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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아저씨 목소리 같지 않나요? 재능없어 악착같이 갈고 닦았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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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게 너무너무 신기해”

그가 노래를 부르기 직전, 심사위원 이선희가 한 말이다. 성대를 좀 다친 사람처럼 잔뜩 쉰 목소리에 누구나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부르기 시작하자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심사위원도, 경쟁자들도, 시청자들도 ‘33호’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스키하다 못해 꺼칠꺼칠하면서도 밀도 높은 음색을 콸콸콸 쏟아내 속을 뻥 뚫어주는 그의 창법이 울컥하고 심장을 파고들어 보호본능까지 건드렸기 때문이다. 다소 과장해 ‘위스키와 담배가 숙성시킨 보컬’이란 수식어로 유명한 톰 웨이츠의 한국판이랄까.

이렇게 소름끼치게 매력적인 보컬이 불혹이 되도록 무명가수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가수 김기태(39)는 이제 빛을 볼 때가 됐다. JTBC ‘싱어게인2’에서 그의 노래를 처음 들은 순간부터 한번도 우승을 의심하지 않은 이유는 ‘진짜 실력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김기태/20220302/스튜디오/박종근] jtbc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가 2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김기태/20220302/스튜디오/박종근] jtbc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가 2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파이널 라운드 심사위원 평가에서 3위를 하고도 압도적인 시청자 문자투표 점수 차로 우승을 거머쥔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우승 소감도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안다”면서 “지금 힘드신 분들”에 대한 응원으로 대신했다. “제 자신에게 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힘든 일도 좋은 일도 다 그래프가 있는 걸 아니까요. 절대 여기 안주하지 말고 이제부터 더 노력해야 하고, 힘든 분들도 절대 거기에 너무 빠져있지 말자는 느낌이었죠. 어떤 순간도 거기 안주하거나 매달려있으면 그 다음이 오지 않을 테니까요.”

사실 그를 만나기 전 걱정이 많았다. 방송에 비친 인상은 샤이하고 말수가 적어 보였고, 파이널을 앞두고 코로나19까지 걸렸었다는 소식에 컨디션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횡설수설하고 말을 못한다”면서도 오래 묵혀온 자신의 속내를 썩 조리있게 풀어냈고, 다이어트 때문에 점심도 굶었다면서도 힘든 내색 없이 수다를 이어갔다. “파이널 십여일 전에 확진됐는데, 목이 많이 아팠어요. 딱 편곡 마치고 연습 들어가야 할 타이밍에 걸려서 초조하긴 했는데, 다행히 회복이 잘 됐습니다.”

김기태는 근 20년 경력의 ‘무명가수’다. 2015년 Mnet ‘너목보’에 출연해 놀라운 무대를 보여줬지만, 그 후로도 크게 뜨진 못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해였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아버지가 살 수 있는 희망이라도 주시려고 도와주신 것 같아요. 친구가 적극 추천해서 ‘너목보’에 나가게 됐는데, 기획사에서 연락도 받았지만 당시엔 그렇게 회사에서 원하는 음악을 하고 싶진 않더라구요.”

[김기태/20220302/스튜디오/박종근] jtbc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가 2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김기태/20220302/스튜디오/박종근] jtbc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가 2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스무살 무렵 아버지의 도움으로 음악을 시작한 만큼, 아버지는 그에게 몹시 특별한 존재다. “어릴 때부터 꿈도 뭐도 없는 아이였거든요. 늘 왜 살아야되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게임도, 운동도, 아무것도 재미가 없었는데 스무살쯤 갑자기 노래를 배우고 싶어졌죠. 단칸방에 아버지랑 둘이 살 땐데, 아버지는 제가 노래 못하는 걸 알면서도 적극 도와주셨어요. 돈을 꿔서 보컬학원과 아카데미형 기획사에도 넣어주셨죠. 저희 집이 문 열면 바로 앞집 문이 있는 반지하였거든요. 집에서 연습을 하면 이웃집이 시끄럽다고 난리였는데, ‘얘가 뭐라도 해볼려고 하는데 냅두라’며 대신 싸워주시고 그랬어요. 그런 아버지 덕에 시작할 수 있었던 거죠.”

가창력이란 ‘재능이 99%’라는 말을 흔히 하지만, 그는 매우 특별한 케이스다. 특유의 허스키한 발성과 포효하는 창법이 타고난 게 아니라, “재능이 정말 없었기에” 끝없는 연습을 통해 갈고닦아 얻어진 것이란다. 재능 대신 강한 동기부여를 준 게 그의 부모님이다. “지금도 집중 안하면 그냥 술 취한 아저씨가 부르는 것 같아요.(웃음) 음역대도 좁아서 10년 동안 조금씩 늘린 것이죠. 처음엔 악착같이 가수가 되려 했던 이유가 엄마 때문이에요. 어릴 때 집을 나간 엄마가 저를 버렸다고 생각했거든요. 방송에 어떻게든 나가서 엄마가 보고 후회하게 만들어야지 생각했죠. 그래서 정말 친구도 안 만나고 노래만 했어요.”

발성 클리닉과 보컬학원을 기웃거리긴 했지만, 학원에서는 아무도 그의 보이스를 인정하고 키워주지 않았다. 그의 노래 선생님은 마이클 볼튼이었다. “학원에서는 다들 ‘너는 노래할 목소리가 아니’라고 했어요. 김범수, 나얼 같은 사람들처럼 부르라고 해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마이클 볼튼의 노래를 듣고 충격이었어요. 허스키한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구나. 베스트앨범 CD가 튈 정도로 들으면서 따라 불렀고, 그때부터 조 코커, 제임스 잉글램, 임재범 같은 허스키 보이스를 미친 듯이 팠어요. 그렇게 하면서 노래가 는 것 같아요. 학원에선 그렇게 부르다 마흔살 되면 소리도 못 낸다고 했지만, 지금 마흔인데 더 늘었네요.(웃음)”

[김기태/20220302/스튜디오/박종근] jtbc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가 2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김기태/20220302/스튜디오/박종근] jtbc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가 2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마이클 볼튼이 노래 선생님”  

‘33호’로 싱어게인에 출격하며 스스로 붙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가수’라는 타이틀은 20년 무명가수로서의 삶이 응축된 표현이다. 긴 세월 동안 포기도 해보고 절망에도 빠지며 걸어온 터널의 끝이 지금 여기쯤이기 때문이다.

“기획사도 두드리면서 방송에 나가보겠다고 뛰어다녔는데, 도저히 안되더라구요. 스물서넛 때 포기를 하고 여러 가지 알바를 하며 돈을 벌었는데, 그렇게 몇 년을 살다보니 또 아무 의미가 없는 거에요. 노래할 땐 뭐라도 목적이 있었는데, 다시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왜 살아야 되지’ 하는 생각이 물밀 듯이 밀려왔죠. 그래서 공연 기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라이브카페나 홍대 클럽같은, 노래하고 돈 받을 수 있는 곳은 다 갔었죠.”
조그만 무대나마 계속 서면서 조금씩 팬이 생기고, “위로가 됐다”는 말을 들으며 ‘행복’이란 감정을 난생 처음 느껴봤다고. 하지만 그 감정도 오래 가진 못했다. “무대서 노래할 때 긴장을 많이 해서 사실 저한테 엄청 즐거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무대에서 내려와 그런 얘기를 들으니,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일도 있구나 싶고, 이렇게 살면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행복감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다시 힘내서 기획사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죠. 더 많은 분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었던 건데, 이상하게 잘 안됐어요. 들어가는 회사마다 문을 닫더라구요.(웃음)”

[김기태/20220302/스튜디오/박종근] jtbc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가 2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김기태/20220302/스튜디오/박종근] jtbc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가 2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2010년을 전후로 한 그즈음은 가요시장의 격변기였다. 날아갈 듯 가볍고 세련된 목소리가 주류가 됐고, 판소리 득음한 사람처럼 묵직한 정공법으로 노래하는 김기태는 시장이 원하는 가수가 아니었다. “점점 노래 스타일이 변하는 세상이었어요. 세련된 목소리를 선호하니 박효신 같은 가수도 발성을 바꿀 정도였죠. 주변에서 ‘너 그렇게 부르면 사람들이 싫어한다. 가볍고 맑게 불러야 된다’는 말을 너무 들어서 한동안 노력도 많이 했어요. 록음악을 하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사실 록은 잘 못해요. 록커들은 특유의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창법이 있거든요. 미묘한 차이인데, 제가 ‘박하사탕’ 부른 걸 들어봐도 록커가 부른 것과 완전 달라요. 파이널 특별 무대에서 정홍일님과 ‘해야’를 부를 때도 어색해서 쩔쩔맸죠. 이건 좀 잘못된 것 같았어요.(웃음)”

‘대중가수’의 길이 보이지 않으니 온갖 작은 무대를 전전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코미디 연극을 하기도 했다. “우리같은 사람은 설 무대가 점점 없거든요. 옛날에는 2, 3만원이라도 받으면서 설 곳이 있었는데, 돈은 벌어야겠고 무대는 서야 하니 배우 전향도 생각해봤죠. 사실 저희 아버지가 잘생기셔서 한때 배우를 꿈꿨거든요. 혹시 배우가 된다면 아버지 이름으로 나가서 꿈을 대신 이뤄야지 싶었는데, 진지한 역할은 못하고 웃긴 역할만 주어지더군요. 잘 못 웃겨서 많이 혼나고 그랬어요.(웃음)”

[김기태/20220302/스튜디오/박종근] jtbc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가 2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김기태/20220302/스튜디오/박종근] jtbc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가 2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어떻게 먹고 살았나 싶지만, “물욕이 없어서 충분히 살만 했다”는 게 그의 답이다. “연극 한편 해서 60만원 받으면 한달 충분히 살았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는 어차피 혼자 살다가 죽을 텐데 돈을 모을 필요도 없었죠. ‘너목보’ 이후 조금씩 행사를 뛰었지만, 틈만 나면 지하연습실로 들어가서 혼자 지냈어요. 아버지 계실 때는 어떻게든 성공해서 아버지랑 좋은데 가려고 뛰었는데, 혼자 남으니까 아무 의욕이 없는 거예요. 안좋은 생각도 많이 했었죠.”

혼자서 ‘살아야 되는 이유’를 끝없이 되물었지만, 답을 찾은 건 다른 이들과의 만남에서다. 음악적 방향성을 세운 것도 그 무렵이다. “친구들에게 너는 왜 사냐고 물어보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사는걸까 너무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너무 행복해 보이는 친구들도 내면에 힘듦이 있더군요. 아파트에서 아내와 아기와 너무 잘 살고 있는 친구 얘기가 정말 충격적이었죠. 10년을 똑같이 출근하고 애보면서 아등바등 살다보니, 이렇게 도돌이표만 찍으며 살 바에야 차라리 내가 차도에 뛰어들어 아내와 아기가 사망보험금을 타면 나처럼은 안 살겠지 싶더라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노래를 만들고 싶어졌어요. 내가 살아야 되는 이유를 삶에 관한 노래를 만드는 쪽으로 찾고, 작곡도 시작했죠. 그렇게 만든 노래가 ‘유 돈 해브 투 트라이’란 곡이에요. 사람들이 너무 미래를 위해 청춘을 다 바치는데,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여유를 찾자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그 계기로 저도 변했죠.”

“정홍일과의 스페셜 무대 어색해서 혼나”

싱어게인 도전은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평가받는 게 두려워 단 한번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본 적 없었던 그가 용기를 낸 건 가족 덕분이다. “호불호가 있는 목소리라서 평가받는 자리에 가면 늘 나쁜 얘길 들으니까요. 다수를 만족시켜야 하는 경연에 나가는 게 너무 두려웠는데, 아내와 아들이 생기면서 저도 많이 바뀌었어요. 저에게 가족이란 건 항상 불안한 것이었는데, 그 시간을 지나 처음 생긴 가족이 너무 따뜻해서 용기낼 수 있었죠. 팬데믹 때문에 공연할 곳이 없어지면서 유튜브를 하게 된 것도 힘이 됐고요. 아무도 안 들어줄 줄 알았는데, 마음 힘드신 분들이 찾아와서 제 노래가 힘이 된다고 사연을 남겨주시더군요. 경연이 두렵지만, 가족과 팬들 앞에 두려움이 대수냐 싶었어요. 자신 없지만 부딪쳐 보기로 한 거죠.”

하지만 매 라운드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욕심과 점차 높아져가는 기대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했다. “모든 라운드가 다 힘들었어요. 정말정말 잘하고 싶은데, 제가 진짜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서 아이디어가 잘 안떠오르거든요. 보통 뮤지션들은 ‘이곡은 이렇게’라는 자기만의 색깔을 금방 찾는데, 솔직히 저는 아직도 그게 없어요. 제가 만드는 곡은 제 메시지를 담겠다는 방향성이 생겼지만, 이건 경연이니까요. 선곡도, 편곡도 늘 꼴찌였죠. 음악감독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있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제가 하는게 맞는 것 같으니까요. 앵무새처럼 부르는 건 가짜 같은 느낌이라 어떻게든 제 머리를 짠 건데, 그렇게 하도록 자유를 주셔서 좋았어요. 이제 스펙트럼을 넓히라는 댓글도 봤는데, 싱어게인으로 또다른 무대 설수 있는 계기 됐으니 더 열심히 준비해서 새로운 모습 보여드리는 것도 제 숙제겠죠.”

[김기태/20220302/스튜디오/박종근] jtbc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가 2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김기태/20220302/스튜디오/박종근] jtbc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가 2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노래 선생님의 한사람이었던 임재범의 곡을 한 번도 선곡하지 않은 건 이유가 있다. 아니, 꼭 해보고 싶었지만 참았단다. “편곡적인 부분 때문이죠. 너무 독보적이시라 원곡 그대로 가면 저도 모르게 따라가게 되거든요. 편곡을 완전 바꿔야 다르다는 소리를 들을텐데, 그러기엔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 생각해요. 하지만 언젠가는 ‘임재범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꼭 깰 겁니다. 같은 노래를 해도 다르다는 얘길 들을 수 있다 확신해요. 지금부터 준비해서 1년 후쯤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보여드릴 겁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소심해 보이는 모습은 어느새 사라졌다. 오히려 강단있는 면모에 ‘20년 무명가수’의 내공이 배어나왔다. 싱어게인을 하면서 자신에 대한 확신이 더 강해졌단다. “심사위원들에게 배운 게 많아요. 가창보다 메시지에 집중하는 쪽으로 음악적 방향성을 잡았지만 경연을 하다보니 다시 가창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제 목소리를 믿으라고 얘기해 주더군요. 제 음악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확고해졌고, 앞으로 제가 하는 음악이 사람들 마음에 가닿는 삶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아니 될 때까지 계속 할 겁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33호의 도전은 정말 터널의 끝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버렸다. 스스로 ‘힘드신 분들’을 위로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이유기도 하다. “제 노래가 힘이 된다는 분들에게 제가 위안을 받았잖아요. 그분들은 보통 많이 힘드신 분들이거든요. 그 고통을 저도 겪어봤으니 제가 조금은 말할 자격이 있는 것 같아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그분들에게 ‘1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제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기태의 새로운 도전에 ‘1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졌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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