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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젤 좋아, 내 애인·하늘·전부"…이런 예쁜 손녀의 소원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입력

중앙일보 독자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여러분의 사연을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인연에 담긴 사연을 보내 주세요.
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에 얽힌 어떠한 사연도 좋습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사연 보낼 곳: https://bbs.joongang.co.kr/lifepicture
              photostory@joongang.co.kr

▶13차 마감: 3월 31일

손녀는 할머니만 이쁘게 찍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만 이쁘게 찍어달라고 요청했고요. 그 할머니에 그 손녀인 겁니다.

손녀는 할머니만 이쁘게 찍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만 이쁘게 찍어달라고 요청했고요. 그 할머니에 그 손녀인 겁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외동딸인 제게는
할머니가 가장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저는 아빠 직업 때문에
태어난 이후부터 줄곧 외국을 돌아다니며 살았습니다.
방학 때마다 한국에 와서 할머니 집에서 지냈죠.
형제자매 없는 제게
할머니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어 주셨죠.

유치원을 다닐 나이에 저는
할머니랑 고스톱을 치고,
겨울엔 뜨개질했습니다.

할머니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가던 탓에
이모할머니들이랑도 그렇게 친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리 따라다니며 살갑게 애교를 부리니
할머니들이 ‘여시’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외국으로 돌아가서는
할머니에게 밤마다 국제전화를 걸어댔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일 때부터 그랬습니다.
할머니의 일과를 듣고
재잘재잘 몇분씩 떠드는 게 너무나 좋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
아빠가 한국으로 발령받아서
우리 가족이 할머니랑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제 사랑 할머니랑 맨날 같이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행복했죠.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누가 물어보면
제 대답은 항상 “할머니가 제일 좋아”였으니까요.

할머니는 저의 세상이자 전부였습니다.

제가 스위스로 대학을 가면서부터 할머니랑 떨어졌습니다.
더구나 첫 직장을 중국에서 자리 잡아
함께 살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할머니는 제 사랑이었습니다.

2년 정도 중국에서 지낸 후,
코로나로 인해 중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얼떨결에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할머니에게 대장암이 발병한 겁니다.
저의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만 같았습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너지면 안 되겠다며
마음을 다시 잡았습니다.
치료를 받기 싫어하시는 할머니를 어르고 달래서
치료를 받게끔 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할머니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입니다.
다만 예방 차원에서 8번의 항암 치료와
장루복원술만 남았습니다.

임시 장루를 달고 계신 탓에 거동도 불편하시고
도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시기에
제가 할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드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너그러운 인상이 트레이드마크였던 우리 할머니가
10kg 넘게 빠지고,
새치 염색을 못 하기에 흰머리가 잔뜩 자란 당신의 모습을 보시면서
맨날 슬퍼하시는 모습을 보는 제 마음이 문드러집니다.

손녀가 할머니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습니다. 손녀는 할머니를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합니다.

손녀가 할머니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습니다. 손녀는 할머니를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내 눈엔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할머니라서
“할머니, 그래도 곱다. 아무도 암 환자라고 안 믿겠다.
어쩜 이렇게 고와. 배우 같다”라는 말을 해드립니다.
조금이나마 기운이 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나의 전부, 나의 세상, 나의 짝꿍, 나의 단짝, 나의 애인, 나의 하늘,
여전히 너무 곱고 너무 예쁜 나의 할머니,
외할머니가 아닌 ‘나의 할머니, 우리 할머니’.
어떤 모습이어도 내 눈에는 아름다우니까 오래오래 건강하게,
앞으로 남은 날들 나랑 웃으면서 행복하게 보내요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할머니의 손녀 주윤설 올림


아무리 암 환자라고 해도 손녀 눈엔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할머니입니다. 그래서 손녀는 할머니를 “나의 전부, 나의 세상, 나의 짝꿍, 나의 단짝, 나의 애인, 나의 하늘”이라 말합니다.

아무리 암 환자라고 해도 손녀 눈엔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할머니입니다. 그래서 손녀는 할머니를 “나의 전부, 나의 세상, 나의 짝꿍, 나의 단짝, 나의 애인, 나의 하늘”이라 말합니다.

사연 선정 소식을 전하며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손녀와 의논했습니다.

손녀의 요구 사항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할머니만 예쁘게 찍어주세요.”

사진을 찍으려 만난 날
할머니의 표정이 데면데면했습니다.
웬일인가 싶었습니다.
손녀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할머니 표정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안 드리고 그냥 저랑 데이트하자며 모시고 나왔어요.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계셔요. 워낙 사진 안 찍으려 하시는 터라….”
손녀와 할머니의 데이트, 손녀는 팔짱 낀 할머니와 높이를 맞추려 자세를 숙인 채 걷습니다. 걷는 데도 할머니를 위한 마음이 전해져 옵니다.

손녀와 할머니의 데이트, 손녀는 팔짱 낀 할머니와 높이를 맞추려 자세를 숙인 채 걷습니다. 걷는 데도 할머니를 위한 마음이 전해져 옵니다.

할머니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손녀가 보낸 사연이 너무 기특해서요. 더구나 할머니 사진을 이쁘게 찍어달라고 특별히 부탁하더라고요.”
“제가 아침 10시면 꼭 중앙일보를 보긴 해요. 하지만 제가 워낙 사진 찍는 걸 싫어해서….”
할머니랑 노는 손녀이기에 할머니의 사투리가 손녀의 말투에 배어있습니다. 이는 오래도록 할머니와 손녀가 대화를 나누며 살아온 결과입니다.

할머니랑 노는 손녀이기에 할머니의 사투리가 손녀의 말투에 배어있습니다. 이는 오래도록 할머니와 손녀가 대화를 나누며 살아온 결과입니다.

“그런데 할머니와 손녀가 똑같은 사투리를 쓰시네요. 손녀는 외국과 서울에서만 살았을 텐데도….”
“어릴 때부터 저랑 하도 얘기를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할머니에게 어떤 손녀입니까?”
“말도 못하게 효성스러워요. 오늘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해서 나왔어요. 사실 제가 지금 저 항암 치료 중이에요. 근데 얘가 제 수발을 다 듭니다. 사실 제가 항암을 안 받겠다고 했거든요. 팔십이 넘었는데 항암 치료한들 뭔 소용이 있겠냐 싶었죠. 그런데 얘가 울고불고하며 저를 설득시켰어요. 수술하면 괜찮아질 텐데 왜 치료 안 하려고 하느냐면서요. 결국 그래서 수술했는데 병원에서도 얘가 처음에서 끝까지 다 닦아주고, 주사실에 있으면 자가 쫓아와서 다 해주고 했어요. 여하튼 조그마한 일까지 다 신경을 쓰며 저를 따라다니죠. 얘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어요. 난 아무것도 얘한테 해준 게 없는데….”
“코로나 시국이 할머니를 살리셨네요. 손녀가 중국으로 못 돌아간 바람에….”

그때 듣고 있던 손녀가 답했습니다.

“근데 아마 외국에 계속 있었어도 할머니 아픈 거 알았으면 그만두고 왔을 것 같아요.”

이어 할머니가 답했습니다.

“내가 아니라도 옆에 사람이나 친구들이 어려워도 그냥 못 있는 얘예요. 뭐든 도와줘야 직성이 풀리는 얘죠. 말도 못하게 속이 깊어요. 사실 얘가 할머니예요.”
사진 촬영을 마치자마자 손녀가 할머니 마스크부터 챙깁니다. 할머니는 이런 손녀를 두고 ″얘가 할머니예요″라고 말합니다.

사진 촬영을 마치자마자 손녀가 할머니 마스크부터 챙깁니다. 할머니는 이런 손녀를 두고 ″얘가 할머니예요″라고 말합니다.

“손녀가 할머니면 할머니는 소녀 감성을 가지신 거 아닌가요?”

손녀가 웃으며 답했습니다

“그렇죠. 하하. 할머니는 다분히 소녀 감성을 가지셨어요.”
“그러면 할머니 같은 손녀와 소녀 같은 할머니로 사진 찍어드릴까요?”
“많이 찍지 말고 하나만 찍어 주세요. 우리 손녀가 이쁘게 나오게만요.”

드디어 이렇게 할머니의 촬영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손녀만 이쁘게 찍어 달라는 조건으로요.

손녀의 외투 속에 할머니를 품었습니다. 오래도록 할머니가 손녀를 품어왔던 것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손녀의 외투 속에 할머니를 품었습니다. 오래도록 할머니가 손녀를 품어왔던 것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손녀만 이쁘게 나오게 해달라는 할머니,
할머니만 이쁘게 나오게 해달라는 손녀,
그 할머니에 그 손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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