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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임무도 못한다" 헬기조종사 해고 가능?…대법 "안 된다" 왜

중앙일보

입력

“가장 단순하고 기초적인 임무도 할 수 없어 훈련을 할 수 없고, 상당하고 지속적인 관리가 수반되지 않으면 사고를 낼 것이다” 헬기조종사 A씨가 지난 2017년 11월 호주의 훈련교관으로부터 받은 평가다.

비슷한 시기 A씨의 회사는 헬기를 새로 도입했지만, 항공기 비행성능 등에 대한 검사에서 탈락했다. 같은 해 12월, A씨의 회사는 신규 도입 헬기의 검사 탈락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A씨를 포함한 헬기사업팀 전체의 사직원을 제출받았고, 이후 A씨를 해고했다.  

당초 “계약기간 만료 시까지 별도 합의가 없으면 기간만료일에 자동 연장한다”는 조항으로 근로계약을 했던 촉탁직 근로자인 A씨는 사직원 제출 뒤 대표이사에게 “제게 한번만 기회를 주시기를 간청한다”는 메일을 보냈다.  

A씨는 결국 ‘자동 연장 계약’ 조항을 근거로 해고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회사는 ‘역량 미달’을 문제 삼았다.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었을까.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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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헬기조종사로 근무했던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중 원고 패소로 판결한 부분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일 밝혔다.

근로계약서의 ‘자동 연장’ 조항에 대해서는 상급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갈렸다. 2심은 자동 연장은 ‘항공종사자 자격을 유지함으로써 근로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적용되는 규정’이라고 해석했다. 그렇지 않다면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빚어져도 ‘무제한’으로 계약이 자동 갱신되는 결론에 이르는데, 이는 계약 체결 당시의 당사자 의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심도 A씨에 대한 훈련 교관의 평가를 근거로 계약 갱신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봤다. 다만 1심은 신규 도입 헬기 검사 탈락 이후 회사의 지시에 못 이겨 사직서를 제출받은 사정이 있기 때문에 A씨의 사직원 제출이 진정한 A씨의 의사(효과 의사)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점도 짚었다.

대법원은 “문언의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문언대로 내용을 인정해야 한다”며 1‧2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근로계약서에는) 항공종사자 자격을 유지함으로써 근로계약상 정해진 근로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만 조항이 적용된다는 기재는 없다”며 “근로계약서에 적혀 있지 않은 내용을 추가하는 것은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근로계약서 조항을 문언대로 해석하더라도 근로계약 체결 당시의 당사자 의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별론으로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라고 인정되는 한 정당하게 해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대법원은 결국 “원심이 근로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에는 계약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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