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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있다, 포격 못해요" 항명…짜증난 러 군대 지휘관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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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포격하라.” “민간인이 떠날 때까지는 못 합니다.”

사실상의 항명. 군에서, 특히 전쟁 중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정보회사 섀도브레이크(ShadowBreak)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군 내에서 오간 무선 통신 도청본을 입수해 분석했다. 도청된 녹음 파일은 총 24시간 분량이며, 텔레그래프를 통해 이 중 일부만 공개됐다.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의 친러시아군 병사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의 친러시아군 병사들. [로이터=연합뉴스]

텔레그래프는 총 3개의 짧은 음성 파일을 청취했다고 전했다. 사령부의 마을 포격 지시에 불복하는 러시아 병사의 음성은 첫번째 파일에 담겼다. 병사의 불복 뒤 긴장된 대화가 이어졌고, 결국 지휘관은 짜증을 내며 민간인이 대피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두번째 파일에는 전투 중에 병사가 울먹이는 소리가 담겼다, 마지막 파일에는 보급품과 연료를 요구하던 병사가 러시아어로 욕설을 내뱉는 게 녹음됐다. 해당 병사는 “여기 온지 지금 사흘째야! 대체 언제 준비가 되는 거냐고!”라고 소리를 질렀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피해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피해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섀도브레이크의 새무얼 카딜로 대표는 “녹음 파일 전체를 들어보면, 러시아군은 현재 완전한 혼란 속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러시아군은 현재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해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분명한 것은 러시아군의 사기가 저하돼 있다는 점”이라며 “서로를 향해 모욕적인 발언을 하고, 총을 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 텔레그래프를 통해 공개된 내용만으로도 러시아군의 혼란상뿐 아니라 민간인 거주지 포격을 군 지휘부 차원에서 지시한 ‘전쟁 범죄의 증거’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루간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파괴된 러시아군 탱크.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루간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파괴된 러시아군 탱크. 연합뉴스

도청 녹음 분석을 통해 러시아군의 무전 방식도 일부 파악됐다. 텔레그래프는 러시아군이 디지털 통신망을 완비하지 못해 일부 부대에선 아직도 전투기·헬리콥터·탱크·포병과 아날로그 방식으로 소통한다고 전했다.

카딜로 대표는 “전쟁 중 작전을 수행할 때 이 같은 통신 방식은 엄청난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섀도브레이크는 안테나를 사용해 취미 삼아 라디오 주파수 대역을 도청하는 이들을 통해 해당 도청본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도·감청이나 교란이 수월하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러시아군의 사기가 떨어져 있다는 판단은 미국 국방부도 내놨다. 1일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에 있는 일부 러시아군이 사기 저하와 연료·식량 부족에 시달리면서 전투를 피하기 위해 싸우지도 않고 대규모로 항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상당수 러시아군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린 징집병”이라며 “전선에 도착하기 싫어 의도적으로 차량 연료탱크에 구멍을 뚫는 병사도 있다”고 전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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