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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이 모르는 브랜드로"…한국 백화점 '최대 호황' 비결 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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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2019년 미국 유명 백화점 체인 바니스 뉴욕이 영업을 중단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덩치 큰 유통 채널은 온라인의 공습에 무너져 내렸고, 영화를 누렸던 백화점의 시대도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덮쳤고, 소비 위축과 대면 쇼핑의 어려움으로 국내 백화점 업계도 추운 겨울을 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만 2년이 지난 지금 국내 백화점은 역대급 호황을 맞고 있다. 지난해엔 롯데백화점 동탄점, 신세계백화점 대전점 등 신규 점포 개점도 잇따랐다. 사상 최대 실적을 차례로 갈아치우고 있는 백화점의 선전은 무엇 때문일까.

현대·신세계 ‘2조 클럽’ 나란히 입성

지난해 2월 개점한 여의도 더현대 서울 전경. 개점 1년 만에 매출 8000억원을 기록, 국내 백화점 개점 첫해 매출 신기록을 세웠다. [사진 현대백화점]

지난해 2월 개점한 여의도 더현대 서울 전경. 개점 1년 만에 매출 8000억원을 기록, 국내 백화점 개점 첫해 매출 신기록을 세웠다. [사진 현대백화점]

2일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백화점 3사 실적이 뚜렷한 호조세를 기록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2조103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사상 처음 2조원대 돌파다. 2020년에 비해 20.2%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영업 이익은 3048억원으로 2020년 대비 53.5%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도 2조 1365억원으로 2조 클럽에 재입성,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2020년보다 20% 오른 수치다. 영업이익도 두 배가량 늘어 3622억 원을 기록했다. 업계 1위인 롯데백화점은 8.8% 증가한 2조888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 이익은 6.4% 증가한 3490억원을 거뒀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명품 1번지 백화점 날다

남다른 명품 전략으로 지난해 거래액 2조4940억원을 돌파한 신세계 강남점. 단일 점포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남다른 명품 전략으로 지난해 거래액 2조4940억원을 돌파한 신세계 강남점. 단일 점포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이같은 백화점 실적 호조는 백화점 핵심 상품군인 럭셔리(명품), 남녀 해외 패션 등이 주도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4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는데 이는 명품 41.9%, 해외패션 32.5%, 남성 패션 28.1% 등의 외형 성장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본다. 현대백화점의 해외 명품군 전체 매출은 지난해 전년 대비 38% 늘었으며, 부문별로 시계·보석이 54.2%, 해외 남성 패션이 59.6% 각각 증가했다. 롯데 역시 지난해 4분기 매출 호조에 해외 패션(25.5%), 남성스포츠(10.4%) 부문의 선전이 영향을 줬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명품관 개장을 기다리는 시민들. 뉴스1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명품관 개장을 기다리는 시민들. 뉴스1

백화점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달려가 제품을 구매한다는 ‘오픈런’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명품 선호 현상이 뚜렷해졌다. 명품 선호 분위기는 명품 1번지로 불리는 백화점 앞 긴 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업계에선 코로나19로 여행길이 막히자 해외여행에 쓸 비용을 명품 소비로 돌리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본다. 보복 소비 분위기도 컸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코로나19가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억제됐던 소비 심리가 폭발했다”며 “명품뿐만 아니라 대중 패션이나 화장품 품목의 실적까지 동반 성장하는 등 백화점 수익이 전반적으로 크게 좋아졌다”고 했다.

모르는 브랜드로 채워라, MZ 공략

코로나19와 보복소비, 명품 선호 등 외부적 요인도 있지만 백화점 업계 내부의 절치부심도 통했다. 백화점은 고급스럽지만 낡았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한 ‘젊어지는’ 노력이다. 지난해 2월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연 더현대 서울이 대표적이다. 더현대 서울은 지하 2층 한 층 전체를 MZ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공간에 입점시킬 브랜드를 찾으면서 “임원들이 모르는 브랜드로 채워라”라는 특명이 내려졌다는 것은 업계 내 유명한 일화다. 스니커즈 리셀 전문 매장인 ‘BGZT랩’, 무신사 등 온라인 패션몰에서 인지도를 쌓은 남성 패션 브랜드 ‘쿠어’, 명품 시계 리셀셜 ‘용정콜렉션’ 등이 입점했다. 이를 통해 기존 ‘백화점 브랜드’하면 떠오르는 낡은 이미지 대신 트렌디한 이미지를 덧씌우는데 성공했다.

여의도 더 현대 서울 지하 2층에 자리한 번개장터의 한정판 스니커즈 편집숍 '브그즈트 랩(BGZT Lab).' [사진 번개장터]

여의도 더 현대 서울 지하 2층에 자리한 번개장터의 한정판 스니커즈 편집숍 '브그즈트 랩(BGZT Lab).' [사진 번개장터]

이는 실적으로도 이어져 더현대 서울은 개점 1년 만에 매출 8000억원을 돌파했다. 국내 백화점 개점 첫해 매출 신기록이다. MZ세대를 겨냥한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1년간 더현대 서울의 연령대별 매출 비중을 분석한 결과,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50.3%였다. 매출 절반이 30대 이하 고객에게서 나온 셈이다.

백화점 공간도 ‘페르소나’ 가져야

백화점 업계의 선방은 무엇보다 공간 혁신에 기인했다는 평가다. 백화(百貨)점은 말 그대로 백 가지 물건이 놓여있는 점포다. 물건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갔던 과거에는 없는 게 없는 백화점 전략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에 더 많은 물건이 있다. 요즘 백화점이 좋은 상품보다 좋은 공간으로 사람을 끄는 이유다.

지난해 더현대 서울의 3,300㎡(약 1,000평) 규모의 실내 정원 ‘사운즈 포레스트’에 고객들이 평균 약 37분간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현대백화점]

지난해 더현대 서울의 3,300㎡(약 1,000평) 규모의 실내 정원 ‘사운즈 포레스트’에 고객들이 평균 약 37분간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현대백화점]

지난해 차례로 오픈한 백화점 3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간 혁신은 공통적이다. 매장을 빽빽이 채우는 대신 중정형으로 탁 트인 공간을 설계하고, 실내 조경을 꾸미는 등 공간의 매력을 더했다. 갤러리를 방불케 하는 예술 작품과 전망대·수족관 등 체험 거리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개점 당시 층별 쇼핑 안내문 옆에 예술품 안내 가이드를 나란히 배치했다. 데이비드 호크니·이우환·박서보 등 100 작품이 넘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곳곳에 포진시키고, 백화점 최초로 오디오 도슨트(전시 설명) 서비스도 제공했다.

요즘 백화점은 갤러리 못지 않은 예술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롯데백화점 동탄점 1층 개점 당시 모습. [사진 롯데백화점]

요즘 백화점은 갤러리 못지 않은 예술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롯데백화점 동탄점 1층 개점 당시 모습. [사진 롯데백화점]

『더현대 서울 인사이트』의 공저자 이향은 LG전자 고객경험혁신담당 상무는 “트렌디한 F&B(식음료) 점포를 늘리거나 마치 편집숍처럼 보이도록 매장 구성을 하는 등 백화점 스스로 고정관념을 깨려는 노력이 있었다”며 “위기에서 오히려 기회를 찾은 것”이라 말했다. 이어 “녹음이 가득 찬 쇼핑 공간이나 갤러리 등 개별 고객이 자기 정체성을 동일시할 수 있는 공간인 ‘페르소나 공간’을 백화점에 실현, 사람들이 열망하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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