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정주 남긴 마지막 선물…1년 넘게 공들인 '125억 건물'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충남 아산의 강혜연씨가 희귀병을 앓는 아들 태경이(10)의 가래를 뽑아내고 있다. 강씨는 10년째 집에서 24시간 아이의 의료 처치와 돌봄을 도맡고 있다. [유튜브 캡처]

충남 아산의 강혜연씨가 희귀병을 앓는 아들 태경이(10)의 가래를 뽑아내고 있다. 강씨는 10년째 집에서 24시간 아이의 의료 처치와 돌봄을 도맡고 있다. [유튜브 캡처]

10살 태경이는 태어날 때 저산소증으로 뇌가 손상됐다. 희귀성 난치병인 용혈성요독증후군을 안고 태어났다. 서울대병원에서 1년 입원 치료를 받았고 더는 방법이 없어서 충남 아산의 집으로 왔다. 그때부터 집 거실이 중환자실이 됐고, 엄마 강혜연씨는 '의사'가 됐다.

서울대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11일 기공식 #"김정주 이사 기공식에 참여할 예정이었는데…"

 오전 6시 우유 먹이면서 강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투약, 나트륨 먹이기, 입안 닦기 등이 반복된다. 온종일 산소포화도 측정기나 네블라이저(호흡 보조기) 등의 각종 의료 장비를 모니터링 한다. 입으로 우유를 삼키지 못해 위루관(위에 직접 튜브를 연결해 음식물을 공급)으로 먹인다. 아이 목에서 그렁그렁 소리가 나면 반사적으로 가래를 뽑아주는 석션을 한다.

 강씨와 태경이의 24시간은 유튜브 영상(중증질환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의 24시간 시간표)을 보면 강씨는 석션(가래를 뽑아주는 일)을 하며 "엄마가 미안해"라며 아이를 달랜다. 자정에 마지막 우유를 먹이고 네블라이저를 연결하고 석션을 한다. 강씨는 아이 옆에서 잠을 자지만 자는 게 아니다. 새벽 2~3시에 아이 자세를 바꿔준다. 한쪽으로 누워있으면 힘들기 때문이다. 6시가 안 돼 기저귀를 간다. 자다가도 그렁그렁 소리가 나면 용수철처럼 일어나 석션을 한다. 강씨는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라고 말한다. 엄마는 잠시라도 소홀히 하면 엄청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어 항상 긴장 상태로 산다. 이런 세월이 10년이다.

 아이에게 응급 상황이 생기면 119를 타고 주변 병원 응급실로 간다. 거기서 해결하지 못해 언제나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된다. 아산에 아이를 치료할 만한 의료 시스템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너무 힘든 길이다. 서울대병원 가정방문 의료팀도 충남 아산까지 커버하지 못한다.

 태경이처럼 중증 질환을 앓는, 가족이 떠안고 있는 아이가 13만명에 달한다. 간병인을 구하기 힘들어 엄마가 간병인이자 의사가 된다. 누구도 엄마를 대신할 수 없다. 가족 나들이·외식 등의 소소한 일상은 꿈도 못 꾼다. 한 엄마는 "집 근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마셔봤으면"이라며 소원을 빌었다. 맞벌이가 홑벌이가 되니 수입이 줄어든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의학과 김민선 교수는 "아무한테나 천재지변처럼 생길 수 있는 일인데, 가족이 오롯이 모든 부담을 감당하는 게 옳지 않다. 가족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정주 NXC 대표 [사진 NXC]

김정주 NXC 대표 [사진 NXC]

 이런 '독박 돌봄'을 줄이려는 시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최근 별세한 넥슨 창업자 김정주(54) NXC 이사의 마지막 선물, 바로 서울대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이다. 넥슨의 100억원 기부로 건립된다. 보건복지부도 중증 소아 환자와 가족을 위해 25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이 센터는 11일 첫 삽을 떠 내년 3월 문을 연다. 기공식에는 고인이 참석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연면적 978㎡의 4층 건물이며 병실 16개와 놀이 프로그램실 등이 들어간다. 아이가 1주일 또는 2주일 입원하면 병원 측이 엄마를 대신해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기간에 가족은 휴식을 취한다. 국내 첫 시도이다.

 성인이 24시간 케어가 필요한 중증 환자가 되면 요양병원이 대신할 수 있지만 아이는 의지할 데가 없다. 그래서 서울대병원 측이 넥슨 측에 도움을 청하자 선뜻 승낙했다고 한다. 다음은 김민선 교수의 회고.

 "중증 질환을 앓는 아이들과 가족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했습니다. 지원해 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아이들과 가족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이런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흔쾌히 기부했어요. 이 과정에서 김정주 이사를 두 번 만났어요. '(100억원 기부가) 별 게 아니다. 병원이 이런 걸 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고인의) 겸손한 모습에 놀랐습니다."

 서울대병원 측과 넥슨은 지난 2020년 10월 센터 건립 협약식을 했다. 지난해 7월 설계가 완료돼 진도를 냈지만, 부지에서 유물이 발견돼 석 달 늦어졌다. 지난해 말 넥슨 측은 '중증질환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의 24시간 시간표'라는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이를 토대로 사내 모금을 했고 모금액만큼 넥슨 측이 돈을 보내 8500만원을 서울대병원 측에 기부했다.

유튜브 영상에서 한 엄마는 아이가 중증 질환에 걸려 24시간 돌봐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자 "무인도에 떨어진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아이의 초등생 누나는 "동생과 함께 제주도에 가서 귤을 따고 싶다"며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했다. 내년 이맘때 고(故) 김정주 이사의 마지막 선물 덕분에 엄마들이 독박 돌봄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 동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즐기고 제주에서 귤을 딸 수 있게 될 듯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