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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고르는 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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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아직은 꽃꽂이라도 해야 그나마 꽃을 완상할 수 있는데, 남쪽에는 이미 매화가 피었다고 하니, 다가올 새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내 꽃 고르는 기준이 바뀌었다. 은은함에서 화사함으로.

노랑·빨강 튤립을 화병 가득 꽂아 불단에 올렸다. 꽃 덕분에 어두웠던 법당이 환해졌다. 어느 분께 방에 꽃을 놓으시라 권했더니 ‘그냥 꽃 다이 늙어가겠소’ 했다던가. 이렇게 아름다운 꽃 보며 살면 더 곱게 늙어갈 텐데 말이다.

세월가면 사람 보는 눈도 바뀌나
변치 않는 기준은 ‘선한 사람’
눈 앞의 대선, 후회 없는 선택을

동안거(겨울수행)도 끝났겠다, 한적한 절에서야 이렇듯 꽃 타령이나 하고, 붓글씨나 쓰며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산문 밖에서는 곧 있을 대선 때문에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더러 들린다. 흔쾌히 나라를 맡길 만한 사람은 만나기 어려운가 보다. 문득 이참에 사람 고르는 일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하여 부족하지만 몇 자 적어본다.

꽃 고르는 기준이 달라진 것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 보는 눈도 달라지는 것 같다. 여기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의 서성(書聖)이라 불리는 서예가 왕희지의 결혼 이야기다. 한 귀족 가문에서 형제 많은 왕씨 집안에 사윗감을 고르러 사람을 보냈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잘 보이려 신경 쓰느라 바쁜데, 들은 척도 않고 배를 드러낸 채 그러거나 말거나 평상에 드러누워 있던 사람이 바로 왕희지다. 그런데 이야기를 전해들은 귀족은 뜻밖에도 그의 호방함에 반해 왕희지를 사윗감으로 낙점했다고 한다. ‘세설신어’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이것을 읽으며 대체 장인 되는 사람의 사윗감 고르는 기준이 무엇인가 싶었다. 한낱 젊은이의 호기로 볼 수도 있는 일을 가지고 어떻게 딸을 시집보낼 생각까지 했을까. 자유분방함 하나로 위대한 서예가가 될 인재를 미리 알아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사윗감, 며느릿감 고르는 부모에게는 지혜의 눈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살면서 우리는 면접관도 되고, 때로는 면접생도 된다. 나 또한 두루 경험해 봤고, 출가해서도 면접을 여러 번 봤다. 아주 오래전, 잊지 못할 면접도 있다. 사미니계(여성 출가자의 첫 수계)를 받기 위해 김천 직지사에 갔는데, 나이 지긋하신 면접관 스님이 내게 “요래 생기가 오데 중노릇 하긋나. 고마 집에 가거라” 하셨다. 어찌나 당혹스럽고 분하던지, 긴 머리 자르던 첫 삭발 때도 안 나던 눈물이 났다. ‘머리 깎고 여기까지 얼마나 고생하고 왔는데, 가라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내게 스님은 “분해서 우는 걸 보니 되았다. 앞으로 중노릇 잘 하그래이” 하셨다. 전에는 그 스님이 누군지 알게 되면 그때 왜 그러셨느냐고 따져 물을 판이었는데, 지금은 만약 살아 계시다면 감사의 절을 올리고 싶다. ‘덕분에 아직 중노릇 합니다 스님’ 하면서.

그건 그렇고, 가까운 이를 고른다 치면 역시 ‘벗’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향 싼 종이에 향내 나고, 생선 묶은 끈에서 비린내 나듯’ 가까운 이는 반드시 깊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위산 선사는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요, 나를 완성시켜 준 이는 벗’이라고 했다. 그만큼 우정은 우리 삶을 든든하게 지탱해준다.

그럼 누가 좋은 벗이냐. 적어도 친구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기꺼이 박수쳐주고 기뻐해주는 이가 좋은 친구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불행한 일이 닥친 사람은 곧잘 도와주고 위로해주는 반면, 누군가 성공해서 돈을 잘 번다고 하거나 성공가도를 달리며 좋은 일이 생기면 거침없이 흠결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인터넷 댓글만 보아도 그렇다. 욕먹는 사람이 내 가족이라도 저리 말할 수 있을까 싶다. 무슨 독 안에 든 게처럼, 올라가는 게의 다리를 물고 늘어져 결국 한 마리도 못 올라가게 만드는 습성이 보인다.

새 가족을 맞는 일이나 좋은 벗을 두는 일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하지만 내 가까운 이가 인간적으로 ‘선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준은 늘 있다. 그럼 눈앞에 둔 대선은 어떨까? 나라의 미래를 맡길 사람을 잘 뽑아야 할 텐데… 내가 너무 추상적일지는 몰라도 지혜롭고 자비로운 리더였으면 좋겠고, 유능하면서도 겸양을 갖춘 이면 더 좋겠다. 또 과거가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며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다.

장자는 ‘민심을 모으기는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랑하면 가까워지고, 이익을 주면 모여들며, 칭찬하면 부지런히 일하고, 비위를 거스르면 흩어진다’고 방법까지 일러주었다. 이처럼 지혜롭게 민심을 모을 후보가 과연 있으려나? 모쪼록 우리의 한 표가 후회 없는 선택이길 바란다.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