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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새 러 전투기 6대 격추…우크라 지키는 '키예프 유령' 실체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웅은 난세가 부른다. 러시아군의 군홧발에 영토를 유린당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에도 영웅이 필요했다. ‘키예프의 유령’(ghost of kyiv)은 그렇게 탄생했다.

실체조차 명확치 않은 미그-29기 한 대가 러시아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인의 사기를 북돋고 있다. 개전 첫날인 24일(현지시간) 한 미그-29기 조종사가 6대의 러시아 군용 항공기를 격추했다는 내용이 온라인에 퍼지면서다. 키예프 상공에서 찍혔다는 미그기 영상과 함께 그에게 ‘키예프의 유령’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조국을 지키고 싶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키예프의 유령’은 곧 수호령이다. 이런 염원을 담았는지 영웅담은 더 불어났다. 총 10대의 러시아 군용 항공기를 격추시켰다는 내용으로다.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키예프의 유령’으로 알려진 미그-29기 조종사가 러시아 군용 항공기 총 10대를 격추했다는 내용의 트윗 글을 별다른 언급 없이 리트윗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상공에서 포착됐다는 미그-29 전투기의 모습. [트위터 갈무리]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상공에서 포착됐다는 미그-29 전투기의 모습. [트위터 갈무리]

정말 21세기 ‘에이스’(공중전에서 5대 이상의 적기를 격추시킨 조종사)의 출현일까. 아직 ‘키예프의 유령’의 실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실 소문에 기름을 부은 건 전직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였다. 그는 26일 자신의 트위터에 한 우크라이나 조종사의 사진을 올리며 “사진 속 미그-29기 조종사는 ‘키예프의 유령’과 같은 인물”이라며 “그는 러시아 조종사를 상대로 6번의 승리를 거뒀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적에게는 공포를, 우크라이나인에게는 자부심을 유발한다”며 “이런 강력한 수비수와 함께 우크라이나는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던 각국의 누리꾼들은 “우크라이나 전직 대통령이 ‘키예프의 유령’의 존재를 확인했다”며 기뻐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자신의 트위터에 "사진 속 미그-29기 조종사는 '키예프의 유령'과 같은 사람"이라며 "그는 러시아 군용 항공기 6대를 격추시켰다"고 밝혔다. [트위터]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자신의 트위터에 "사진 속 미그-29기 조종사는 '키예프의 유령'과 같은 사람"이라며 "그는 러시아 군용 항공기 6대를 격추시켰다"고 밝혔다. [트위터]

하지만 해당 조종사의 모습은 2019년 4월 이미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공개한 사진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그렇다고 이게 ‘키예프의 유령’이 완전한 허구라는 증거는 아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25일 “전역한 기장부터 장성까지, 수십 명의 숙련된 파일럿이 공군으로 복귀하고 있다”며 “키예프인들이 자주 볼 수 있는 미그-29기 공중 ‘어벤저’는 그들 중 하나일 것”이라고 밝혔다.

25일은 키예프의 유령에 대한 소문이 막 퍼지기 시작한 때였다. 이후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키예프의 유령’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관련 글만 리트윗하고 있다. 군 차원에서 계속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리면서도 ‘키예프의 유령’이 실존 인물인지, 한 명인지 등 여러 의문점은 계속 물음표로 남겨두는 식이다.

지난 2019년 4월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프랑스산 헬멧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며 게재한 트윗.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키예프의 유령'이라고 소개한 인물 사진과 동일하다.[트위터]

지난 2019년 4월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프랑스산 헬멧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며 게재한 트윗.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키예프의 유령'이라고 소개한 인물 사진과 동일하다.[트위터]

군사 전문가들이 이를 일종의 심리전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류성엽 21세기 군사연구소 정보분석관 및 전문연구위원은 “수많은 조종사들이 영공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한 인물로 표현한 인지전의 일종이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전부터 국민에게 정보를 앞서 전달하며 상황을 자세히 알리고, ‘키예프의 유령’을 포함해 많은 영웅담을 만들어 내면서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면서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 부연구위원도 “전투기 도장이 같기 때문에 기체만 보고 누군지 식별할 수 없다”며 “적군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공군에서 미그-29는 주력 기종 중 하나”라며 “지속적으로 포착되는 미그-29기의 조종사들을 하나의 인물로 상징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전술을 병행하며 우크라이나 공군은 끈질기게 버텨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군은 26일까지 러시아 군용 항공기 46대, 헬리콥터 26대를 격추시켰다.

류 위원은 “우크라이나 공군과 방공망이 잘 버텨주고 있다”며 “러시아 공군 쪽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양 위원은 “우크라이나의 선전일 수도 있고 러시아 공군력의 실패일 수도 있다”며 “생각 외로 러시아의 공지합동(지상군과 공군이 합동으로 적을 공격하는 방식)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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