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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무섭다" 아들 글에 펑펑…학대 피해 엄마 정신 번쩍 들었다 [추기자의 속엣팅]

중앙일보

입력

추기자의 속엣팅

한 사람의 소개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인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인연 따라 무작정 만나보는 예측불허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프롤로그]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지난 2020년부터 대화 훈련 프로그램인 ‘연결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이가 박재연 리플러스인간연구소 소장이죠. 대표적인 육아 TV 프로그램인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와 EBS ‘부모’의 전문가 패널로만 봤다면 육아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박 소장은 심리 상담사이자 대화 훈련가입니다. 사실 자신도 아동학대 피해자였다는 박 소장을 속엣팅으로 만났습니다.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위워크 라운지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박재연 리플러스인간연구소 소장. 부모 필독서로 소문난 '엄마의 말하기 연습' 저자이지만 본인은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장진영 기자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위워크 라운지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박재연 리플러스인간연구소 소장. 부모 필독서로 소문난 '엄마의 말하기 연습' 저자이지만 본인은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장진영 기자

“한글도 못 읽는 분부터 대기업 총수까지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죠. 만나온 많은 분이 왜 이렇게 불안이 심할까 들여다보면 90%도 아니고 100% 아동기에 문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부모의 태도에 대해선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어요.” 박재연(44) 리플러스인간연구소 소장은 아이들에게 특히 관심이 많다. 그의 저서 『엄마의 말하기 연습』도 이런 관심에서 만들어졌다.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박 소장은 “자녀를 때리는 부모가 교육이란 이름으로 자행한 것은 폭력 이상 그 어떤 것도 아니다”라면서 “그저 폭력을 통해 자녀를 키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상담을 할 때마다 ‘또 그거구나’(어린 시절 문제)라고 확인하게 되면서 부모가 진짜 최소한 아이들을 때리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했다.

아들에게 대물림된 학대 트라우마

박재연 소장이 어린 시절 겪은 학대 경험은 결혼 생활과 육아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이혼 후 6살 아들이 쓴 "엄마가 화낼 때 무서워요"라는 쪽지를 보고 펑펑 운 뒤 비폭력대화에 입문했다. 장진영 기자

박재연 소장이 어린 시절 겪은 학대 경험은 결혼 생활과 육아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이혼 후 6살 아들이 쓴 "엄마가 화낼 때 무서워요"라는 쪽지를 보고 펑펑 운 뒤 비폭력대화에 입문했다. 장진영 기자

사실 박 소장은 “어릴 때 삶은 암울했다”고 한다. 본인이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부모님 이혼 후 9살 즈음 불안 증세로 야뇨증을 앓았는데 자다가 이불에 오줌만 싸면 발가벗겨져 밖으로 쫓겨나거나 아버지에게 기절할 때까지 맞은 적도 있었다. 아버지 역시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술에 취한 아버지가 자던 딸을 깨워 “미안하다”고 눈물로 사과했지만, 상처는 쉽사리 치유되지 않았다.

그에게 깊숙이 박힌 상처는 결혼 생활과 육아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페르소나의 도사였다”는 그의 말대로 회사에선 최우수 승무원이었지만, 집에선 감정 조절이 어려운 엄마였다. 그를 변화시킨 건 이혼 후 6살 아들이 쓴 쪽지 한장이었다. 하트와 함께 삐뚤빼뚤 “엄마가 화낼 때 너무 무서워요”라고 쓰인 글을 보고 펑펑 울었다. ‘무섭다’는 단어가 그의 트라우마를 되살렸다.

지인의 소개로 2007년 이화여대 비폭력대화 평생교육원 과정을 찾았고, 한국 비폭력대화센터 강사가 됐다. 그렇다고 순식간에 좋은 엄마가 된 건 아니다. “제가 바로 좋아졌겠어요? 성장과 퇴행을 반복하면서 아이는 더 혼란스러웠겠죠. 대학생이 된 아들이 고2 때 고백하더라고요. ‘초등학교 때까진 어떨 땐 좋은 엄마 같고, 어떨 땐 저 멀리 있는 사람 같았는데 그래도 엄마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준 것 같아 고맙다’라고요.”

“대화 목적은 ‘해결’ 아닌 ‘연결’” 

박재연 소장은 "아이들은 화를 잘 내고 불안하게 하면 말을 잘 듣지만, 그 대가는 부모와 자녀 모두 평생 치르게 된다"고 경고한다. 장진영 기자

박재연 소장은 "아이들은 화를 잘 내고 불안하게 하면 말을 잘 듣지만, 그 대가는 부모와 자녀 모두 평생 치르게 된다"고 경고한다. 장진영 기자

박 소장은 “(내가 해봤으니) 어떻게 하면 애들이 말을 잘 들을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화를 잘 내고 불안하게 하면 말을 잘 듣는다”면서다. 그는 그러나 “그 대가는 부모와 자녀 모두 평생 치르게 된다”며 “두들겨 패서 명문대를 보내도 자녀는 발표불안, 사회공포증 등 여러 증상으로 그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고, 그걸 지켜보는 부모도 같은 고통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선 “가해자인 동시에 치유자”라며 “완전히 해소되지 않지만 불편한 감정을 갖고 사는 방법도 배워야 할 숙제”라고 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매일 확진자 수를 확인하면서 사람들은 과도하게 불안을 느끼고 고립되기 시작한다”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무의식적 불안감을 일깨웠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는 사람은 전화보다는 영상통화, 그보단 직접 접촉을 선호한다는, 어떻게든 만나고 싶어 한다는 본성(연결성)을 확인해줬다”고 했다.

삶과 죽음의 고민…죽음학 공부로

상담하다 보니 가족을 잃은 슬픔을 어루만지는 일이 많았다. 죽음에 대한 고민이 커지면서 죽음학을 공부했다. “삶과 죽음은 같은 선상에 있다”는 그는 국제 죽음교육 전문가이기도 하다. 박 소장은 “사고든 병이든 가족을 잃으면 ‘왜 하필’이란 생각으로 평생 외상이 된다”며 “고인과 나누지 못했다는 죄책감, 슬픔 등을 나눌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 대화의 목적은 그들과의 ‘연결’이다. 문제 해결은 그다음이지, 대화의 목적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지난 2018년 특별한 인연을 맺은 이들도 딸과 누나를 잃은 가족이었다. 성관계를 강요받다가 투신한 인천 여학생 사건을 기사로 접한 뒤 수소문해서 찾았다. 첫 만남에서 아버지는 오열했고, 당시 중1이었던 남동생은 누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이후 3년간 매주 인천을 찾아 가족의 심리치료와 소송을 도왔고 결국 승소했다.

박 소장은 어느 날 이 가족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앞으로 이게 내가 할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청소년 성 문제에 주력해 무료 상담의 폭을 더 넓히기로 했다. “성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다가 심하면 죽음까지 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상담을 통해 청소년과 청년들이 삶의 의미를 다시 구축하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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