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3일 그동안 ‘마지막 퍼즐’로 여겨져온 야권 후보 단일화 숙제를 털어내고 기세를 올렸다. 윤 후보를 추격하던 중 예상치 못한 변수와 맞닥뜨린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역사와 국민을 믿는다”고 응수하며 수도권·중도층 표심 공략에 나섰다.
대선 사전투표(4~5일)를 하루 앞둔 3일 이뤄진 야권 후보 단일화는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오전 8시 단일화를 발표하기 불과 10시간 전까지, 윤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TV 토론에서 따로 따로 한 표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두 후보가 이날 오전 ‘단일화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며 우여곡절 속 단일화 여정에 전광석화처럼 종지부를 찍었다. “단일화 선언으로 완벽한 정권교체가 실현될 것임을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두 사람은 원 팀(One Team)”이라고 선언한 두 후보는 “함께 만들고자 하는 정부는 미래지향적이며 개혁적인 ‘국민통합정부’로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승자독식, 증오와 배제, 분열의 정치를 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함께 정권을 교체·인수·준비하고 정부를 구성해 정치 교체, 시대 교체가 될 수 있도록 선거 후 즉시 합당을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곁들였다.
두 후보의 단일화는 정권 교체 응답층의 갈등을 해소해준 측면이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재창출’ 여론을 꾸준히 앞서는 상황에서 똑같이 “정권 교체”를 내걸고 출마한 두 후보의 단일화는 표의 분산을 막아줄 것이라서다.
반면, 야권 후보 단일화 변수가 사라졌다고 여기며 안 후보와의 정책 연대 불씨를 지폈던 이재명 후보 측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선대위는 단일화 기자회견 시간에 맞춰 긴급 회의를 열고 “새벽에 갑자기 이뤄진 단일화는 자리 나눠먹기형 야합”(우상호 총괄선대본부장)이라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서울 영등포 유세에서 “왕조시대에도 백성을 두려워했거늘 1인 1표 국민주권 국가에서 감히 정치인 몇몇이 이 나라 운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캠프 일각에선 “이미 박빙 열세였는데, 단일화는 대형 악재가 분명하다”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다자 구도의 대선을 이 후보와 윤 후보 간 사실상의 양자 구도로 전환시킨 단일화 효과는 여론조사에서도 감지된다. 대선 여론조사 공표 금지를 앞두고 전날까지 진행돼 이날 일제히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단일화한 윤 후보는 이 후보에 비해 우세했다. 중앙일보-엠브레인퍼블릭(2월 28일~3월 2일) 조사에서 다자 대결 때 각각 43.7%와 40.4%였던 윤 후보와 이 후보의 지지율은 단일화를 가정할 경우 47.4%와 41.5%로 그 간극이 3.3%포인트에서 5.9%로 벌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는 안 후보 지지층이 윤 후보에게 얼마나 옮겨올까의 문제보다 대선 막판 ‘기세’의 관점에서 후보 단일화를 해석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윤 후보가 다소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다수인 상황에서 단일화가 이뤄져 대세론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안 후보 지지층보단 무응답층·중도층에게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봤다. 실제 중앙일보-엠브레인퍼블릭 조사에서 안 후보 지지층은 단일화 때 이 후보와 윤 후보에게 각각 31.2%와 29.2% 옮아갔다. 윤 후보 캠프 관계자도 “안 후보 지지층이 우리 쪽으로 온다기보다는 바둑으로 치면 ‘기세를 탔다’는 의미에서 부동층이나 기존 지지층이 더 적극적으로 투표에 임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보수 진영의 단일화라는 ‘작용’에 맞서 진보 진영의 ‘반작용’도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병일 엠브레인퍼블릭 대표는 “야권 후보 단일화는 역으로 여권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 지지층에게도 일종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단일화 효과와 진보 진영 결집 효과가 상쇄되다 보면 단일화 효과가 미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문화일보-엠브레인퍼블릭(3월 1~2일) 조사에선 단일화 전 1.8%포인트(이 후보 41.9%, 윤 후보 43.7%)였던 격차가 단일화 가정 때 0.9%포인트(이 후보 45.0%, 윤 후보가 45.9%)로 오히려 줄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안 후보가 최근까지 ‘윤 후보를 찍으면 손가락을 자르고 싶을 것’이라고 하는 등 단일화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역결집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후보는 본인의 사전 투표 장소를 기존의 강원도에서 중도 색채가 짙고 유권자가 많은 서울로 바꾸면서 ‘한 표 챙기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날 하루 종일 종로와 영등포 등 서울 일대를 돌며 특히, 여성의 표심에 호소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여론조사 결과를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 기간이 시작되고 본투표까지 닷새 남짓 남았다는 점에서 투표율과 돌발 실수가 남은 변수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양 진영 지지층의 결집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현 국면에서 실제 이들이 얼마나 투표장으로 향할 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같은 날에도 상이한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는 등 여느 때보다 변동성이 큰 이번 대선에서 후보의 돌발 실수 하나가 판을 좌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이 후보 입장에선 단일화에 맞설만한 카드를 내놓기 어려운 상황인 건 맞다”면서도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단일화의 효과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