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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첫 민주 정부는 김대중 정부”라는 대통령의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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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서울 서대문구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서 열린 제103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서울 서대문구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서 열린 제103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1절 기념사, 그 이전 정부 정통성 부정  

대선 앞두고 정파성 드러내며 갈라치기

대통령선거를 채 10일도 남겨두지 않은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마지막 주요 연설이 될 3·1절 기념사를 했다. 물러나는 대통령으로서 혜안이 담기길 기대했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임시정부 수립을 두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직설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뿐,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임시정부로 본 시각은 여전했다. 건국 논란으로 깊게 파인 보수·진보 갈등을 다시 도드라지게 하는 발언이었다.

더 논란이 되는 건 “첫 민주 정부였던 김대중 정부”란 대목이다. 김대중 정부 이전에 있었던 정부의 민주성을 부인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대선을 앞두고 갈라치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발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직선제를 거쳐 출범한 노태우·김영삼 정부는 민주 정부가 아니라고 본 건가.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문 대통령이 “김 대통령이 40여 년의 민주화 여정을 거쳐 도달한 곳은 군사독재의 끝, 문민 정부(김영삼 정부 별칭)였다”며 “문민 정부 이후 우리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애도했는데 허언이었나.

의아한 건 문 대통령이 그간 ‘민주 정부’란 표현을 자주 쓰지 않아 왔다는 점이다. 요즘 빈번하게 사용하는 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다. 이 후보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하며 “4기 민주 정부를 열겠다”고 말하고 있다. 근래 “IMF(위기)를 김대중 대통령이 극복했는데, 김영삼 같았으면 극복했겠느냐”고 할 정도로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선 선을 그어 왔다.

문 대통령이 이를 알고도 “첫 민주 정부였던 김대중 정부”라고 했다면 크게 잘못이다. 모르고 썼다면 스스로 선거 중립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에선 상상도 못할 논란을 자초해 왔다. 그제도 각각 다른 사연이었다곤 하나 대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 이 후보가 모두 대구·경북을 방문했는데 전례 없는 일이다. 이래선 곤란하다.

문 대통령이 3·1운동을 ‘패권적 국제질서를 거부한 운동’으로 규정하며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건 작위적 논리 비약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란 버젓한 현실을 앞에 두고도 “대결과 적대가 아니라 대화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거나 “우리의 평화가 취약한 게 대화가 끊겼기 때문”이란 주장은 어찌 이해해야 하나.

대통령은 정파의 수장이지만 동시에 국가의 지도자다. 문 대통령은 후자의 역할을 할 때도 됐다. 선거 기간만이라도 선량한 관리자로 돌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