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요지경 여론조사…같은 업체, 같은 날 했는데 왜 싹 뒤집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달 25일 서울 상암동 S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대선 후보 초청 2차 법정 TV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달 25일 서울 상암동 S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대선 후보 초청 2차 법정 TV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는 모습. 뉴스1

그동안 대선 여론조사에는 일종의 법칙내지는 관성이 있었다. 지역구가 세분화돼 민심을 포착하기 어려운 총선과 달리 전국을 대상으로 한 대선은 조사 기법의 발달로 인해 점점 정확도가 높아지는 흐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엿새 앞으로 다가온 3·9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여론조사 결과가 들쑥날쑥하다. 3일 이후 조사한 여론조사는 공표가 금지되는 이른바 ‘깜깜이 기간’이 도래했는데도 변동성은 여전하다. 심지어 여론조사 업계에서 이른바 ‘메이저’로 통하는 업체의 조사도 하루 이틀 사이에 결과가 확확 달라지면서 여론조사 전문가들마저도 “도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2일 공개된 여론조사도 오차범위 내의 혼전이었다. 뉴시스-리얼미터(지난달 28일~지난 1일)의 자동응답(ARS) 방식 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43.1%,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46.3%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각각 6.7%, 1.9%였다. OBS-미디어리서치(지난달 28일~지난 1일) ARS 조사는 이 후보 45.0%, 윤 후보 44.9%였다. 안 후보는 5.1%, 심 후보와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는 각각 1.5%였다.

JTBC-글로벌리서치(지난달 28일~지난 1일) 전화 면접 조사 결과는 이 후보 36.6%, 윤 후보 42.3%였다. 안 후보는 6.7%, 심 후보는 2.9%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와 같은 박빙 양상 속에 역대 여론조사에서의 굳건했던 법칙도 깨지고 있다.

① ARS·면접 조사의 탈(脫)동조화

역대 대선에선 선거가 임박할수록 ARS 조사와 면접 조사의 결과가 결국에는 비슷해지는 동조화 현상이 일반적이었다. 기계음으로 묻는 ARS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른바 ‘고관여층’이 주로 응답한다. 그래서 ‘저관여층’까지 참여하는 면접 조사와는 선거 초반 어느 정도 지지율 차이가 벌어지곤 했다. 그러다 선거 막판 부동층이 줄어들고 지지 후보를 정하는 사람이 늘면서 ARS 방식이든 면접 방식이든 결과가 비슷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탈동조화로 부를만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난달 25~26일 조사해 지난달 28일 공개한 TBS-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다. 같은 기간 같은 업체가 ARS와 면접 조사를 각각 수행했는데 이 후보와 윤 후보가 ARS는 각각 43.2%와 45.0%, 면접은 각각 43.8%와 36.1%였다. 각기 다른 업체가 조사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울경제가 칸타코리아에 의뢰해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1일까지 면접 방식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이 후보는 34.1%, 윤 후보는 44.1%를 기록해 격차가 10%포인트였다. 반면 거의 같은 시기(지난달 28일과 지난 1일)에 ARS로 조사한 뉴시스-리얼미터 조사의 격차는 3.2%포인트(이 후보 43.1%, 윤 후보 46.3%)였다.

② 공식 선거운동 개시 뒤 변동성 심화

역대 대선의 불문율 중 하나는 ‘공식 선거운동 개시 직전의 여론조사 승자가 최종 승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표심은 굳어질대로 굳어져 투표를 3주 가량 남기고 공식 유세가 시작되더라도 지지율에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공식 선거운동 개시 뒤에도 양강 후보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대선 정국 시작부터 지지율 변화의 흐름이 안정적이던 일부 업체의 면접 조사에서도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튀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설명하기 어렵다”며 난감해하면서도 대체적으로는 여론조사 기법의 문제라기보다 이번 대선의 특징이 빚어낸 문제로 보고 있다.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중도·무당층으로 불리는 ‘스윙 보터’의 유동성이 극대화된 게 이번 선거의 특징”이라며 “스윙 보터의 방향이 일정하게 유지되지도 않고, 유권자 스스로도 자신의 표심이 헷갈릴 정도로 변동성이 큰 선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동성이 큰 건 쉽게 말해 ‘찍을 사람이 없다’는 유권자의 심리가 큰 것”이라며 “(역대 대선 여론조사와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 건) 굳이 따지자면 이번 대선 후보들 자체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은 “이번 대선에선 (양강 후보가) 대세론이 형성될 정도로 강력한 지지율을 보인 적이 없었다”며 “그건 결국 고민하거나 갈등하는 유권자가 많다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비해 여론조사의 숫자 자체가 상당히 늘어나고, 양쪽 진영 지지층의 결집이 서로 맞물리면서 여론조사 흐름이 크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유세 점퍼를 입고 단상에 올라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유세 점퍼를 입고 단상에 올라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③ ‘당선자의 필승 지역’ 사라지나

1987년 이후 역대 대선 개표 결과에 따르면 인천·경기·충북·제주 지역에서 승리한 후보는 전체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들 지역이 말하자면 ‘당선자의 필승 지역’이었던 셈이다. 서울의 경우에도 2012년 대선을 제외하곤 ‘서울 승리=당선’ 공식이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이번 대선에선 이런 경향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윤 후보가 전반적으로 박빙 우세를 보이는 여론조사가 많은 상황에서도 경기지사 출신의 이 후보가 인천·경기에선 선전하는 여론조사가 많다. 당장 KSOI의 ARS 조사 결과만 봐도 전체적으론 윤 후보(45.0%)의 수치가 이 후보(43.2%)에 비해 높았지만 인천·경기에선 이 후보(46.8%)가 윤 후보(40.4%)를 앞섰다. 정치권에선 “이 후보가 경기지사였다는 점에 더해 부동산 문제를 대하는 서울 민심과 인천·경기 민심이 서로 다른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