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그를 맞은 관객은 긴장…하지만 음악은 평온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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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독주회가 열린 대구콘서트하우스. 연주자의 요청으로 공연 사진은 촬영하지 않았고, 무대 위의 카메라를 검은 천으로 감쌌다. 김호정 기자

25일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독주회가 열린 대구콘서트하우스. 연주자의 요청으로 공연 사진은 촬영하지 않았고, 무대 위의 카메라를 검은 천으로 감쌌다. 김호정 기자

“‘이렇게까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25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관계자가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66)의 공연을 앞두고 한 말이다. 폴란드 피아니스트 짐머만은 예민한 완벽주의자다. 본인에게 맞춰 조율된 피아노 액션, 즉 건반과 해머의 연결 부분을 가지고 다니면서 공연장의 피아노 틀에 끼워 넣는다. 무엇보다 실연(實演)의 약속되지 않은 녹음이나 녹화에 극도로 민감하다. 연주의 무단 녹화를 발견하고 무대를 떠난 일도 있다. 2003년 서울에서는 한국 첫 독주회를 열면서 무대 위의 마이크를 문제 삼으며 공연을 지연시켰다. 녹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불안해했다.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내한 공연 대구에서 시작돼 #마이크ㆍ카메라ㆍ휴대전화에 민감해 공연장도 특급작전 #바흐ㆍ브람스ㆍ쇼팽은 평화롭고 자유롭게 연주돼

이날 대구콘서트하우스의 대공연장은 짐머만의 조건을 모두 따랐다. 우선 무대 위에 매달려있는 마이크를 전부 제거했다. 무대 옆쪽에 설치된 카메라는 검은 천으로 덮어 피아니스트를 안심시켰다. 객석 쪽으로 향해있는 CCTV에도 검은 천을 씌웠다. 사진 촬영도 물론 싫어하는 짐머만을 위해 공연장 전속 사진작가는 공연 전 아예 퇴근했다.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 [사진 마스트미디어]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 [사진 마스트미디어]

첫 음이 울리기도 전에 객석에 유난한 긴장감이 흘렀던 공연이었다. 하지만 짐머만이 이날 들려준 음악은 까다로움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자유로웠다. 첫 곡이었던 바흐의 파르티타 1번은 정교하고 완벽하기보다는 편안하고 즐거웠다. 중간 정도의 속도로 평화로운 음악을 이어 나갔고, 빠른 춤곡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연주했다. 파르티타 2번의 론도에서는 세 개의 음이 엮인 리듬을 일부러 절뚝이게 만들며 반복했다. 마치 오스트리아 빈의 왈츠처럼 즐거운 춤이 됐다.

예민한 연주자답게 중간 휴식 시간에도 피아노 건반의 뚜껑을 덮어놓은 그는 다시 나와 브람스와 쇼팽을 연주했다. 바흐에 비해 감정의 굴곡이 크고 파고가 높아지는 곡들이었지만 짐머만의 해석에는 과잉이나 과시가 없었다. 특정한 감정을 전달하려 공을 들이는 대신, 작품의 뼈대만 선명히 보여주는 연주였다. 두터운 화음과 무게로 이뤄진 브람스의 작품에서조차 짐머만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힘을 뺀 소리를 내기도 했다.

마지막 곡인 쇼팽 소나타 3번에서도 심각한 의미 부여는 없었다. 무엇보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고, 결정적인 부분에서 틀린 음을 짚는 실수도 했다. 하지만 주관적인 해석이나 감정의 과잉 없이 음악이 그 자체로 흘러가도록 하는 방식은 타고난 음악성, 무대 위에서 보낸 오랜 시간이 없다면 불가능했다. 한발 물러서서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음악의 품위를 높였다.

소리에 대한 감각만큼은 예민한 태도만큼 섬세했다. 무심히 흘려보내는 쇼팽에서 각각의 건반은 다양한 깊이와 무게로 짚어졌으며, 그 소리의 층위가 더해져 음악 전체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짐머만은 소리의 무게를 자신이 원하는 가장 음악적 방식으로 조절했다.

그는 18세에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정상의 자리를 지켰던 피아니스트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1918~90)과 영감을 주고받는 사이었고 카라얀, 무티, 마젤 등 일류 지휘자의 오랜 파트너였다. 베토벤부터 쇼팽까지 정통 레퍼토리에서 ‘원하는 모든 음색을 낼 수 있는 피아니스트’로 꼽혔다. 이번 한국 투어의 첫 공연이었던 25일 대구 무대에서 그는 음의 색채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음악을 흘려보내는 여유를 선보였다.

공연 전 신신당부를 받은 관객들의 휴대전화는 공연 내내 한 번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커튼콜에서도 촬영하는 사람이 없는, 요즘 보기 드문 공연이었다. 까칠하기로 소문난 피아니스트를 둘러싼 관객석의 긴장감은 팽팽했지만, 음악은 평온하고 부드러웠다. 짐머만의 한국 독주는 27일 부산을 거쳤고 다음 달 1ㆍ2ㆍ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4일 대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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