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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vs 핵 위협, 미·러 또 하나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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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친러시아 국가인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에 병력 파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에 대응해 벨라루스 주재 미국 대사관을 임시 폐쇄한다고 28일 밝혔다. 미국·유럽연합(EU) 등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직접 병력을 파견하진 않지만, 강력한 대러 제재와 함께 전폭적인 무기·자금 지원에 나서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전 조짐을 보인다.

미국의 고위 정보 관계자는 이날 AP통신에 벨라루스가 조만간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파병해 러시아 편에서 함께 싸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벨라루스는 지난달 10일부터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합동훈련을 하는 등 러시아의 침공을 지원해 왔으나 직접 참전은 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벨라루스의 파병 결정이 러시아·우크라이나 협상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닷새째인 이날 양측 대표가 우크라이나 북부 국경에서 가까운 벨라루스 고멜주에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양국은 회담 의제에서부터 이견을 보여 협상이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러시아 측은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우크라이나 측은 회담의 주요 의제가 즉각적 휴전과 러시아군 철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맞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 SNS에 “이번 회담의 결과를 믿지 않지만, 대표단에 시도해 보라고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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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무부는 이날 러시아 중앙은행과 국부펀드를 즉시 제재하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미 재무부 관계자는 “오늘 발표한 러시아 중앙은행 제재 방안은 러시아가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동맹국의 제재로 러시아가 자국 루블화를 보호하기 위해 달러·유로·파운드·엔화 등을 쓰지 못하게 된다. 한국과 미국·EU 등 주요국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에 EU 재정을 지원하고 러시아 항공사의 EU 회원국 상공 운항과 러시아 국영 매체를 금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4억5000만 유로(약 6060억원)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무기 지원에 사용하고, 추가로 5000만 유로(약 670억원)는 의료 물자 등 비살상 목적에 사용할 예정이다. EU의 군사 지원에는 우크라이나 공군을 위한 전투기 공급 등도 포함될 예정이다. 러시아는 이에 대응해 영국·독일·스페인·이탈리아 등 36개국 항공사들의 러시아 운항을 금지한다고 28일 밝혔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이날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핵전력 강화 준비태세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전날 핵무기 운용 부대에 경계태세를 강화할 것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외신들은 서방국가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막기 위한 ‘정치적 카드’라고 분석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CNN에 “이건 위험한 언사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다. 사태만 더 심각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예상과 달리 러시아군의 전면적 침공을 잘 막아내며 러시아군은 고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이 지난달 26일까지 러시아군 항공기 46대와 헬리콥터 26대를 격추했으며, 탱크 146대와 장갑차 706대, 군 트럭 60대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측은 이를 부인했다.

“푸틴의 용병부대 400명, 젤렌스키 암살위해 키예프 잠입”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50㎞ 떨어진 이반키프에서 러시아군 수송 행렬이 지나가는 장면이 위성 사진에 찍혔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50㎞ 떨어진 이반키프에서 러시아군 수송 행렬이 지나가는 장면이 위성 사진에 찍혔다. [EPA=연합뉴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2021년 군사비는 47억 달러(약 5조6612억원)로 러시아(458억 달러, 약 55조1661억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러시아 침공 이후 유럽 전역에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폴란드 국경수비대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 이후 2만2000명 이상이 우크라이나로 입국했다. 이들 대부분은 해외로 일하러 떠났던 우크라이나 남성이다. 젊은 시절 소련군에 복무한 59세 남성은 “징병 컷오프가 60세라서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다 싶었다”며 러시아군에 맞서기 위해 자원 입대한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초기 공세에서 이상하리만큼 계획성이 없고, 심지어 무모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24일 공수부대를 투입해 키예프 인근 호스토멜 공항을 장악하려고 나흘 동안 교전했지만, 결국 물러났다. 러시아군은 다음 날엔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 장악에 나섰지만, 탱크가 아닌 경장갑차만을 동원했다가 수 시간 후 퇴각했다. 이는 전략 부재와 후방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서방 군사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러시아의 공군력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제 전투기 Su-27이 여전히 상공에서 러시아군과 교전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미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의 격렬한 저항과 러시아군의 연료 부족, 병참 차질로 러시아군의 진격 속도가 늦어졌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침공 후 320발 이상의 미사일을 발사한 러시아가 앞으로 쓸 미사일이 부족하다는 관측도 나왔다. 에스토니아 국방장관을 지낸 리호 테라스 유럽의회 의원은 트위터에 우크라이나의 정보 보고서를 인용해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쉬운 전쟁으로 생각하고 1~4일 안에 끝날 것이라 믿었지만, (그렇지 못한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썼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EU의 결의를 과소평가했고, 러시아군을 잘못 관리한 걸 세 가지 실수로 꼽았다. 러시아의 침공이 차질을 빚으면서 과거 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전쟁의 수렁’에 빠졌던 것처럼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영국 더타임스는 28일 “러시아 민간 군사기업(PMC) 바그너그룹에 고용된 용병 400명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핵심 인물 23명을 암살하라’는 (러시아 정부의) 지령을 받고 키예프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바그너 용병은 당초 보도된 것보다 많은 2000~4000명가량이 지난 1월 우크라이나에 들어왔으며, 그중 400명은 키예프로 향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 이후 최소 36만8000명이 우크라이나를 떠나 폴란드 등 인근 국가들로 대피했다. 우크라이나에선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달 27일까지 어린이 14명을 포함해 민간인 352명이 사망하고 어린이 116명 등 1684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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