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 사격계가 박민하(15·금정중 3학년)를 주목하고 있다. 2020년 충무기 전국중·고등학생 사격 대회 10m 공기소총에서 대회 신기록인 621.4점을 쏴 깜짝 우승했다. 작년 충무기 은메달(623.4점)도 차지했다. 대한사격연맹 관계자는 “10m 공기소총 성인 국가대표가 626~629점 정도를 쏘는데, 중학생이 620점대를 쏘는 건 재능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더 놀라운 건 ‘명사수’ 박민하가 ‘국민 아역배우’ 출신이라는 점이다. 박민하는 네 살이던 2010년 예능프로그램 ‘붕어빵’에서 귀엽게 “핫팅”을 외쳐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3년 영화 ‘감기’에서 수애의 딸, 2017년 영화 ‘공조’에서 유해진의 딸로 출연했다.
박민하 아빠는 박찬민(48) 전 SBS 아나운서다. 2002년부터 오랫동안 로또 추첨 방송을 맡아 ‘행운을 드리는 남자’라 불렸다. 박찬민-민하 부녀를 최근 강남사격장에서 만났다. 분홍색으로 커스텀한 소총을 든 박민하가 사대에서 10.9점을 쏘자, 박찬민 아나운서는 ‘아빠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봤다.
- 어떻게 총을 잡게 된건가.
박찬민(이하 찬민): “제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 사격 캐스터를 맡았는데, 당시 해설위원이 ‘아이들 집중력에 좋고 연기와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며 사격을 권유했어요. 이듬해 4월에 서울 목동사격장에 초등학교 6학년이던 민하를 데려갔죠. 4남매 중 첫째와 둘째가 테니스를 해서 민하는 운동을 안 시키려 했거든요. 남상현 코치를 만나 딱 보름만 연습하고 문체부장관기 전국학생사격대회에 나갔는데 대회 신기록을 쏘며 2위를 했어요.”
박민하(이하 민하): “처음에는 사격을 잘 몰랐어요. ‘영화에서 보던 스나이퍼인가’, ‘날아오는 표적을 쏘는 클레이 사격인가’라고 생각했어요. 누워서 쏘는 줄 알았는데, 10m 공기소총은 서서 쏴(입사)였어요. 신기록도 세우고 우승하니 승부욕도 생기고 점점 빠져 들었어요.”
- 10m 공기소총은 샤프심 굵기인 0.5㎜ 표적을 조준하는 종목이다. 대회에서 620점대를 쐈는데.
민하: “본선에서 모두 60발을 쏘거든요. 60발 전부를 만점(10.9점)에 꽂으면 654점이에요. 620점을 넘겼다는 건 평균 10.3점 이상을 쏜 거에요.”
찬민: “민하가 중1이던 2020년 충무기에서 대회 신기록(621.4점)을 쐈어요. 코로나19로 오랜 만에 열린 대회라서 중등부 선수들이 거의 다 출전했거든요. 중3까지 다 포함해 민하 혼자 620점을 넘겼어요.”
- 권총이 아닌 소총을 택한 이유는.
찬민: “제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2년 런던올림픽 때도 사격 캐스터를 맡았어요. 사격은 남자들의 로망이잖아요. 김장미 선수가 25m 권총을 쏘는데 멋있더라고요. 근데 권총은 상체가 좋아야 할 것 같았어요. 민하가 소총을 더 잘 쏘기도 했고요.”
민하: “권총은 총만 갖고 다니면 되는데, 소총은 사격복 등 챙겨야 할 게 많아요. 그래도 소총으로 조준하고 잘 지켜서 정중앙에 맞으면 정말 재미있어요. 최대한 무념무상으로 과감하게 격발해요. 며칠 전에 촬영차 진종오 선수를 만나 권총을 쏴봤거든요. 처음에 잘 안 맞았는데, 진종오 삼촌이 좀 더 아래쪽을 조준하라고 조언해줬는데 10점을 쐈어요.”
- 진종오는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4개를 딴 ‘사격 황제’인데.
민하: “사격 레전드를 만나 총을 쏘니 신기하고 재미 있었어요. 진종오 선수를 연기자에 비유 하면요? 음... 이병헌 선배님 급이죠. 어떤 배역을 맡아도 그 역할을 잘 소화해서 멋있어요. 다양한 연기를 다른 느낌으로 하는데,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 아역 배우 시절에 인기는 어느 정도였나.
찬민: “2010년 가을쯤 예능 ‘붕어빵’에 출연했고 이듬해 ‘불굴의 며느리’를 통해 드라마에 데뷔했어요. 영화 ‘감기’를 통해 얼굴이 더 알려졌죠. 당시 불고기 소스, 에어컨, 비타민, 표백제, 출판사 광고를 찍었어요. 전기안전공사 홍보대사도 맡고, 프로야구 LG 시구도 했었죠.”
민하: “제가 6살 남동생이 있거든요. 그 땐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잘했더라고요. 참, 코로나19가 터지고 영화 ‘감기’가 역주행해서 외국에서도 넷플릭스 최상위권에 올랐어요. 학교 친구들이 보여줘 뿌듯하면서도, 실제로 영화처럼 사람들이 바이러스 때문에 고통을 겪는 일이 발생해 안타까웠어요.”
-유해진 딸로 나왔던 영화 ‘공조(781만 관객 동원)’의 후속작에 출연한다고.
민하: “작년에 ‘공조2:인터내셔날’ 촬영을 마쳤고 올해 개봉 예정이에요. 제가 첫 사격 대회를 치른 뒤 유해진 삼촌한테 먼저 축하 문자가 왔어요. 작년에도 촬영장에서 삼촌이 ‘다음 대회에 더 잘해’라며 기를 팍팍 주셨어요. 현빈 삼촌도 잘하라고 제 손을 잡아줬어요. 참, 아빠가 영화 촬영장에 커피차를 보내줘 큰 힘이 됐어요(웃음).”
-사격과 연기와 병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민하: “작년에 지방에서 촬영하고 다음날 대회에 나간 적이 있어요.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작년 5개 대회 성적은 2, 5, 6, 7, 76위)”
찬민: “민하를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연예인이 사격을 해? 쟤한테는 지지 말아야지’ 같은 시선도 있어요. 민하는 스케줄이 없으면 거의 매일 사격장에 나와 밤까지 훈련해요. 그 와중에 본인이 유튜브를 편집해 영상도 올려요. 부지런해요.”
- 얼마 전에 ‘경기도 회장배’에서 우승했다. 예능 촬영으로 카메라가 많았는데도 집중력을 발휘했는데.
찬민: “마침 우승하는 걸 방송에 담았어요. 민하가 카메라 체질인가.”
민하: “어릴적부터 연기를 해서 그런지 카메라가 부담되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사실 아빠가 칭찬에 인색한 편이거든요. 아빠한테 칭찬을 들으면 정말 잘하는 거에요. 제가 우승하면 정말 신나하세요.”
- 사격과 연기를 계속 병행할 계획인가.
민하: “네. 사격에서 목표는 내년 창원에서 예정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출전이에요. 메이저 대회 등을 통해 상위 3위 안에 들어야 하는데, 만 20세까지 출전이라 쉽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려고요. 외국에서 경찰, 변호사가 올림픽에 나간 적은 있지만, 배우가 출전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배우 겸 사격 선수 최초로 2028년 LA올림픽에 나가는 게 꿈이에요.”
찬민: 영화 ‘감기’ 개봉 후 뉴욕타임스에서 ‘사라 베르나르(유명 여배우)를 연상시킨다. 15년 후 박민하가 태평양 양쪽 나라를 점령할 것 같다’고 극찬했거든요. 민하야, 아직 15년 안 지났지?(웃음). 제가 SBS에서 20년을 근무하다가 작년에 프리 선언을 했어요. 만약에 민하가 올림픽에 출전하고 제가 중계한다면 영화 같지 않을까요. 제가 역대 최고 407억원이 당첨된 로또방송도 진행해봤어요. ‘행운을 드리는 남자’의 행운이 딸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