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합쳐 자산 19조원인 러시아 재벌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억만장자인 미하일 프리드먼(58)과 올레그 데리파스카(54) 이야기다.
푸틴 측근 러시아 재벌이 "비극…평화 중요"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들은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민간은행인 알파은행과 투자기업 레터원을 경영하고 있는 프리드먼(포브스 기준 순자산 117억 달러, 약 14조 1000억원)은 전쟁 발발 이후 직원들에게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e메일을 보냈다. 우크라이나 리비우 출신인 프리드먼은 e메일에서 "나는 우크라이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부모님은 아직 리비우에 계신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두 나라 국민에게 깊은 애정이 있다"며 "이 갈등은 모두에게 비극이다. 전쟁은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회사 '루살(RUSAL)'의 회장인 데리파스카(포브스 기준 순자산 40억 달러, 약 4조8000억원)는 메시지 앱 텔레그램에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 가능한 한 빨리 평화 회담이 열려야 한다"고 적었다.
이들의 푸틴 저격이 눈길을 끄는 건 단순히 재벌이라서가 아니다.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정권과의 유착이 의심되는, 푸틴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데리파스카는 이 때문에 2018년 4월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랬던 이들이 갑자기 사실상 푸틴에 반대하는 '반전 메신저'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역시 돈 때문이다.
가디언은 "러시아의 부자들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가 강화됨에 따라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인과 금융계 인사들이 푸틴 대통령의 침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석유 재벌 아브라모비치 딸도 비난 가세
실제 푸틴과 친분이 두터운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딸 소피아 아브라모비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푸틴 대통령을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그는 "푸틴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원한다"며 "크렘린궁이 벌이는 선전의 가장 성공적인 거짓말은 '대부분의 러시아인이 푸틴을 지지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소수이긴 하지만 지난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유명 인사들도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고 있다.
25일에는 푸틴 대통령의 '입'으로 불리는 크렘린궁의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의 딸 옐리자베타 페스코바가 인스타그램에 검은 배경을 설정하고 "전쟁에 반대한다"는 글을 올렸다.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이자 푸틴을 발탁한 보리스 옐친의 딸 타티아나 유마셰바도 전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한편 전쟁을 반대하는 러시아 인사들은 속속 '블랙 리스트'에 오르는 분위기다.
러시아 국영 채널1의 인기 토크쇼 진행자인 이반 우르간트는 인스타그램에 "전쟁은 안 된다"고 남기고 프로그램에서 하차됐다. 러시아 최고 조연배우인 리야 아크헤드자코바는 우크라이나군에 1만 달러(약 1200만원)를 후원했다고 인스타그램에 밝혔다. 이후 그의 계정은 사라졌다.
모스크바 마이어홀트 국립극장 관장인 엘레나 코발스카야는 페이스북에 "살인자를 위해 일하고 돈을 받을 수 없다"고 밝힌 뒤 그만뒀다.
가디언은 "러시아 매체 보도에 따르면 전쟁 반대 목소리를 낸 이들은 블랙 리스트에 올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