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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 대신 가상해변서 찰칵…요즘 4050 임원들이 빠져든 곳

중앙일보

입력

“이 화면을 좀 확대해서 볼 수는 없나?” “동작 이모티콘은 다 외워서 쓰는 거야?”
국내 대기업 임원인 A씨는 짬이 날 때마다 팀원들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있다. 메타버스를 익히기 위해서다. 그는 “앞으로 사내 행사를 메타버스로 할 수 있다고 하더라. 나와는 상관없는 얘긴 줄 알았는데 배울 게 많다”고 말했다.

SK지오센트릭이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에서 진행한 임원 워크숍 모습. [사진 SK지오센트릭]

SK지오센트릭이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에서 진행한 임원 워크숍 모습. [사진 SK지오센트릭]

메타버스(Metaverse)가 직장생활 속으로 확산하고 있다. 그동안 정보기술(IT) 업종이나 ‘일부 젊은 직원들’에만 국한되던 이용 대상이 임직원 전반으로 넓어지는 분위기다. 메타버스는 초월·가상이란 ‘메타(Meta)’와 우주·세계란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온라인상에서 아바타를 이용해 현실세계와 같은 활동을 하는 가상현실을 뜻한다.

“예전 싸이월드 생각나네요” 

1일 업계에 따르면 폐플라스틱 재활용기업인 SK지오센트릭은 최근 임원 워크숍을 ‘게더타운’이란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진행했다. 예년 같으면 경기도 용인의 SK아카데미 연수원에 모여 회의하고 저녁에 식사하며 폭탄주 건배를 외친 뒤 돌아가는 일정이었지만, 올해는 사장을 비롯한 임원 전체가 마치 게임 같은 가상공간에 모였다. 이곳엔 회의장은 물론 모닥불이 타는 캠핑장, 파도가 넘실대는 해변까지 있어 소소한 재미를 더했다.

SK지오센트릭 임원들이 메타버스 워크숍을 마친 뒤 해변가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SK지오센트릭]

SK지오센트릭 임원들이 메타버스 워크숍을 마친 뒤 해변가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SK지오센트릭]

회의라면 수없이 해 본 20년차 이상의 임원들이지만 처음 접해보는 세상이 쉽지만은 않았다. 발표자가 단상에 올라가는 길을 모르거나 발표가 끝났는데도 내려오는 방법을 몰라 진행이 늦어지는가 하면, 점심시간엔 한꺼번에 아바타들이 나가는 문으로 몰려 ‘퇴장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진행 직원이 하나하나 실시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하지만 해변에서 단체사진까지 찍고 행사가 끝나자 ‘신기하고 즐거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워크숍에 참가한 이종혁 그린비즈 추진그룹 담당은 “신문물을 이용해보니 신기하고 예전 싸이월드 추억도 생각나 재밌었다”며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회의나 행사는 화상회의보다 메타버스가 효과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고 경영진 회의까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달 22일 메타버스를 활용한 그룹 최고경영진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 롯데지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달 22일 메타버스를 활용한 그룹 최고경영진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 롯데지주]

롯데그룹은 지난달 신동빈 회장이 제안해 최고 경영진 주간 회의를 메타버스에서 진행했다. 신 회장과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 김상현 유통군 총괄대표 등 12명의 임원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에 모였다.
녹색 카디건에 청바지를 입은 아바타로 참석한 신 회장은 50·60대 임원들이 꾸민 아바타를 보고 “젊어 보인다”며 분위기를 돋웠다. 대다수의 아바타는 가상공간에서도 검정·남색 계열의 정장 분위기 차림이 많았지만, 캐주얼한 니트나 꽃무늬 조끼를 입은 모습도 눈에 띄었다. 메타버스 사용 방법에 익숙지 않은 임원들은 앉지 못하고 계속 돌아다니거나 회장 아바타를 차단해 버리는 등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그룹은 메타버스 '제페토'에 문을 연 CU제페토한강점에서 팀 단위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BGF리테일]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그룹은 메타버스 '제페토'에 문을 연 CU제페토한강점에서 팀 단위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BGF리테일]

편의점 CU도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에 만든 한강공원 편의점을 팀 단위 워크숍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20여 개팀이 모임을 가졌다. 메타버스 교육기관 ‘소셜프로그’의 김은숙 매니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업과 공공기관의 메타버스 교육 신청이 부쩍 늘었다”며 “주로 체험이나 입문 과정을 많이 원하는데 업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다”고 말했다.

MWC에서 ‘대세’된 메타버스

기업들이 사내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이유는 메타버스의 영향력과 잠재력 때문이다. 미래 성장 먹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 기술인만큼 조직 안에서 친숙한 문화와 역량을 갖추려는 것이다. 컨설팅기업 PwC에 따르면 글로벌 메타버스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180조원에 달했고 2030년이면 약 1800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실제 메타버스는 오는 3일(현지시간)까지 열리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2’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단어다. 회사 이름을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바꾼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자사의 메타버스 플랫폼인 ‘호라이즌’을 시연하고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슈퍼컴퓨터를 대중에게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전형적 과도기…교육·체험 시도 증가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메타버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올라온 모습. [블라인드 캡처]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메타버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올라온 모습. [블라인드 캡처]

다만 조직 내 메타버스 활용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국내 대기업의 IT 계열사 과장은 “임원 지시로 메타버스로 회의를 시도해 봤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드려야 한다. 나중엔 가르쳐 주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다 짜증이 나더라. 결국 ‘그냥 하지 마’라고 해서 없던 일이 됐다”고 전했다.
또 다른 유통기업의 팀장(상무)도 “40대 이상은 줌이나 웹엑스(화상회의 솔루션)도 익숙하지 않은데 빨리빨리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굳이 낯선 수단을 써야하나 싶다”고 말했다. 삼성과 LG·신세계·CJ 등 주요 그룹과 계열사들도 신입사원 채용이나 연수 등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에는 메타버스를 도입했지만, 임직원 전체가 참여하는 메타버스 활동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메타버스는 아직 기술적으로 과도기라서 조직문화에 일반화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전제한 뒤 “세계적인 기업들의 인력확보와 투자규모, 젊은 세대의 수요로 볼 때 메타버스로의 방향은 맞는 만큼 조직 내에서도 큰 흐름을 따라가는 교육과 활용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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