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기업만 58개…中 시골마을은 어떻게 기회의 땅이 되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2.03.02 11:05

중국 경제가 가장 발달하고 활발한 성(省)을 꼽자면 장쑤(江蘇)와 광둥(廣東)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 어떤 현(县)*이 가장 뛰어난지 묻는다면, 그 답은 장쑤성일 것이다.

*현급시(县级市), 현(县)등 중국 현급행정구는 한국의 시, 군, 구 정도로 볼 수 있으나 그 인구가 조금 더 많다.

ⓒ셔터스톡

ⓒ셔터스톡

‘2021년 중국 100대 현(县) 지역 경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100대 현 중 GDP가 천억 위안(약 17조 원)을 돌파한 현이 38개에 달했다. 그중 장쑤성의 현이 총 16곳으로 42.1%를 차지했다.

100대 현 TOP10 중에는 장쑤성 현이 6개를 차지했고, 전체로 보아도 장쑤성 현이 25개로 가장 많이 선정되었다.

2021년 중국 100대 현(?) 지역 경제 연구 보고서 ⓒ 중국 싸이디(?迪) 지역경제연구센터

2021년 중국 100대 현(?) 지역 경제 연구 보고서 ⓒ 중국 싸이디(?迪) 지역경제연구센터

장인시는 이로써 17년 연속으로 국가 경제 발전 현 목록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올해 설을 앞두고 장쑤성 장인(江陰)의 기업 '차이나(採納)'가 중국 중소 벤처기업 전용 증시인 촹예판(创业板)에 상장됐다. 이는 장인(江陰)시 출신의 올해 첫 상장 기업이다. 2004년에 설립된 차이나는 주로 주사·천자 기구 및 관련 의료기기의 연구 개발, 생산 및 판매에 종사하는 기업이다.

1월 26일 장쑤성 장인시의 차이나(採納) 기업이 촹예판에 상장했다. ⓒ취안징네트워크(全景網絡)

1월 26일 장쑤성 장인시의 차이나(採納) 기업이 촹예판에 상장했다. ⓒ취안징네트워크(全景網絡)

현재 장쑤 장인시에는 총 58개의 기업이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되어 주식이 거래되고 있다. 1선 도시인 광저우(廣州)의 상장기업이 200곳도 안 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놀라운 성과다.

장쑤성 북부에 위치한 장인(江陰)시의 면적은 987.5km² 정도로 제주도의 절반 정도다. 1997년 2월, 장인시에서 첫 주식 상장기업이 탄생하며 자본시장 전성시대가 막을 올렸다.

불과 6년 사이에 16개의 회사가 상장하며 '장인판(江陰板·장인시에서 상장한 기업)'이라는 별명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매월 평균 1개의 회사가 상장되며 자본 시장에서 가장 선전하는 해로 회자된다.

2017년 11월 6~15일, 단 열흘 만에 두 기업이 연속 상장에 성공했으며, 장인판의 총 시가총액은 3000억 위안을 초과해 그해 GDP였던 3488억 위안을 웃돌았다. 총면적이 1000㎢도 안 되는 도시가 국가 GDP의 2%와 상장 기업의 1%를 창출한 것이다.

장인시 전경 ⓒ바이두 백과

장인시 전경 ⓒ바이두 백과

이 작은 도시는 어떻게 여타 선진 도시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경제력을 갖추게 됐을까.  

장인(江陰)은 양쯔강의 '요충지'에 위치하여 지리적 위치가 매우 우수하다. 그 이점을 이용해 해양 산업의 발달을 이끌었고 해외 진출이 용이했다. 또 저장성,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와 근접해 이들 주요 도시에서 강한 추진력과 영향을 받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지리적 이점뿐만 아니라 활발한 ‘민영경제’가 장인시의 발전을 이끌었다.  
장인시 기업의 97%가 민간기업이며, 이들 기업이 지방세의 약 75%와 일자리의 90% 이상을 기여한다. 민영경제의 근간은 1980년대에 일어난 향진기업*이다.

*향진기업: 중국 농촌 지역 농민들에 의해 설립된 비농업부문(공업, 운수, 서비스업 등)의 경제활동을 담당하는 다양한 형태의 비국유기업으로 지방자치단체 주민이 공동으로 경영한다.

개혁개방 이전 문화혁명이 한창때인 1969년, 우런바오(吴仁宝) 촌서기는 '농업의 공업화'를 외치며 중앙정부 몰래 지하에 공장을 건설했다. 생산되는 물건은 지하시장에서 판매하여 자본을 축적했다. 이렇듯 은밀하게 운영한 철공소 덕에 1970년대 후반까지 장인시는 평균 100만 위안 정도의 자금을 축적할 수 있었다.

개혁개방 이후엔 정부가 주도하는 지원금과 대출을 바탕으로 자본을 확보했다. 지역 단위 혹은 개인투자자는 그 당시 자본시장에서 큰손으로 활약하며 철강, 담배, 부동산, 금융산업을 모두 인수·합병했다. 또 전국에 있는 전문가들을 채용하고 유망한 인재 발굴에 힘쓰는 등 지역 전체가 거대한 기업으로 운영되게끔 했다.

1970~80년대 장인시 모습. ⓒ신화통신

1970~80년대 장인시 모습. ⓒ신화통신

이런 '농촌의 공업화' 물결 속에서 중국 농촌 역사상 처음으로 집단 경제를 기반으로 한 사대공업 기업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향진기업 최초의 전신이다.

향진기업은 국가가 소유하는 공장에 비해 4배 이상의 생산성을 보이는데, 이는 마을 주민들이 공장을 공동소유하고 재투자액을 제외한 모든 이윤을 마을 주민들에게 분배하기 때문이다. 또 균등 임금을 지불하는 국영기업과는 달리 고급 기술인력과 경영관리자에게 더 많은 배당을 주고 기술자들도 능력에 따라 차등 임금을 받는다.

이후 곳곳에서 장인시를 따라 지역 내 집단 기업이 생겨났고, 지방정부의 주도로 농민이 스스로의 역량으로 기업을 발전시킨다는 ‘소남모델’ (蘇南模式)의 기원이 됐다. 이후 장인시는 '사회주의신농촌'의 트레이드 마크로써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1970년대 장인 도자기 공장에서 작업자가 완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인민화보

1970년대 장인 도자기 공장에서 작업자가 완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인민화보

그러나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면서 민간기업들은 보다 느슨한 정책환경을 확보하게 됐고, 한편으로는 농촌기업들의 모호한 재산권 분배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었다.

경직된 기업 관리 체제의 영향으로 경영난에 빠지고 제품시장의 경쟁은 치열해졌으며 기업의 이윤이 감소하면서 향진기업은 너도나도 '민영기업'으로 변모하려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인시 주민들에겐 큰 난제가 있었다. 자금이 부족해 민영기업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해답은 ‘주식 상장’이었다. 

1996년 말 제1차 '자본경영 워크숍'이 열려 8대 유력 증권사가 장인시에 초청돼 현지 정부·기업과 함께 성장 활로를 모색했다. 이어 장인시에 '기업주식 상장 지도소조(指导小组)'라는 정부 기관이 등장하며 기업주식제 추진에 착수에 돌입했다. 기업의 자산재편, 자본경영의 발전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각종 지원책을 내놓아 기업의 상장을 적극 추진하였다.

 '싱청터강(興澄特鋼)'의 전신 장인제철소의 모습. ⓒ인민화보

'싱청터강(興澄特鋼)'의 전신 장인제철소의 모습. ⓒ인민화보

그렇게 1997년 2월 28일, 옛 장인제철소에서 개편된 장인싱청야금주식회사는 '싱청터강(興澄特鋼)'이라는 이름으로 장인시 최초로 선전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이후 금속제품생산기업 '파얼셩(法爾勝)', 전세계 최대 모방직 생산 기업 '양광그룹(陽光集團)', 흡수식 냉동기 개발업체 '솽량그룹(雙良集團)' 등이 상장하며 불과 3년 만에 '장인판'은 중국 자본시장의 독특한 현상으로 개미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한때 중국 A주 최대 의류업체였던 로컬 패션 브랜드 하이란즈자(海瀾之家), 중국 최대 민영 조선업체인 양쯔강선업(揚子江船業), 그리고 중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후공정 전문업체인 제이셋(JCET, 長電科技)…. 모두 장인시에서 탄생한 상장 기업이다.

중국 최대 민영 조선업체인 양쯔강선업(揚子江船業) ⓒ장인시 선전부

중국 최대 민영 조선업체인 양쯔강선업(揚子江船業) ⓒ장인시 선전부

(좌) 1998년 장쑤성 싼마오(三毛)그룹(하이란즈자(海瀾之家)의 전신) 직원들이 의류 생산 현장에서 셔츠를 꿰매고 있다. (우) 중국 로컬 패션 브랜드 하이란즈자(海瀾之家). ⓒ하이란그룹

(좌) 1998년 장쑤성 싼마오(三毛)그룹(하이란즈자(海瀾之家)의 전신) 직원들이 의류 생산 현장에서 셔츠를 꿰매고 있다. (우) 중국 로컬 패션 브랜드 하이란즈자(海瀾之家). ⓒ하이란그룹

또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업의 자금줄을 연장하고 위기대응력을 기르기 위해 장인시위원회와 시정부는 기업과 금융, 재정 부문의 심층적인 협력을 적극 추진했고, 다양한 형태로 금융 부문의 더 많은 지원을 받아 정부-은행-기업의 삼각정립 체제를 형성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97년부터 이어져 온 상장 붐은 여전히 뜨겁다. 지방 정부의 인도와 강력한 자금 지원정책은 물론, 기업의 후기 발전 과정에서 정부는 경쟁 환경, 품질 표준 개선 등 시장 최적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은 주식 자금 조달을 통해 장비 도입, 인재 발굴, 공급망 최적화 및 확장 및 기술 혁신을 가속하며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장인시엔 몇 개의 기업이 주식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차이나랩 김은수 에디터

차이나랩

차이나랩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