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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복수' 기후변화로 인한 죽음, 가난한 대륙이 15배 많다

중앙일보

입력

난다 데비 국립공원은 히말라야 고도 7800미터에 위치한 공원으로, 약 14개 빙하가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지역은 기후변화와 산림 벌채 때문에 빙하가 떨어지거나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난다 데비 국립공원은 히말라야 고도 7800미터에 위치한 공원으로, 약 14개 빙하가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지역은 기후변화와 산림 벌채 때문에 빙하가 떨어지거나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지구의 복수는 가난한 대륙부터 덮쳤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8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1년간 취약 지역에서 가뭄·폭염·홍수로 죽은 사람의 숫자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15배 높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지구촌 약자에게 먼저 도달한다는 사실을 국제 사회가 공식화한 것이다.

IPCC가 이번에 내놓은 제6차 보고서 2차 실무그룹 보고서는 195개국 270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국제연합(UN)의 승인을 받았다. 기후변화에 대해 가장 신뢰도 높은 보고서로 꼽힌다. 보고서 핵심은 기후 위기 대응이 더딜수록 인류의 피해가 커지고 특히 취약층부터 위험해진다는 내용이다.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보고서는 폭염, 질병, 물 부족 등 127개의 주요 위험 요인을 나누어 설명했다. 지구촌에 벌어지는 이상 기후 현상 중 일부는 인간이 없었어도 일어났을 것이라는 일각의 의심에 반박했다. 각 위험 요인이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관측 자료나 논문 등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신뢰도 등급을 구분했다. 저자로 참여한 정태성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연구관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27개의 위험 요인 모두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했다는 게 결론"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 취약층 최소 33억 명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기후변화 취약층은 33억~36억 명으로 추산된다. 다만 취약 정도는 지역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선진국과 달리 사회경제적 발전이 느린 지역에선 기후변화 대응 역량을 갖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40년 이내엔 탄소 배출 시나리오가 어떻게 되는지보다 내가 사는 지역의 취약성이 얼마인지가 기후위기 피해를 더 크게 좌우한다.

그린란드 누크 부근 피요르드 온난화. 중앙포토

그린란드 누크 부근 피요르드 온난화. 중앙포토

기후변화 취약지는 서부·중앙·동부 아프리카, 남아시아, 중남미, 군소도서 개발도상국 및 북극에 분포한다. 대체로 기후변화 적응 기술 개발에 뒤처진 지역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20년 사이 이 지역에서 홍수·가뭄·폭풍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취약하지 않은 지역에 비해 15배 높았다.

기후 피해, 폭력 갈등·이주 문제 일으킨다

보고서는 미래에도 기후위기의 피해가 사회의 역량이 가장 낮은 곳에 집중된다고 했다. 현재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이 이어진다면 기후 변화로 인해 위험에 처한 사람 수는 점점 증가한다. 특히 2040년까지는 직접적인 기후 피해보다 피해 발생 지역에서 나타나는 폭력적인 갈등과 이주 행렬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기후변화는 식량 안보와 질병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온난화가 가속해 해수면이 상승하면 세계 취약지역에서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어려워진다. 만약 중기 지구의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2℃ 이상 증가할 경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남아시아, 중남미, 작은 섬에선 영양실조가 빈번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됐다.

기후 변화로 생물이 이동하면서 질병이 퍼질 수도 있다. 특히 보고서는 뎅기열이 유행하는 여름이 길어지면서 2100년까지 아시아·유럽·중남미·아프리카 등의 수십억 명의 인구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시아는 도시화·에너지 위험

한편 선진국에선 인명 피해보다 생태계 붕괴 우려가 크다. IPCC가 관측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과 북미 대부분이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 영향을 겪고 있다. 생태계 구조가 변화했고, 생물 종이 이동했고, 계절 길이가 변화했다. 반면 아프리카는 생태계 영향보다 인구 물·식량 부족, 건강 문제, 도시 기반 시설 악화 등이 심각하다.

2018년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48차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가 승인된 직후 공동 의장들이 환호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48차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가 승인된 직후 공동 의장들이 환호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이 포함된 아시아는 생태계 영향이 비교적 덜하다. 다만 주민들의 영양 문제에 취약하며 도시 기반 시설이 미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태성 연구관은 "아시아 대부분 국가는 높은 화석 연료 의존도로 인해 에너지 안보 위험도 높다. 아프리카와 함께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 집중이 예상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불평등이 가장 큰 장애물"

보고서 저자들은 불평등 해소가 기후위기 대응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제18장 기후탄력적 개발 경로의 부문의 주 저자인 아로말 레비 인도 인간정주연구소장는 "기후변화가 진전되면서 경제적으로 뒤처진 사람들의 취약도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기후변화 노출을 줄여야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보고서가 선진국이 기후변화 취약지역을 지원해야 할 명분이 된다고 분석했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기후 변화는 인간에 의해 가속화됐고 탄소 중립에 힘쓰면 그 피해를 완화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취약층을 먼저 지원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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