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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쉰 목소리, 그래서 더 위로가 된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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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어릴 땐 노래를 굉장히 못 했어요.”

2일 오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난 JTBC ‘싱어게인’ 시즌 2 우승자 가수 김기태(39)는 “2시간밖에 못 잤다”면서도 “계속 얼떨떨하다. 지금도 약간 꿈 같고, 내일 이 꿈이 깰까 봐 무섭기도 한데, 한 편으로는 많이 설렌다”고 말했다.

JTBC 싱어게인 우승자 가수 김기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JTBC 싱어게인 우승자 가수 김기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기태는 2010년 마산MBC 특별기획 드라마 ‘누나의 삼월’ OST 작업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2에 출연하기도 한 14년 차 가수다. ‘33호’ 배지를 단 무명가수로 ‘싱어게인2’에 도전한 그는 6라운드 경쟁 끝에 참가자 73명을 제치고 우승했다. 지난달 28일 파이널에서 심사위원 점수 749점, 시청자 투표 21만4461표를 받았다. 그는 “1위로 이름이 불린 순간 믿을 수가 없어서 프롬프터(프로그램 내용 설명이 뜨는 진행 화면)를 다시 봤다”며 “확인하고도 한동안 멍했다”고 말했다.

김기태는 첫 등장부터 주목받았다. 인사 목소리에 심사위원들은 “어?”하며 고개를 들었다. 노래 첫 소절을 부르자 “와~” 감탄사가 쏟아졌다. 심사위원들은 앞다퉈 ‘어게인’(다음 라운드 진출)을 눌렀다. 이선희 심사위원은 “33호만이 줄 수 있는 쓸쓸함과 고독함이 있다”며 “왜 이제야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JTBC ‘싱어게인2’의 ‘33호’, 가수 김기태가 지난달 28일 열린 파이널 무대에서 심사위원 점수와 시청자 투표를 합산해 최종 1위를 차지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JTBC ‘싱어게인2’의 ‘33호’, 가수 김기태가 지난달 28일 열린 파이널 무대에서 심사위원 점수와 시청자 투표를 합산해 최종 1위를 차지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거칠고 굵은 톤의 목소리가 트레이드 마크다. 변성기 이후 쭉 그대로인 타고난 목소리이고, 노래할 때의 톤은 연습으로 조금 바뀐 거라고 했다. 콤플렉스까지는 아니어도 “맑은 목소리를 동경해왔다”는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이런 소리’라고 칭했다. 그는 경연 내내 “목소리를 믿으라”고 한 유희열 심사위원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김기태

김기태

김기태는 “나도 모르게 자신 없어 하는 모습이 심사위원들 눈에 보였던 것 같다”며 “이선희 심사위원이 ‘많은 가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감동을 주는 목소리를 지닌 것 같다’고 말해줘 큰 용기가 났다”고 덧붙였다. 첫 무대였던 김광석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3라운드 이하이의 ‘한숨’에는 심사위원 전원(8명)으로부터 ‘올 어게인’을 받았다. 그는 “막상 현장에서는 ‘진짠가? 말이 되나 이게?’ 싶었고, 방송으로 볼 때는 ‘내가 저기서 노래를 했나?’ 다른 사람이 노래하는 걸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김기태는 “남자 노래는 항상 음 이탈이 나고, 목소리도 이상했다”며 “어릴 땐 가수가 되고 싶거나 그런 건 없었다”고 했다. 그저 노래방 가는 게 좋았고, 스무 살에 노래를 배우러 학원에 간 게 시작이었다. 그는 “살면서 재밌거나 설레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학원에서 처음 노래를 배우고 공연한 뒤에 태어나서 처음 행복을 느꼈다”고 돌이켰다.

“노래할 때는 떨리고 긴장되고, 실수할까 봐 생각이 너무 많다”며 “노래 자체가 좋은 건 아니”라는 김기태는 “노래를 한 뒤로 ‘노래가 위로가 됐다’는 말을 들을 때 행복했다”고 했다. 간간이 드라마 OST도 작업하고 홍대 등지에서 공연도 했지만, 생계를 꾸리기에는 부족했다. 긴 시간 무명가수로 살며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이었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길어지면서 그나마 무대마저 잃었던 상황에서 ‘싱어게인2’에 출연하게 됐다.

김기태는 ‘위로’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썼다. 2015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혼자가 된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하지’ 많이 고민”했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만나는 사람마다 ‘너는 왜 살아’라고 물어보고 다닌” 침체기의 영향이 크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가수’라는 소개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기태는 “절망했을 때는 허우적댈수록 빠져나오기 힘든 늪에 빠진 기분이 든다”며 “그땐 모든 게 다 부정적으로 들리고 아무도 만나기 싫은데, 그 힘듦은 자기가 깨야 하지만 그게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살지’ 고민한 끝에, 누가 듣지 않더라도, 내가 죽기 전까지 내 곡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그 이후 사람들의 힘든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어떤 말과 멜로디를 쓰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작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33호 가수’에서 자신의 이름 ‘김기태’를 되찾는 명명식에서 직접 작사·작곡한 ‘우연처럼, 인연처럼, 운명처럼’을 불렀다. 그는 “발표하고도 부를 곳이 없었고, 공연장도 없었다”며 “요즘 같은 시대에는 무대에 한 번 서는 게 너무너무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이 곡은 지난해 12월 유튜브 채널에 올렸는데 조회 수 28만 회를 기록 중이다.

최근 좋아하는 곡은 이선희의 ‘인연’과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다. 그는 “주변 친구들,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며 “사람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자 가사들이 마음에 많이 박혔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인연’ 한 소절을 불렀다.

김기태는 “전에는 가치 있게 사는 게, 지금은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다음 달 9일 부산을 시작으로 ‘싱어게인2’ 탑10과 함께 전국 투어 콘서트에 나선다. 톱3와는 JTBC ‘유명가수전’에도 출연한다. 그는 “인터뷰도, 사진 촬영도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다”고 했지만, 종종 활짝 웃는 게 즐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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