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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판 '모가디슈'…열차 급취소, 외교관 차에 겨우 몸 실었다 [영상]

중앙일보

입력

지난 24일(현지시간) 정오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유리창이 흔들리는 굉음에 교민 강현창(40)씨는 몸을 수그리며 창밖을 내다봤다. 러시아군 전투기가 상공을 가르고 있었다. 한국의 학군단(ROTC) 출신인 강씨는 위험을 직감했다. “전투기가 도심을 날아다니는 건 방공시설이 무력화됐다는 얘기”라는 판단이 들었다.

당장 짐을 싸고 가족과 대피해야 하는 상황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후 강씨는 “마음은 다급한데 전쟁 한복판에 놓이니 머리가 멍해졌다. 패닉 상태였다”고 당시 느낌을 전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와 6살 난 딸을 차에 태웠다. 양손에는 최소한의 생필품을 담은 가방 두 개가 들려있었다. 생존을 위한 대피의 시작이었다.

키이우를 탈출한 현지 교민 강현창씨. 사진 강씨 제공

키이우를 탈출한 현지 교민 강현창씨. 사진 강씨 제공

서쪽으로 20시간 운전…취소된 폴란드행 열차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주민들이 러시아의 로켓 공격으로 파손된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AP=뉴시스]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주민들이 러시아의 로켓 공격으로 파손된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AP=뉴시스]

공습이 이뤄지는 키이우로부터 멀리 떨어져야겠다는 일념으로 차를 몰았다. 목적지는 우크라이나 서부도시 르비우. 키이우로부터 약 545km 떨어진 곳이었다. 대피를 위해 나온 차들로 도로가 막히며 키이우 시내를 벗어나는 데만 수 시간이 걸렸다. 잠도 안 자고 약 20시간을 내리 운전했다. 손에는 계속 땀이 맺혔다.

25일 오전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에 도착했다. 대피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던 26일 새벽 1시, 르비우에서 출발하는 폴란드행 특별 열차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살았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열차가 취소됐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시 헝가리 국경 향해 10시간, 외교관이 운전대 잡아

“우크라이나와 운명을 같이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주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다. 폴란드로 향하는 육로도 거의 마비됐으니 차로 헝가리 국경을 넘자는 제안이었다. 오중근 공사가 강씨 가족을 데리러 직접 왔다. 대사관의 조주이 서기관과 현지 한국인 직원과 함께였다. 강씨는 아내와 딸과 함께 오 공사가 마련한 승합차에 올랐다. 외교관들이 운전대를 잡았고, 강씨는 내비게이션으로 도로 사정을 확인했다. 영화 ‘모가디슈’의 한 장면처럼 생사를 건 주행이었다.

강현창씨가 우크라이나-헝가리 국경을 넘을 때 탔던 승합차의 모습. 오중근 공사가 직접 운전했다. 사진 강씨 제공

강현창씨가 우크라이나-헝가리 국경을 넘을 때 탔던 승합차의 모습. 오중근 공사가 직접 운전했다. 사진 강씨 제공

폭발 때문인 듯 도로 곳곳이 움푹 파여 있었다. 파인 곳을 피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전면전 태세로 접어들면서 차량 행렬이 늘었다. 오 공사의 ‘역주’ 덕분에 우크라이나 국경 수비대와 협의한 시간 안에 우크라이나-헝가리 국경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르비우를 출발한 지 10시간 만이었고, 집이 있던 키이우를 떠난 지 3일 만인 27일 새벽이었다.

대사관 직원들은 강씨 가족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내려주고 다시 우크라이나 르비우의 임시 사무소로 복귀했다. “살았구나”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자마자 우크라이나에 남은 지인들 얼굴이 스쳤다. 2010년부터 우크라이나에 거주하고 현지의 최대 가스회사 나프토가즈의 가스투자 담당 임원으로 일하면서 우정을 나눈 이들이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전차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인들 도와달라”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방공호에서 한 여성이 아이를 안고 있다. [A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방공호에서 한 여성이 아이를 안고 있다. [AP=연합뉴스]

강씨는 “키이우의 대피소로 피해 있는 친구들은 식량과 의약품이 부족하다. 아프거나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대로 죽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곳의 지인들이 강씨에게 우크라이나 상황을 영상으로 보내고 있다. 폭격으로 민간인이 다쳤고, 민가가 불에 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화염병을 들고 러시아 전차에 대항하고 있다”고 강씨는 말했다.

강씨는 “죄 없는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강씨는 2010년 우크라이나로 이주하기 전 러시아에서 대학원을 다녔고, 러시아에 있는 한국 기업에서 일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형제국가다. 러시아 할머니, 우크라이나 할아버지로 이뤄진 가족들도 많다”며 “갑자기 일어난 전쟁에 민간인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전쟁이 일어난 게 지금도 꿈만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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