예되고, 상시 근로자 5명 미만인 사업장은 대상에서 제외되면서다. 앞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발생한 사망사고 35건 가운데 25건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해 해당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엄격히 하고, 건설안전특별법(건안법)도 추가로 입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안법은 건설공사 주체별로 안전관리의무를 부과하고 사망사고 시 벌칙을 주는 내용이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국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시행이 무색하게 기업의 안전보건 태만 경영은 변함이 없고, 여전히 노동자들은 죽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건설협회 등은 1월 26일~2월 4일까지 건설 발주사와 시공사 193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응답 기업의 85%가 건안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규정과의 중복(42.1%),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별도 법률 제정 불필요(40.9%) 등의 의견이 주를 이뤘다.

또 사망자 발생 시 발주자를 직접 처벌하는 규정에 대해서는 92.9%가 반대했다. 반대 이유로는 46.7%가 ‘발주자가 통제할 수 없는 사고까지 책임을 부과하기 때문(46.7%)’이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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