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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에 '못된 것'만 가르치는 푸틴…핵 배짱에 안보리 뭉개기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서방의 제재에 맞서 핵 카드를 거침없이 꺼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무력화하면서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태를 관망하던 북한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을 미국과 서방에 돌리며 '러시아 편들기'를 본격화했다.

지난 2019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Sharifulin/TASS. 연합뉴스.

지난 2019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Sharifulin/TASS. 연합뉴스.

NPT 근간 통째로 흔드는 ‘무법’

러시아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 억지력 부대에 '특별 전투 임무'를 지시한 것을 시작으로 핵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튿날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 장관은 핵전력 강화 준비 태세에 돌입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3대 핵전력(ICBMㆍSLBMㆍ장거리 폭격기)을 운용하는 부대가 모두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러시아 주요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 망에서 배제하는 등 서방의 제재가 조여오자 푸틴은 이에 '핵 위협'으로 맞선 셈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로 침공하는 길을 터준 데 이어 러시아를 지원할 군 투입 의사까지 밝힌 러시아의 핵심 우방국 벨라루스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비핵국가의 지위를 포기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승인했다. 사실상 러시아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이로써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반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알렉산더 베글로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지사와 회의하는 모습. Alexei Nikolsky, Sputnik, Kremlin Pool Photo via AP. 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알렉산더 베글로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지사와 회의하는 모습. Alexei Nikolsky, Sputnik, Kremlin Pool Photo via AP. 연합뉴스.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모두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다. 하지만 이로써 러시아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책임을, 벨라루스는 비핵국가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를 도화선으로 NPT 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당장 원자폭탄 피해 경험으로 핵무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일본에서조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일본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식 핵 공유를 논의해야 한다"고(지난달 27일, 방송 출연) 공론화하는 등 관련 동향이 심상치 않다.

한국도 핵 무장을 지지하는 국내 여론이 약 70%에 이른다. 자체 핵 무장 여론이 비핵국가 사이에서 도미노처럼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하는 모습. 그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자유세계가 그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고 비판했다. Saul Loeb/Pool via REUTERS.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하는 모습. 그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자유세계가 그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고 비판했다. Saul Loeb/Pool via REUTERS. 연합뉴스.

美에는 역시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궤변’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유엔 긴급 특별 총회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의 원인은 미국과 서방의 패권 정책(hegemonic policy)"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의 자국 안보에 대한 합리적이고 정당한 요구를 저버렸다"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올해 들어서만 8차례나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북한으로 하여금 핵 무력 증강의 명분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연결된다. 애초에 지난 1994년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과 국가 안전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것 자체가 '핵이 있어야만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왜곡된 교훈을 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미국 주도의 강력한 제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주변국에 대한 무력 사용을 '권리'라고 주장하는 러시아의 행보는 그간 북한의 주장과 상당 부분 닮아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의 핵전략이 최근 몇 년 사이 '선제 불(不)사용'에서 '선제 사용'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의 제재에 맞서 국방성 등 관련 조직에 '미국에 맞서는 확실한 자위의 수단은 역시 핵무기뿐'이라는 지침을 내린다면"이라는 가정 역시 가능해지는 셈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자국이 직접적인 핵 위협을 받거나 안보 상의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러시아가 순전히 주변국의 군사적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핵 카드를 꺼낸 건 사실상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북한이 향후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안보 공약 실천을 차단하는 수단으로 러시아의 선례를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가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 유엔 웹 티비.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가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 유엔 웹 티비.

유엔 안보리도 우습다는 ‘안하무인’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불발됐다. 이에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유엔 긴급특별 총회가 열려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했지만, 총회 결정 사항은 안보리 결의와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다.

이런 러시아의 의도적 안보리 무력화는 최근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에 막혀 북한이 도발해도 제대로 된 공동 규탄 성명조차 도출하지 못하는 현실과 닮아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러시아에 한없이 무력한 유엔의 모습이 북한의 '마이 웨이'식 군사 행동에 더욱 속도를 붙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은 앞서 북한 미사일 관련 유엔 안보리 차원의 회의만 소집돼도 "유엔 안보리 일부 성원국들이 자주적인 나라들의 주권을 침해하고 발전을 저해하기 위한 불순한 목적 실현에 유엔을 도용하고 있다"(지난해 3월, 외무성 국제기구국장 담화) 등 주장을 펼치며 강력하게 반발해왔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 모습. REUTERS/Carlo Allegri. 연합뉴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 모습. REUTERS/Carlo Allegri.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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