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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아싸' 출신 후보들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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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윤석열, 비주류·외부 출신

다당제·분권 등 정치개혁 내걸어

'아싸 정신' 잊지말고 협치 이뤄야

오늘 대선 사전투표를 시작으로 일주일 정도 지나면 차기 대통령이 등장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중 한 명일 것이다. 이번 대선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후보 본인이나 가족 관련 의혹에다 자질 시비 등이 겹친 결과다. 이런 탓에 투표장에 가는 게 썩 내키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나 중도층은 흥이 나지 않을 법하다.

“무슨 이런 대선이 있느냐”는 반응이 많은데, 거대 양당이 후보를 뽑은 과정을 돌아보자. 이 후보와 윤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배경에는 지지율이 있다. 당원과 열성 지지자의 입김이 강한 경선에선 정치권 표현대로 ‘지지율이 깡패’였다. 진영 대결에 익숙한 이들에겐 상대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신호가 중요했다. 의혹과 자질이 도마 위에 올라도 자당 후보 중심으로 똘똘 뭉친 진영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기권하지 않는다면 선거에선 주어진 후보 중에 골라야 한다. 남은 기간 승부의 열쇠는 결집할 대로 결집한 양 진영 지지자보다 이제 막 마음을 정하는 이들에게 달려있을 수 있다. 네거티브만 요란하고 희망을 갖기 어렵다는 우려가 크지만, 대선을 낙담만으로 치르면 모두에게 불행이다. 지금은 민주화 이후 집권한 역대 대통령 같은 거물 정치인이 사라진 시대다. 한 번쯤 거칠 과정을 지금 우리가 지나는지 모른다.

차기 국정을 책임질 가능성이 있는 두 후보에 대한 불신의 장막을 걷어내면 공통점이 보인다. 이 후보와 윤 후보는 모두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요즘 표현을 빌리면 ‘아싸’(아웃사이더) 출신이다. 친문이 주류인 민주당에서 이 후보는 비주류였다. 지난 대선 경선 이후 ‘반문’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윤 후보는 아예 국민의힘에 몸담은 적이 없는 외부 인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하고 민주당 정부에서 검찰 수뇌를 지냈으니 아싸도 이런 아싸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대선 후보이니 누구 못지않은 ‘인싸’(인사이더)다. 아싸는 당내 세력에 부채가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당내 계파와의 고리가 약하고, 신세 진 것도 많지 않으니 휘둘릴 일이 적다. 계파의 수장을 자처하는 인사들이 후보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가 강했던 과거 대선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과거 정치권에는 ‘제왕적 대통령’이란 표현만 있던 게 아니다. 제왕적 총재, 제왕적 후보 같은 말도 돌았다. 여전히 대선 후보들의 영향력이 세겠지만, 이번 선거 과정에서 두 후보가 당내에서 제왕적 권한을 휘두른다는 인상은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아싸 출신으로 당내 인싸가 된 후보들은 한국 정치의 해묵은 과제를 개선하겠다는 신호도 보내고 있다.

이 후보는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다당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 정치개혁 구상을 공식화했다. 마지막 TV토론에선 특정 법안을 민주당이 받으라는 다른 후보의 요구에 “제가 시킨다고 당이 하루 만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기다려 달라”고 답했다. 윤 후보는 단일화 회견에서 “정계에 투신해 닦은 경륜으로 국민의힘의 철학과 가치의 폭을 넓혀달라”고 안철수 후보에게 요청했다고 소개했다. 단일화 선언문에 ‘국민통합정부’‘협치’ 등이 담겼는데, 이 후보도 약속한 내용이다. 이 약속이 얼마나 지켜질진 알수 없으나 표면적으론 1인 집중 리더십이나 소속 정당의 관성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부동층을 겨냥한 사탕발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가 당선되든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할 근거가 생겼다.

대선에서 승리하는 후보는 그야말로 ‘핵인싸’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동시에 위기가 찾아온다. 방대한 인사권 등 대통령에 집중된 과도한 권력이 눈앞에 펼쳐진다. 권력의 크기가 커질수록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은 줄어들고 '예스맨'만 즐비해진다. 앞다퉈 약속한 협치는 온데간데없고 선거 과정을 달군 증오와 대결이 스멀스멀 기어 나올 소지가 있다. 지방선거와 총선을 앞둔 각 당내 사정도 대선 승패에 따라 복잡해질 수 있다.

그래서 아싸 시절을 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속 정당과만 손잡고 정책을 펼치면 정당한 경고음도 놓치게 된다. 부동산값 폭등이 심각한 문제였는데, 이 후보와 윤 후보가 내놓은 부동산 공약을 보면 별로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다. 정치권이 하기에 따라선 한국 사회의 이분법적 갈등 구조가 이번 대선을 계기로 달라질 수 있다. 차기 대통령이 초석을 깔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악이란 평가 속에 그래도 누가 '아싸 정신'을 잊지 않을 핵인싸일지, 이제 유권자가 판단할 때다.

김성탁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